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세관원에 담배 6갑 주고 서류 담긴 노트북 3대 가져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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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强대强 대치]개성공단 폐쇄
귀환인력들이 밝힌 개성공단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다음 ‘공장 문 닫는 거냐’고 물어봤었다. 공장이 문을 닫게 되면 어쩌나 걱정하는 표현이었는데, 진짜 이렇게 돼 버리니 그분들(북측 근로자)이 걱정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는지….”

11일 쫓기듯 개성공단을 빠져나와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로 입경한 개성공단 관계자들은 이제 다시 찾지 못할지도 모르는 개성공단의 현재 모습을 생생하게 털어놨다. 공단을 일터로 삼아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의 후유증이 상당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많았다.

개성공단부속의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김수희 씨(43·여)는 “개성공단 근로자들은 집에서 빨랫감을 가져와서 공단에서 몰래 빨래를 하곤 했다”고 전했다. 평소 수돗물을 쓰기 힘든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개성 시민 상당수는 개성공단에서 공급하는 수돗물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한 정부가 11일 밤 12시 즈음 개성공단에 전기를 끊었고, 이 여파로 공단 내 정수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30여만 명이 거주하는 개성시에도 식수·생활용수난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근로자 5만4000명의 밥줄도 당장 끊겨 동요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북 전문가들은 또 전체 개성 근로자의 30%가량이 200km 떨어진 평양에서 온 사람들이어서 파장이 평양에까지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개성공단에서 일했다는 김 씨는 “북측 근로자를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살도 찌고 혈색도 좋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공장 문을 닫는 것은 원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개성공단에서 물품을 가져나갈 때 마주쳐야 하는 북한 세관 직원들은 남한 직원들과 서로 경계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평소 사소한 실수는 넘어가 주다가도 비상사태가 되면 어떤 트집이라도 잡으려고 혈안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11일 짐도 제대로 못 챙기고 허겁지겁 나온 남한 직원들에게 “당초 신고한 시간보다 늦게 왔다”며 벌금 50달러를 매겼다는 얘기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전자 부품업체 직원인 한모 씨(39)는 “세관을 통과할 때 담당자에게 담배 두 갑씩 찔러주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다”며 “일종의 뇌물이지만, 트집 잡는 것을 피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한 씨는 “추방 과정에서 회사의 모든 서류가 담긴 노트북 3대를 가져와야 했지만 아무래도 반출이 걱정돼 세관 직원에게 한꺼번에 담배 여섯 갑을 건넸다”며 “이 덕분에 검문 없이 노트북을 가져올 수 있었다”고 밝혔다. 다른 입주업체 직원은 “이런저런 일로 부딪칠 때도 있지만 자주 보는 사이다 보니 친하게 지내는 편”이라며 “공단을 떠나올 때도 ‘다음에 봅시다’라고 인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성규 sunggyu@donga.com·김호경 기자
#개성공단#폐쇄#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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