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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아이돌 생사여탈권 쥔 그들

제2의 BTS는 팬덤이 만든다!

  • | 장민지 한국콘텐츠진흥원 선임연구원 9hirun@kocca.kr

아이돌 생사여탈권 쥔 그들

  • ● 셀러브리티 앞에 꽃길을 까는 주역은 팬
    ● 소셜미디어가 만들어낸 팬덤의 진화
    ● 광고 내는 팬…예기치 않은 경제 효과도
    ● 시공간의 경계 허무는 ‘덕질사회’
월드투어 콘서트 중인 방탄소년단. [동아DB]

월드투어 콘서트 중인 방탄소년단. [동아DB]

여기 한 명의 팬이 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영상을 시청하거나 공연장을 찾고, 혹은 그와 관련된 상품을 소비하는 이용자로서의 팬. 그는 좋아하는 셀러브리티의 흔적을 좇고 SNS 계정을 만든다. 그리고 스스로 미디어가 된다. 그가 팬으로서 하는 행동은 우리의 일상적 행동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스마트폰과 PC를 이용해 우리가 매일 하는 일을 떠올려보면 된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 올라온 연예인의 사진을 확인하고 ‘좋아요’를 누르거나, 리그램·리트윗을 하는 일. 사진을 퍼다 나르고 댓글을 달고 또는 계정을 팔로잉하는 일. 이런 행동은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 누구라도 한 번쯤 해봄직한 ‘미디어 실천’이다. 꼭 누군가의 팬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어느 순간 이 팬은 더 큰 욕심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이렇게 멋지고 아름답고 대단하다는 걸 불특정 다수에게 알리고 싶은 것이다. 문득 보니 분위기는 좋다. SNS 계정에 팔로어가 점점 늘어난다.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도 부쩍 많아진 것 같다. 이내 그는 스스로를 좀 더 적극적인 팬으로 규정한다. 

“나는 누군가의 팬이자 콘텐츠를 생산하는 프로듀서야.”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팬의 일상이지만 그 역할은 과거에 비해 가히 혁명적으로 달라졌다. 이제 팬들의 실천은 셀러브리티의 대중적 인지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거라면 소속사가 전담했을 법한 글로벌 홍보와 마케팅의 일부도 팬들의 몫이다. 팬들은 소비자를 넘어 창작과 재창작의 과제를 담당하고 있다. 기술 진화 덕분에 현실화한 오픈 소스의 활용이 주된 동력이 됐다. 콘텐츠의 키워드는 소유가 아닌 공유로 변했다. 이에 따라 콘텐츠 유통 전반에 팬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제 팬은 불특정 다수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PR까지 맡은 또 하나의 생산자로 변모했다.


팬덤의 물리적 기반 소셜미디어

5월 20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즈 2018’ 객석에서 방탄소년단 ‘호석’(멤버 제이홉의 본명) ‘방탄’ 등 한글 응원 문구가 등장했다. [AP=뉴시스]

5월 20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즈 2018’ 객석에서 방탄소년단 ‘호석’(멤버 제이홉의 본명) ‘방탄’ 등 한글 응원 문구가 등장했다. [AP=뉴시스]

콘텐츠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는 과정은 순간적이다. 어디서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사회에서 하나의 콘텐츠가 복제돼 확산되는 과정은 매우 역동적이다. 이용자들이 콘텐츠를 두고 공유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 즉시 수만 번의 조회 수와 ‘좋아요’가 뒤따른다. 덕분에 노출 기회도 많아져 수십만 클릭의 홍보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이런 공식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무리가 바로 팬덤이다. 

팬덤의 성격은 지금도 달라지고 있다. 초기의 팬은 특정 대상에 대한 애정과 친밀감에서 파생된 수용자 집단에 가까웠다. 하지만 오늘날의 팬은 콘텐츠 생산자이자 미디어 전략가, 혹은 파괴적 창조자로 떠오르고 있다. 팬은 스스로 경험을 축적하며 진화해간다. 그 경험은 팬이 콘텐츠 생산자로 활동하는 데 강력한 무기가 된다. 

