[책의 향기]“의식은 神의 영역이 아니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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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크리스토프 코흐 지음/이정진 옮김/352쪽·1만9500원·알마
실증적 과학으로 의식의 본질 제시

천재과학자의 의식을 컴퓨터에 옮기는 내용을 다룬 영화 ‘트랜센던스’. ‘의식’의 저자는 “인간의 의식은 신비롭거나 초월적이지 않으며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도, 계량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동아일보DB
천재과학자의 의식을 컴퓨터에 옮기는 내용을 다룬 영화 ‘트랜센던스’. ‘의식’의 저자는 “인간의 의식은 신비롭거나 초월적이지 않으며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도, 계량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동아일보DB
영화 ‘트랜센던스’에서 과학자 윌은 반(反)과학단체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컴퓨터를 통해 영생을 얻는다. 정체성을 자각하는 슈퍼컴퓨터 트랜센던스에 윌의 모든 기억이 다운로드돼 그의 의식이 컴퓨터에서 재현된 것. 그런데 그의 절친한 동료 과학자는 마음속으로 깊은 회의를 느낀다. ‘컴퓨터에서 부활한 윌의 의식은 정말 그일까?’

이 책의 저자는 인간의 의식을 초월적, 신비적으로 해석하는 모든 종교적, 윤리적 시도를 거부한다. 사람의 정신 작용도 충분히 과학의 영역에서 규명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확고한 신념이다. 의식은 수만 개의 시냅스를 지닌 수십억 개의 신경세포들이 일으키는 끊임없는 활동으로 계량적인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트랜센던스는 전혀 뚱딴지같은 얘기가 아니다.

과학 에세이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책은 단순히 뇌과학에 대한 개론만 담고 있지는 않다. 서문과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자신이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결국 무신론자가 된 과정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그는 “생물물리학 연구를 거듭할수록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갖기가 불가능했다”고 고백한다. 이어 저자는 “의식에 대해 이성적이며 지적으로 일관성 있는 관점을 정말로 찾으려고 한다면 불멸하는 영혼에 대한 전통적 관점을 버려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인간의 의식은 철저히 주관적인 영역이었다. 의식은 주로 철학에서 다뤄졌으며 과학적으로 접근하기가 매우 까다로웠다. 더구나 감각기관에서 100% 정보를 인지해도 의식 중추는 이를 취사선택한다. 또 의식은 편견이나 문화, 언어 등 외부 영향에 끊임없이 노출돼 있다. 이와 관련해 재밌는 인지실험이 하나 있다.

‘몇 가지 문제에 답해보자. 백지의 색깔은? 웨딩드레스의 색깔은? 눈의 색깔은? 달걀 껍데기의 색깔은? 자, 이제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다음 질문에 답해보자. 소가 아침식사로 오전에 무엇을 마시는가?’ 많은 사람은 순간적으로 ‘우유’라고 답하고 나서 곧 ‘아차’ 싶었을 것이다. 이런 엉뚱한 대답이 나오는 건 흰색을 반복하는 순간 이것과 연관된 뉴런이 활성화하면서 의식에 바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의식에 대한 기준도 애매하기 그지없다. 예컨대 과거에는 동물이나 영아는 의식이 없다는 인식이 높았지만 현대과학은 이들도 정서적 반응을 일으킨다는 점을 밝혀냈다. 심지어 의식불명의 환자라도 눈을 깜빡거리는 등의 미세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를 의식의 영역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가. 저자는 이런 복잡한 질문에 대해 임상이나 실험, 해부학적 지식 등을 토대로 어느 정도 답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의식이 전무한 그룹과 약간 회복된 그룹의 뇌파나 혈류를 분석해 보면 전두엽과 측두엽, 감각피질 사이의 정보교환의 차이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에세이와 과학 개론서를 잘 결합한 책이지만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고 별다른 설명 없이 전문용어를 나열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의식#실증적 과학#신경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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