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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분석

새마을운동, 산림녹화, 통계표준화…

김정은, ‘北의 박정희’ 될 수 있을까

  • |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새마을운동, 산림녹화, 통계표준화…

  • ●朴 “외자유치-경제개방” 金 “자력갱생-경제개혁”
    ●朴 “민생 우선 경제정책” 金 “국방 우선 경제정책”
    ●朴 “핵 포기로 경제발전” 金 “핵 포기 머뭇…” 결정적 차이
새마을운동, 산림녹화, 통계표준화…
북한은 2017년 11월 화성-15형 발사로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가리켜 전문가들은 이제 핵을 포기하고 경제성장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전략적 결단’으로, 과거와 다른 ‘근본적 변화’라고 평가했다. 특히 올해는 2016년 7차 당대회에서 ‘국가경제 발전 5개년 전략’을 선포한 지 3년차가 되고, 건국 70주년이 되는 해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가시적인 경제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경제 행보를 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까지 더해지면서 북한의 경제 발전 의지에 대한 신뢰성은 높아 보였다. 더욱이 김정은 위원장은 2차례 남북 정상회담, 3차례 북·중 정상회담,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는 한편 경제협력과 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정희의 길’ 걷는 듯하지만…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가 박정희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가 박정희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변화를 두고 일각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김일성의 길’을 버리고 ‘박정희의 길’을 걸으려 한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몇 가지 측면에서 닮아 보인다. 

첫째, 경제개발에 국가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겠다는 정책 변화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6년 5월 36년 만에 개최한 7차 당대회를 통해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의 전면적 실시와 더불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선포 및 ‘휘황한 설계도’를 제시한 바 있다. 이후 지난 4월 20일 제7기 3차 전원회의를 통해 “핵경제 병진노선하에 핵무기 병기화를 완결했으므로, 체제 전반 사업을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집중”하겠다는 정책 변화를 제시했다. 이는 마치 박정희 대통령 시절 1962년부터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국력을 경제개발에 총집중시키며 전 국민을 결속시킨 점과 유사해 보인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 지도가 경제에 집중되고 있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 지도가 경제에 집중되고 있다.

둘째, 1960년대 후반 2차 5개년 경제계획에 따라 실시한 새마을운동과 비슷한 형태의 경제활동을 북한이 추진한다는 점도 그러하다. 북한은 도로, 철도, 항만, 통신, 전력, 공공서비스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와 시설 확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 도로철도 협력 사업에 적극적이며 고속전철에 대한 관심을 노골적으로 표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지도 상당 부분이 경제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 어랑천 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형식주의나 탁상행정식 태도에 대한 경계를 강하게 요구하는가 하면, 6월 북·미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의 본격적인 경제 현장 시찰에 발맞춰 북한은 새로운 대중운동인 ‘증산돌격운동’을 벌이고 있다. 

셋째, 북한의 나무심기 운동이 박정희 대통령의 산림녹화 사업과 유사해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산림 복구를 김일성, 김정일의 유훈이자 후대에게 물려줄 재산으로 현 시기 가장 중대하고 우선적인 정책 추진 과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5년 ‘전당, 전군, 전민이 산림 복구 전투를 힘 있게 벌려 조국의 산들에 푸른 숲이 우거지게 하자’는 저서를 발표한 바 있다. 북한은 올 2월, 지난 3년간 산림복구전투 1단계 성과로 전국적으로 수십억 그루 나무모를 생산했다고 발표하고, 식수절(3.2)을 맞이해 전국 각지에서 궐기모임과 나무심기를 진행했다고 발표하는가 하면, 산림 복구와 국토환경을 위한 산림연구원 착공(4.19) 등 산림 복구에 공을 들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체 인구조사를 통해 사회 전반에 대한 계획과 관리를 효과적으로 진행하고자 한 점도 유사해 보인다. 북한은 2018년 전체 인구조사에 앞서 2017년 전국적으로 세대, 어린이, 여성들의 생활조건과 보건, 교육, 영양, 위생실에 대한 시범조사를 국제 통계 표준에 맞게 실시하는 등 통계 국제표준화 정책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사점은 박정희 시절 한국의 압축적 경제성장의 원동력과 비교해볼 때 일부에 불과하다. 경제성장의 주요 원동력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박정희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근본적 차이가 있다. 

우선, 북한은 김일성 시대부터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개혁개방을 추진해왔지만, ‘개방’에 매우 제한적 조치를 시행해왔고, 이러한 추이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3년부터 경제개발구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며 21개의 경제개발구 설치로 외부 투자를 유치하고자 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전략적 도발 증대에 따른 대북제재 강화로 경제개발구 정책은 사실상 동력을 잃고 표류해왔다. 