이를 가능케 한 동력은 미디어 지형의 변화다. 이용자 간 즉각적인 공유를 가능케 한 소셜미디어는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생산의 개념을 바꿔놨다. 소셜미디어 공간에는 원본과 복제본이 무리 없이 공존한다. 이 공간은 각각의 팬이 만든 콘텐츠를 선별하고 홍보하고 유통시킬 힘까지 갖추고 있다. 지금의 방탄소년단(BTS)을 만든 힘도 딱 여기에 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 탄생한 다양한 일반인 셀러브리티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오늘날 소셜미디어 소비 행태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들을 팔로잉하는 이용자들이 직접 콘텐츠를 노출하고 유통시켜 큰 문화적 흐름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팬들은 이런 확산 과정을 근거리에서 지켜보며 미디어 소비 경험을 축적해왔다. 미숙한 미디어 이용자가 유입되는 과정에서도 이와 같은 적극적인 팬의 활동이 엿보인다. 예컨대 콘텐츠에 달린 코멘트에 반응하고, 댓글을 달 수 있도록 사람들을 초대하는 식이다. 혹은 서비스의 또 다른 이용자들을 불러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연예인 혹은 콘텐츠)의 유통 과정에 자연스레 동참하게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의 한복판에는 소비자이자 생산자이며, 스스로가 유통 플랫폼인 ‘멀티팬’이 있다. 

멀티팬은 또 다른 멀티팬을 창조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콘텐츠의 반복과 변주는 멀티팬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다.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다른 팬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부여로 작용한다. 이렇게 또 새로운 멀티팬이 탄생하는 것이다.


생산과 유통, 매니지먼트까지 자청하는 팬

Mnet에서 2017년 4월부터 6월까지 방영된 ‘프로듀스 101 시즌2’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을 뒤덮은 연습생들의 홍보물을 심심치 않게 봤을 것이다. 지하철역 벽면을 가득 메운 광고,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 통로의 디지털 포스터, 심지어 카페의 진동 알람벨 대기 영상이 한동안 프로듀스 101 시즌2 연습생들의 얼굴로 채워진 적이 있다. 이런 홍보물은 기획사의 작품이 아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돈을 모금하고 직접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편집해 보정하는 주인공은 팬이다. 매니지먼트까지 자청하는 셈이다. 

그 결과 지하철 노선 곳곳에 팬들이 제작한 연습생들의 벽면 광고가 가득 채워졌다. 팬 광고의 주인공이 된 연예인들도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어느덧 지하철 광고 투어에 나선 팬이 여럿 생겨났다. 이처럼 팬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과 연습생, 아티스트들을 노출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이와 같은 팬들의 전략은 잠재적 팬덤을 포섭하고 이를 더욱 확대하는 원동력이 된다. 

적극적인 팬 활동은 또 다른 경제적 효과도 창출하고 있다.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 버스 차체 외부, 카페 진동벨에 팬들이 제작한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광고대행사가 생겨날 거라 예측한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굿즈(goods)의 영토는 또 어떤가. 스냅스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인화해주는 온라인 사진 인화 업체였다. 이 업체의 사진 인화 서비스가 팬들 사이에 입소문을 탔다. 덕분에 스냅스는 팬 자신이 촬영한 사진으로 스티커, 포토북, 슬로건, 액자 등을 만들 수 있는 전문 굿즈 제작 업체로 탈바꿈했다. 

생산과 유통에 참여하는 팬의 등장은 연예인의 인기 공식도 늘려놨다. 여전히 올드 미디어를 통해 상업적 성공담을 그려내는 연예인의 숫자는 많다. 하지만 팬에 의해 만들어지는 상업적 성공담의 사례도 적잖다. 이제 셀러브리티는 팬들의 적극적 평가와 참여를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키워드가 됐다. 물론 팬들이 연예인을 기획하거나 디자인하는 직접적 프로듀서는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가만히 안방에 앉아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길 막연히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이제 멀티팬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을 노출시키기 위해 숙지해야 할 전략적이고 기술적인 요인들을 잘 이해하고 있다. ‘직캠’이라는 콘텐츠를 만들어낸 주인공도 팬들이었다. 숫자가 많은 아이돌 멤버들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분할화면에 나뉘어 담긴다. 이 중 좋아하는 멤버만 골라 카메라에 담아 유통하던 콘텐츠가 바로 직캠이다. 덕분에 역주행에 성공한 아이돌도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셀러브리티 앞에 꽃길을 까는 주역은 팬이다.


