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한국 떠날 이유 수다 떨며 묻는다… “우린 행복해질 수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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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장강명 지음/204쪽·1만3000원·민음사
기자 출신 작가의 ‘취재 소설’… 미래 두려운 우리의 현실 풍자

정수진, 방향도목적도_People in landscape, 2007, Oil on canvas, 150×200cm. 그림 속 사람들은 어디론가 가면서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그것이 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다. 이런 모습은 주인공 계나의 삶과 생각과 닮았다. ‘한국이 싫어서’의 책 표지 이미지로 선택된 이유다. 민음사 제공
정수진, 방향도목적도_People in landscape, 2007, Oil on canvas, 150×200cm. 그림 속 사람들은 어디론가 가면서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그것이 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다. 이런 모습은 주인공 계나의 삶과 생각과 닮았다. ‘한국이 싫어서’의 책 표지 이미지로 선택된 이유다. 민음사 제공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주인공 ‘계나’가 입을 연다. 일인칭 수다로 진행되는 소설에서 계나는 조목조목 한국에서 살 수 없는 이유를 열거한다. ‘SKY 명문대’ 출신마저 한국이 버거워 이민을 가기 위해 용접공 자격증을 따고 ‘이민계’에 돈을 붓는 오늘 한국의 현실을 세밀하게 담았다.

서른을 목전에 둔 계나는 종합금융회사에 간신히 취직했지만 매일 아침 지옥철 출근길에 지쳐 간다. ‘금수저’를 못 물고 태어난 못난 운명인데, 치열하게 목숨을 걸 근성도 없다. 딱 하나, 현실 인식만은 냉철하다.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사자한테 잡아먹히는 톰슨가젤이 될 순 없다며, 결혼하자고 붙잡는 남자친구와 궁상맞은 가족을 두고 호주로 떠난다.

호주도 평화로운 나라는 아니었다. 외국인 친구의 기행 탓에 전 재산을 날리고, 한국인에게 속아 범죄자로 몰릴 뻔한다. 국외자의 설움을 절절히 느끼지만 한국에서도 국외자였단 생각에 후회는 없다.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 줄 구성원을 아꼈지. 김연아라든가, 삼성전자라든가. 그리고 못난 사람들한테는 주로 ‘나라 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 줬어.”

계나가 몸으로 배운 행복론은 설득력 있다. 그는 행복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으로 정의한다. 전자는 뭔가를 성취할 때, 후자는 순간순간 느끼는 행복이다. 나보다 조금이라도 못난 사람을 ‘사람대접’ 않는 한국에선 절대 현금흐름성 행복을 쟁취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수는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계나는 한국에 돌아왔다가 다시 떠나며 고국을 두 번 죽인다. 심하게 과장하면 미래 한국의 볼모가 될 20, 30대의 대탈출을 부추기는 반체제 소설이 아닌가 싶어 ‘작가의 말’이 궁금했다. 정작 ‘작가의 말’엔 그의 말은 없고 소설을 쓰면서 참고하고 취재한 출처만 잔뜩 남겨 두었다.

취재가 작가의 힘이다. 저자 장강명(작은 사진)은 동아일보 기자로 11년 동안 일하다가 작가로 변신했다. 2011년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해 수림문학상(열광금지, 에바로드), 제주 4·3평화문학상(2세대 댓글부대), 문학동네작가상(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연거푸 수상하며 주목받는 작가로 변신했다.

소설을 읽다가 대출받아 겨우 마련한 전셋집 구석에서 잠깐 졸았다. 꿈속에서 젊은이들이 한 손엔 이 책을 들고 다른 손엔 이민 가방을 들고 인천공항 출국장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언뜻 보았다. 우리는 진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장강명은 묻는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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