또한 2016년과 2017년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 및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로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도 더욱 강경해졌다. 북한의 무역총액은 2015년을 기점으로 2012년 집권 때보다 감소하기 시작했고, 2017년 화성-14형 시험발사에 따른 안보리 결의안 2371호와 6차 핵실험에 따른 2375호로 석탄, 철강, 수산물, 섬유제품 등 북한의 5대 수출품 수출이 금지되었다. 화성-15형 시험발사에 따른 안보리 결의안 2397호는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24개월 내 복귀하도록 조치함으로써 북한의 외환 유입은 최대한 차단되는 상황이 조성됐다. 그 결과 2017년 북한 경제는 20년 만의 최악인 마이너스 3.5% 성장에 그쳤다.


비핵화 외면 대북제재 자초

더욱이 올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하겠다고 했지만 북한은 아직 비핵화를 위한 이행조치를 하지 않고 있어서 대북제재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오히려 미국은 추가 대북제재까지 내놓았다. 올 상반기 김정은의 화려한 외교전 데뷔가 북한의 경제 개혁·개방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북한은 오히려 자강력 제일주의를 내세우며 생산성 증대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우리식의 현대화’ ‘국산화’로 2016년의 ‘70일 전투’ ‘200일 전투’ ‘만리마 운동’ 같은 생산성 증대 운동이 2018년 하반기에는 ‘증산돌격운동’으로 이름만 바꿔 이어진 것이다. 북한 경제는 내수 중심의 생산 증대 속도전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이 1964년 12월 서독 방문을 통해 에르하르트 총리와의 회담에서 서독이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를 이해하고 충고를 받아들여 실질적으로 이행한 것과 큰 대조를 이룬다. 당시 에르하르트 총리는 독일의 경제성장이 도로, 항만 등 기간시설의 정비, 공업 투자, 시장경제 복구와 더불어 프랑스와 손을 잡았기 때문이라며, 박정희 대통령에게 일본과 손을 잡고 경제 발전을 하라는 충고와 함께 담보가 필요 없는 재정차관 2억5000만 마르크(약 4770만 달러)를 줬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65년 6월 한일기본조약을 통해 확보한 무상자금과 차관을 경제 발전의 종잣돈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 발전의 종잣돈을 얻기 위한 결정을 아직 하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단 한 번의 기회가 왔을 때 무엇을 선택하겠냐”며 향후 북한의 번영된 모습과 핵이 발사되는 장면이 교차 편집된 영상물을 보여줬다. 완전한 비핵화를 단행할 경우 북한의 경제 번영과 발전을 위해 미국을 비롯해 주변 국가들이 투자와 지원을 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적극적 비핵화 조치를 통해 대북제재를 해제하며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orld Bank)을 통한 차관이나 북·일관계 개선을 통한 개발비용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보다는 북·중관계 개선 및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협력과 지원에 의존하고자 한다. 사회주의 경제 건설이라는 미명 아래, 자력갱생과 자급자족, 국산화를 외치며 과거의 경제 건설 방식을 답습하는 셈이다. 공장과 농업 분야에서의 제한적인 개혁 조치와 북·중 접경지역 및 남북경협을 통한 부분적 개방은 정세 변화에 따라 취약성을 보여왔고 제한된 이익 창출에 머물러왔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한 국방 우선 정책

박정희 대통령은 차관 등을 통해 경제개발의 초석을 다졌다. 사진은 1970년 포항제철 착공식 모습.

박정희 대통령은 차관 등을 통해 경제개발의 초석을 다졌다. 사진은 1970년 포항제철 착공식 모습.

북한의 경제 문제 심화는 국방 중심의 경제정책을 포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1960년대 북한은 2차 5개년 계획이 실패하자 경제 발전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해 ①경제·국방 병진노선의 폐기 내지 완화와 ②외자 유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북한은 경제·국방 병진노선은 유지하면서 동시에 소련 및 서방 차관 도입을 적극 추진했다. 대외적으로 국방예산의 규모를 줄이기 위해 제2경제위원회를 만들어 국방비를 이원화하고 군수경제 부분은 공개하지 않았다. 국방예산을 줄이지 않고 국가 전체 예산 안에 상당 부분을 숨겨서 유지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북한은 합영법 등을 통해 개혁개방을 추구했지만, 1987년 8월 140개 서방 채권은행단으로부터 채무불이행 국가로 지정되면서 서방에서 자본을 유치하기가 불가능해졌다. 

