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왜 고급 레스토랑 메뉴판은 어려울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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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언어/댄 주래프스키 지음/김병화 옮김/408쪽·1만7000원·어크로스
인류학+심리학+행동경제학… ‘음식언어’에는 문명이 녹아있다

저자는 현대식 메뉴 6500건, 요리 수 65만 건, 100만 건의 맛집 리뷰 등 계량 언어학적 연구를 통해 메뉴판에 쓰인 단어가 길어질수록 음식값이 비싸진다는 사실부터 음식 이름에 숨겨진 음운학적 비밀 등 음식과 문화, 사회, 경제, 심리의 관계를 해독해낸다. 어크로스 제공
저자는 현대식 메뉴 6500건, 요리 수 65만 건, 100만 건의 맛집 리뷰 등 계량 언어학적 연구를 통해 메뉴판에 쓰인 단어가 길어질수록 음식값이 비싸진다는 사실부터 음식 이름에 숨겨진 음운학적 비밀 등 음식과 문화, 사회, 경제, 심리의 관계를 해독해낸다. 어크로스 제공
‘Ravioli parmigiana, en casserole’와 ‘Flaming coffee diablo prepared en vue of guest’. 고급 레스토랑 메뉴판을 보면 당황스럽다. 해석하자면 ‘캐서롤에 요리한 파르메산 치즈 라비올리’, ‘손님이 보는 앞에서 내린 불타는 악마의 커피’란 뜻일 거다. “나도 같은 걸로”라고 외치고 싶다.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영어에 프랑스어가 섞여 있으니 말이다.

레스토랑 메뉴판은 왜 어려울까? 이 책은 음식의 언어를 인류학, 심리학, 행동경제학 등을 동원해 파헤친다. 저자는 먹다(eat)와 어원학(etymology)을 합친 ‘먹기어원학(EATymology)’을 만든 미국 스탠퍼드대 언어학 교수. 계량언어학의 세계적 석학인 그의 ‘음식 언어’ 강의는 스탠퍼드대의 최고 인기 교양과목이다.

저자에 따르면 메뉴판에는 남보다 ‘잘나’ 보이고 싶은 ‘사회 격차’ 욕망이 스며 있다. 1900년대 초부터 고급 레스토랑은 저렴한 식당보다 메뉴판에 적힌 프랑스어가 다섯 배나 많았다.

‘Herb roasted elysian fields farms lamb’(허브를 넣고 로스트한 엘리전 필즈 양고기), ‘Grass fed angus beef carpaccio’(풀 먹여 키운 앵거스 비프 카르파초). 요즘 최고급 레스토랑 메뉴판에 적혀 있는 요리다.

저자가 미국 7대 도시 내 레스토랑 메뉴 65만 건을 분석한 결과 고급 레스토랑은 메뉴판에 이렇듯 농장 이름(‘엘리전 필즈’), 사육방식(‘풀 먹여’) 등 재료 출처를 거론한 횟수가 저렴한 곳보다 15배 많았다. 요리를 설명하는 단어가 하나씩 늘수록 음식 가격이 18센트씩 높아졌다. 반면 싸구려 레스토랑 메뉴에는 ‘Crisp golden Brown Belgian waffle with fresh fruits’ 즉 ‘바삭바삭’ ‘신선한’처럼 훌륭하지 못한 음식을 꾸미기 위한 인상 주입용 형용사가 많았다.

또 레스토랑 리뷰 100만 건을 분석한 결과 ‘관능적인’ ‘유혹적인’ ‘예쁘고 애무하는 듯한’ ‘끈적거리고 달콤한’ 등 음식 품평하는 데 섹스 은유가 자주 나올수록 음식값이 비싸졌다. 싼 레스토랑 음식이 마음에 들 경우에는 성적인 은유보다 ‘중독’ ‘마약’ 등의 표현이 늘었다.

책은 음식의 변천과 확대를 세계 문화사와도 연결한다. 미국 패스트푸드의 상징인 ‘케첩’은 중국에서 비롯됐다. ke(케)는 푸젠(福建) 성 방언으로 ‘저장된 생선’, 첩(tchup)은 소스를 뜻한다. 17세기 무역상을 통해 영국 등 유럽에 중국 생선소스가 비싸게 수입됐고 호두 케첩을 거쳐 19세기 토마토케첩이 완성된다. 영국의 ‘피시앤드칩스’는 페루 지역의 해산물 요리 ‘세비체’에서 비롯됐다. ‘마카롱’은 아몬드 가루에 설탕, 장미수를 반죽해 구운 시칠리아 과자 ‘라우지나즈’가 기원이다. 이 과자는 달게 먹는 파스타인 ‘마카루니’ 등과 결합되는 한편, 머리를 굴뚝처럼 세우는 허세적인 헤어스타일로 유명했던 18세기 상류층 부자 ‘마카로니’의 영향을 받아 현재의 고급 디저트 문화 ‘마카롱’에 이르게 된다.

감자 칩에는 ‘계급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다. 12종의 유명 감자칩 포장지 뒷면의 발췌문을 분석해 보니 상류층을 위한 고급 감자칩은 ‘천일염’ ‘인공성분이 없는’ 등 건강과 관련된 단어 비중이 노동자에게 인기인 싼 감자칩보다 6배 많았다.

이쯤 되면 음식은 TV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에 나오는, 즉 평범한 일상의 매개체를 넘어선다. 사소한 음식이라도 인류 문명이 송두리째 녹아 있는 것이다. 주래프스키와 함께라면 마감 5분 전 분식집도 즐거울 것 같다. 그가 들려주는 분식 메뉴 얘기가 식탁에 올려진 떡볶이와 순대보다 푸짐할 테니까.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음식의 언어#메뉴판#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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