국경과 세대를 무너뜨리는 창조적 파괴자, 팬

 BTS를 세계 정상으로 이끈 공식 팬클럽 아미는 다양한 현장에서 방탄소년단을 응원하며 애정을 드러낸다. [동아DB]

BTS를 세계 정상으로 이끈 공식 팬클럽 아미는 다양한 현장에서 방탄소년단을 응원하며 애정을 드러낸다. [동아DB]

오늘날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해 ‘덕질’을 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언어 장벽이나 물리적 거리로 인해 국경을 뛰어넘지 못하던 과거의 팬 활동은 어땠나. 설사 이 경계를 뛰어넘는다 해도 일정한 시차까지 극복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팬 활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국경 없이 연결되고 있다. 많은 팬이 좋아하는 외국 배우의 언어를 배우고 소통하려 노력한다. 국내 연예인의 인스타그램에는 ‘oppa(오빠)’ ‘unni(언니)’라는 댓글이 자주 엿보인다. 할리우드 배우들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라오는 사진 중에는 때로 한글로 쓰인 서포트 물품이 등장한다. 그야말로 ‘덕심으로 대동단결’인 팬덤의 물결이다. 

우리는 안방에 앉아 킴 카다시안의 실시간 행보를 인스타그램으로 엿본다. 방탄소년단의 중국팬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웨이보에 접속해 BTS의 국내 활동을 실시간 시청한다. 몸은 한국에 있지만 덕질은 전 세계를 오갈 수 있는 셈이다. 지금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팬덤에서 우문이 됐다. 이미 시공간을 초월한 ‘덕질사회’를 건너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대의 문화적 향유 격차가 커지는 상황에서 팬덤은 세대 차이도 무너뜨릴 도구가 될 수 있다. 세대별 팬 문화가 달라 일어나는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같은 대상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커뮤니티는 지속적으로 대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팬덤을 고리 삼아 각기 다른 세대가 서로를 이해할 통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미 중장년과 노년층 팬덤도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자신들의 연예인을 홍보하고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고 있다. 팬 활동은 정해진 영역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때로 이는 사회적으로 큰 파도를 일으킨다. 연예인의 기부만큼이나 주목받는 건 팬덤의 기부다. 팬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회적 이미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기부 활동에도 두드러진 행보를 보인다. 누군가를 애정을 갖고 바라본다는 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을 갖고 있다. 팬들은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고 다니며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촬영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는 기존 상업광고보다 기술적으로 훨씬 트렌디한 홍보 영상을 탄생시킨다. 헌혈 증서를 모아 연예인의 이름으로 기부하는 것도 팬덤의 다면적인 모습 중 일부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건 결국 연예인에 대한 팬들의 애정, 즉 ‘팬심(fan心)’이다. 팬이 촬영한 영상이나 사진이 상업광고와 다른 까닭은 그 콘텐츠에 팬이 품은 감정이 스며들어 있어서다. 말하자면 일종의 ‘감정적 생산물’인 셈이다. 그 차이는 미묘해 보이지만 실상 매우 크다. 팬은 좋아하는 연예인을 꾸준히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온 ‘시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감정이 반영된 콘텐츠가 대중적인 취향과 맞아떨어질 때, 그들의 연예인은 ‘수많은 사람의 연예인’이 된다. 이게 팬들이 만들어내는 ‘꽃길’이다. 한 송이 한 송이 작은 꽃일지 몰라도, 때로 그것이 국경을 넘고 세대를 부순다. 황홀하지 않은가.


신동아 2018년 8월 호

| 장민지 한국콘텐츠진흥원 선임연구원 9hirun@kocc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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