고난의 행군 이후 김정일 위원장 역시 경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우선 군대를 동원해 경제 활동이 마비된 협동농장, 기업소 등을 정상화하고 토지 정리사업, 도로·발전소 등 사회간접자본 분야의 건설을 시작해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했다. 또한 군수공업을 경제 회복의 출발점으로 삼아 점차적으로 인민경제 부문의 정상화를 추진하고자 했다. 나아가 7.1 경제관리개선 조치와 더불어 남북관계와 북·중관계 개선에 따른 남북경협과 지원, 중국으로부터 수입 확대 등으로 마이너스 경제성장에서 플러스 경제성장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1차 핵실험을 단행한 2006년부터 시장억제조치를 취하며 북한 경제를 다시 마이너스 성장세로 전환시켰다. 그 결과 북한경제는 2006년 이후 2017년까지 평균 경제성장률이 연 0.25%로 10년 넘게 저성장에 머물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애민주의를 내세우며 농업·경공업 중심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집권 이후 2017년 11월 핵무력 완성 선언에 이르기까지 4차례의 핵실험과 스커드, 노동, 무수단, 북극성-1·2형, 화성-12·14·15형, 은하 3호·광명성에 이르기까지 41회에 걸쳐 61발 발사로 군사비 지출을 증대시켰다. 이는 김정일 시대와 비교해볼 때 약 4배 많은 수치이고, 김일성·김정일 시기에 발사한 탄도미사일의 총합보다 약 2배 많은 수치다. 즉 김정은 시대도 여전히 국방 우선 경제정책이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김일성 시대의 경제·국방 병진정책이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핵·경제 병진정책으로 지속 발전해온 점을 봤을 때, 북한 경제는 대외선전과 달리 민생 우선의 경제정책으로 전환됐다고 볼 수 없다.


‘핵 보유’ ‘국방 우선’ ‘내수 의존’ 한계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북한은 이곳을 폐쇄했지만 비핵화에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북한은 이곳을 폐쇄했지만 비핵화에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닉슨과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발언은 박정희 대통령의 자주국방 필요성을 증대시켰고, 핵 개발은 자주국방 달성의 핵심 요소로 간주됐을 것이다. 그러나 비밀리에 핵 개발을 진행한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은 핵 개발 중단을 요구했다. 미국은 한국에 북한의 어떠한 공격에도 남한을 보호할 것이라며 핵무기 보유의 불필요성을 재확인해줬다. 한국은 한미연합사 창설과 핵우산 제공으로 핵 개발을 중단하고 경제 발전에 집중하며 단기간에 고도성장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선택한 길을 아직 따르고 있지 않다. 지난 4월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는 전원회의에서 그가 한 말은 ‘핵 보유를 포기하고 완전히 경제 발전에 집중’하겠다는 게 아니라 ‘핵 개발에 완전히 성공했기 때문에 경제 발전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핵경제 ‘병진정책’에서 핵경제 ‘선후정책’으로 변화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의 강력한 경제 건설 의지에도 불구하고 촘촘한 대북제재로 대외투자 유치나 남북경협을 비롯해 주변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이 쉽지 않다. 북한은 비핵화 의지만 보이고 이행하지 않는다면 인도주의적 지원에 기초한 현상 유지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단기간에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비핵화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한다. 

종합해보면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닮은 듯하지만 3가지 분야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핵 보유, 국방 우선 정책, 내수에만 의존하는 자력갱생은 기대만큼 북한의 경제성장을 가져올 수 없다. 돌이켜 보면 북한이 경제 발전을 앞세우며 대화로 나온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0년대 초부터 북한은 경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도발 국면에서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며 개혁·개방을 적극 추진하고자 했지만 경제 개혁·개방은 제한적으로 진행되었고, 군수공업을 비롯해 국방 분야에 대한 지출을 줄이지 못했다. 

더욱이 경제개혁을 통한 변화가 나타나면 다시 통제하는 정책을 반복함으로써 근본적으로 단행하지 못했다. 특히 1980년대 북한은 중국과 유사한 개혁·개방을 시작했지만 중국은 개방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수출주도형 고도경제성장으로 나갔지만, 북한은 제한된 ‘모기장’식 개방과 소극적 개혁으로 현재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북한 경제 체질 개선이 전제

북한이 경제 문제 심화로 번번이 대화 국면에 나와 경제협력과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러한 요청은 북한 사회 내부의 과감한 경제 개혁·개방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북한 경제는 겉으로 성장한 듯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저성장 늪에 빠져 있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북한이 대화 국면에 나올 때마다 요구하는 경협 문제에 대해 우리를 비롯해 주변 국가들은 경협과 투자에 근본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작은 것에서부터 조금씩 협력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중화학 및 군수공업 중심의 북한 경제에 대한 구조적 변화를 전제로 한 경제협력과 투자가 진행돼야 한다. 북한 경제의 체질 개선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외부의 투자나 경협은 지엽적일 수밖에 없고, 북한의 비핵화 추진에 대한 동력 역할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경제개혁과 경제개방에 대한 적극적 요구를 통해 선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즉 김일성 시대는 병진정책을 지속하는 가운데 외환 도입을 통해 경제를 회생시키고자 했고, 김정일 시대는 군수경제를 중심으로 경제 활성화 조치를 하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는 점을 김정은 정권에 각인시켜야 한다.


신동아 2018년 9월 호

|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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