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저녁 잠… 새벽 잠… 몽유병… 기묘한 꿈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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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사생활/데이비드 랜들 지음·이충호 옮김/352쪽·1만6000원·해나무
심리학-신경학-역사 넘나들며 ‘인생 3분의 1’ 비밀 하나하나 풀어
“잘 자는 비결? 마음에 달렸어요”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1897년 작). 사자가 곁에 있지만 잠에 빠진 여인의 얼굴은 평온하다. 꿈은 잠자는 동안 뇌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로, 통찰의 원천으로 여겨졌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해나무 제공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1897년 작). 사자가 곁에 있지만 잠에 빠진 여인의 얼굴은 평온하다. 꿈은 잠자는 동안 뇌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로, 통찰의 원천으로 여겨졌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해나무 제공
이 책의 원제는 ‘Dreamland’다. 꿈나라…. 좋은 제목이다. 바닥에 등만 대면 잠이 쏟아지는 기자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한편으로 책만큼 잠과 연관된 물건도 드물다. 지루하거나 의무적으로 읽어야 하는 책만큼 강력한 수면제가 또 있을까. 그러나 저자에겐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 책을 보면서 잠들 순 없었습니다.”

잠과 관련된 수많은 실험결과와 전문가 인터뷰는 독자를 지루할 틈 없이 몰고 간다. 이 책은 심리학, 신경학, 인지과학, 수면의학, 역사 등을 넘나들며 잠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저자는 “평생의 약 3분의 1을 잠을 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잠이 우리 몸과 뇌에 어떤 일을 하는지를 궁금해하지 않는다”고 화두를 던진다.

우선 잠은 건강과 직결된다. 1980년대 미국 시카고대에서 쥐들에게 잠을 못 자게 하자 궤양이 생기고 털이 뭉텅이로 빠지고 먹어도 몸무게가 늘지 않았다. 2주일 후 실험쥐는 모두 죽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까지 과학자들은 잠을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라고 봤다. 잠자는 동안 뇌가 활동을 멈춘다고 본 셈이다.

하지만 잠은 △선잠이 든 1단계 △수면 뇌파가 간혹 나오는 2단계 △뇌파 파장이 길어지면서 깊은 잠에 빠지는 3, 4단계 △뇌가 깨어 있을 때처럼 활동하면서 꿈이 나타나는 렘(REM) 상태가 90분 주기로 반복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중세 유럽인의 수면 방식도 흥미롭다. 이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바로 잠을 잤다. 이후 자정이 넘으면 잠에서 깬 후 한 시간 정도 일을 보거나 섹스를 한 후 다시 잠을 잤다. 실제 메릴랜드 주 국립정신건강연구소에서 인공조명을 14시간 이상 배제해 실험한 결과 참가자들은 마치 중세 유럽인처럼 2번 잠을 자는 행태를 보였고 건강상태가 좋아졌다.

잠은 문제해결 능력도 높인다. 1964년 골프선수 잭 니클라우스는 슬럼프에 빠졌다. 하지만 골프를 치는 꿈을 꾸는 순간 클럽을 미세하게 다르게 잡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꿈에서 본 잘못된 그립을 원래대로 수정하자 이어 열린 브리티시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평범한 주부 스테퍼니 마이어 씨는 꿈에서 소녀와 잘생긴 뱀파이어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본 뒤 글로 옮겼다. 전 세계에서 히트를 친 ‘트와일라이트’ 시리즈의 시작이다.

이유가 뭘까. 낮에는 뇌의 해마가 직장 상사의 코털과 같은 사소한 정보까지 기억한다. 하지만 잠을 자면서 꼭 필요한 정보만 머리에 남게 해 이 정보들 사이 연관성이 명확해지고 이전에 볼 수 없는 새로운 측면이 발견된다.

몽유병의 경우 뇌에서 움직임과 공간지각을 조절하는 부분이 깨어 있는 반면에 의식을 담당하는 부분은 잠든 상태에서 발생한다. 종류도 여러 가지인데 유일하게 ‘수면 섹스’(Sexsomnia) 환자는 인기라고 한다. 깨어 있을 때보다 더 잘한다는 것이다.

수면제를 남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는다. 미국국립보건원 연구 결과 수면제를 복용한 환자는 설탕물을 먹은 환자보다 겨우 20분 먼저 잠들어 11분 늦게 깼다. 결국 수면제는 상당 부분이 위약(僞藥) 효과, 즉 플라세보(placebo)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잘 자는 비결은 마음에 달려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뇌에서 잠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수면 방추파를 낼 때 마음속 일상사에 대한 고민을 내려놓아야 잠이 잘 온다. 평소 고민을 멈출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매트리스가 푹신한 침대 등 육체적 안락보다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 잠을 잘 자는 데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침대는 과학이지만 잠은 마음인 셈이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잠의 사생활#Dreamland#몽유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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