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한강은 집요한 언니”… “서정적 문체, 센 주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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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을 읽은 출판팀 기자 4명의 방담

17일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작품이 서점가를 휩쓸고 있다. 기자들도 읽어 보기로 했다.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2010년 동리문학상), ‘소년이 온다’(2014년 만해문학상) 등 3권을 출판팀 기자 4명이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구가인=
‘채식…’은 동물적, 폭력적인 세계를 거부하고 이에 식물적인 힘으로 맞서려는 노력을 그렸어. 작가 외모도 좀 식물처럼 생기지 않았어? 작가에게 식물이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있는 거 같아. 난 죽어도 완전 채식은 못 할 거 같은데, 채식주의자가 한 단계 진화한 인간인 거 같기는 해.

▽김상운=인간은 존재 자체가 민폐인 듯. 그런데 ‘채식…’에서 영혜가 고기를 안 먹는 게 왜 비난받는 거지? 부부 모임에서도 이상한 사람 취급 받고.

▽손효림=채식뿐 아니라 한국 사회가 결혼, 출산, 주거 심지어 자동차 소유까지 대단히 획일적인 기준이 있고,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이상한 사람으로 질타하잖아. 그런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 줘.

▽구=작품성에 비해 표지 디자인은 너무 안 끌려. 오래전에 ‘채식…’을 읽었을 때는 굉장히 충격적이고 불편했는데, 다시 읽으니 블랙 코미디 같았어. 가족들이 억지로 영혜 입을 벌리고 고기를 쑤셔 넣는 게 굉장히 폭력적인 장면인데, 봉준호 감독 식으로 발랄하게 연출하면 되게 웃기겠다 싶더라고.

▽조종엽=소설이 나온 지 벌써 10년 가까이 됐고, 우리가 새로운 감각에 익숙해지면서 역으로 코믹하게 보이는 것 아닐까.

▽김=무기력한 존재는 뒤집어 놓으면 평화적인 존재잖아. 영혜가 젖가슴은 공격성이 없어서 좋다고 하는 게 인상적이었어.

▽손=그렇다고 영혜가 수동적인 존재만은 아닌 것 같아. 음식을 끊고 죽음을 꿈꾸는데, 이게 내몰리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자극해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도록 소설이 짜여져 있어.

▽조=영혜가 뭘 의도했다기보다 그냥 이미 딴 세계로 가 있는 것 같아.

▽구=남자 독자로서 불편하지 않았어? 영혜 아버지, 남편, 형부 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잖아. 폭력적이고,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반면 여자들은 다 선해. 그 대립 구도가 너무 뚜렷한데, 너무 도식화된 이분법 아닐까.

▽김=남자라기보다 인간으로서 불편했지. 영혜 형부가 영혜하고 성교하는 장면은 좀 그랬어. 형부가 예술을 빙자해 유린했다고 보이기도 하고.

▽조=난 형부가 불쌍해 보이던데. 영혜의 식물성에서 관능을 느끼고 동경하지만, 잠시 만날 뿐 자기는 그 세계로는 못 가지. 평생 캠코더 안에 날개를 담았지만, 정작 자기는 못 나는 거지.

▽구=근데 왜 착한 여자들은 다 마른 거지? ‘바람이…’에서 다부진 체격의 건물 세입자 여자가 나오는데 공격적인 느낌이고, ‘마주 보고 서 있는 것만으로 기운이 빠지는 사람’이야.

▽조=영혜는 극단적인 식물성으로 나아갔는데 ‘바람이…’에서 작품 세계가 바뀌는 게 보여. 첫 부분에 “흰 새로 사는 것, 좋지도 않았으니까”, “나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라고 그래. 그리고 실제로 싸우면서 친구의 죽음의 실체를 추적해 나가지. ‘채식…’은 우화 같지만, ‘소년이…’는 소재 자체가 역사고.

▽구=‘바람이…’ 에서는 주인공 인주의 외삼촌이 병 때문에 군대도 안 갔다 왔고, 교련 수업도 받지 않은 소년성을 가진 존재로 그려져. 인주에겐 엄마 같은 존재야. 새로운 남성성에 대한 시도를 한 것 같아.

▽손=‘소년이…’는 여러 화자의 시선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을 입체적으로 그려. 현실과 영혼의 세계를 줌인 줌아웃하면서 보여 주는데 정말 가슴이 아파. 거기서도 출판사 사장이 고기를 사 준다고 하자 여자는 고기의 핏물이 싫어서 그냥 밥집 가자고 하지. 여러 작품이 고리로 연결되는 거지. 보면서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이 떠올랐어. ‘소년이…’처럼 군부독재에서 맞서다가 고문당하는 장면이 세밀하게 나오거든. 우리 역사를 모르는 서구인들은 이런 것을 약간 새롭게 느끼지 않을까.

▽구=‘채식…’도 개를 잡아먹는 장면, 강한 가부장주의, 회식 문화 등 서양인들이 신기하게 생각할 만한 것이 많아. 거기다 그들에게는 ‘신비로운’ 동양 여자고.

▽손=한강의 소설은 담고 있는 스토리와 소재는 굉장히 센데, 서정적이고 절제된 문체로 표현돼 이야기가 더 증폭되고 독자를 흡입해. 문체가 작가의 말투와도 비슷해. 한강은 세상의 고통을 스스로를 황폐화하면서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 그게 더 ‘짠해∼’.

▽구=소설 문장을 이렇게 시처럼 쓰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손=집요한 언니지.

▽조=한데 이야기만으로 엄청나게 재밌는 소설들 있잖아. 그런 소설과는 결이 좀 다른 것 같아.

▽구=나는 ‘바람이…’가 앞부분의 심리 묘사는 좀 더디게 읽혔는데 뒤로 갈수록 술술 읽히던데. 중첩된 삼각관계가 재밌고, 또 탐정소설처럼 추적해 나가고.

▽손=‘소년이…’는 작가가 어린 시절 몰래 본 5·18 사진첩에서 비롯됐다고 해. 작가의 여러 작품에서 인간의 폭력성과 상처, 자유에 대한 탐구가 변주되는 것 같아.

▼함께 읽으면 좋을 보석같은 작품들▼

한강 씨는 1994년 등단 후 쉬지 않고 성실하게 작업을 해왔다.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장편소설 혹은 소설집은 10권이 넘는다. 시집, 산문, 동화집도 여러 권. 작가의 오랜 팬 3명이 숨은 보석 같은 작품을 소개했다.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작가는 소설보다 시로 한 계절 앞서 등단했다. 8권의 소설을 내는 동안 틈틈이 쓰고 고른 시 60편을 묶어낸 이 시집은, 인간과 인간됨에 대해 끝없는 질문의 궤적을 그리는 한강의 ‘나이테’라 할 수 있다. 무엇 때문에 태어나 왜 서로 죽고 죽이며 죽어 가는지. 한 번 품어봤지만 풀리지 않아 잊은 질문을 한강은 20년 넘게 붙들고 글을 써왔다. “내 영혼이 부서졌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과 “그렇게 부서지고도/나는 살아 있”다는 자각, 모든 질문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이민희 문학과지성사 편집자)

▽장편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사회와 불화하기 시작하는 30대 초반에 느꼈을 것들이 담겨 있다. 문장의 흡인력은 이때부터 빛났다. 인체를 석고로 떠서 작품을 만드는 조각가와 두 여자를 통해 세상의 가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처받은 이들이 서로에게 전하는 위로가 읽는 이에게도 위안을 준다.(김한들 학고재갤러리 큐레이터)

▽소설집 ‘노랑무늬 영원’

한강의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작가와 ‘느낌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머뭇대고, 한 번 더 견디고, 조금 더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꿈꾸는 ‘찰나의 빛’을 담은 소설집이다. 12년간 아껴 읽은 단편 7편이 실려 있다. 작가 특유의 단단한 문장은 고독과 고통, 추구와 의지, 삶 언저리의 빛을 깨닫게 해준다.(김효선 온라인서점 알라딘 MD)
 
정리=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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