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직격탄 ‘대기업 화이트칼라’… 회사 어려울때면 구조조정 1순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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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악화 기업들, 사무직부터 퇴출… 금융일자리 2014년 2만4000개 사라져
노조 보호 받는 생산직과 대조… 고졸-대졸 임금역전 현상 뚜렷

“40대인데 나가라니요. 가장 만만한 과장급 사무직이 우선 구조조정 대상이 된 거죠.”

현대중공업 사무직 근로자 박민규(가명·45) 씨는 최근 매일 소속 부서장을 만난다. 회사가 진행하고 있는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됐지만 이를 거부하자 소속 부서장이 매일 불러 사실상의 퇴직 압박을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3분기(7∼9월)까지 3조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낸 현대중공업은 올 초 사무직 과장급 이상 1500명을 내보내기로 했다. 사무직들은 이에 반발해 사무직 노조까지 만들었다.

사무직 노조 관계자는 “지난해 처음 도입한 연봉제나 이번 희망퇴직 모두 과장급 이상 사무직만을 대상으로 했다”며 “회사가 사무직은 노조가 없다는 점을 악용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반면 생산직 근로자들은 지난해 5월부터 같은 지역에 있는 현대자동차 생산직 수준의 임금을 달라며 여전히 회사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 같은 회사에 다니지만 사무직은 고용불안에 떨고 있고 생산직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사무직 근로자인 화이트칼라들이 외환위기를 지나 ‘대량 해고’ 광풍이 몰아쳤던 2000년 이후 15년 만에 경제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구조조정을 자제해온 대기업들이 최근 경영실적 악화로 생산직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무직 근로자들부터 우선적으로 내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노조의 보호 아래 있는 대기업의 블루칼라(생산직 근로자)들은 내년 60세 정년연장제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노사협약으로 정년을 보장받는 등 안정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 화이트칼라 ‘직격탄’

최근 내로라하는 대기업들마저 혹독한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화이트칼라들은 소리 소문 없이 회사를 나가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대표적인 화이트칼라 업종인 금융권으로 지난해 2만4000여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창사 이래 한 번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대신증권이 지난해 6월 전 직원의 14.7%인 302명을 명예퇴직시켰다. GS칼텍스 역시 지난해 5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인적 구조조정을 했다.

반면 노조가 있는 대기업 생산직은 여전히 임금 인상 등 근로조건 향상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7조550억 원으로 4년 만에 가장 적었지만 노조는 임금협상에서 기존처럼 기본급 인상과 각종 수당을 포함해 1인당 2000만 원 이상의 현금을 챙겼다. 지난해 말 워크아웃을 끝낸 금호타이어도 곧바로 파업에 들어가면서 사측과 갈등을 빚다가 결국 15% 기본급 인상안을 관철했다. 대기업의 노무담당 임원은 “경영진이 노조와 갈등을 빚고 싶어 하지 않아 가급적 노조 요구를 들어주자는 분위기가 최근 몇 년 새 급속하게 퍼졌다”고 전했다.

○ 근로조건 역전현상 뚜렷

국내 10대 그룹 계열사인 A기업에서 근무하는 44세의 사무직 근로자 김모 씨와 생산직 근로자 이모 씨. 석사학위를 따고 입사한 김 씨의 지난해 연봉은 성과급을 합쳐 모두 7300여만 원에 이른다. 반면 이 씨는 대졸보다 낮은 연봉으로 회사생활을 시작했지만 호봉이 쌓이고 각종 수당을 챙기면서 지난해 1억2000만 원을 받았다. 김 씨보다 5000만 원가량 소득이 많은 것이다.

김 씨와 이 씨처럼 사무직과 생산직 간의 임금 역전현상은 이미 추세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노동시장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대학 교육을 받고 노동시장에 진입한 34세 이하 청년층 가운데 고졸자 평균 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대졸자는 1980년 2.4%에서 2011년 23.4%까지 늘었다.

○ 정년연장과 임금체계도 한몫


화이트칼라의 위기는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한국 기업들이 한계상황에 이른 데다 내년부터 300명 이상의 사업장에 대해 정년연장(60세)이 의무화한 영향도 크다. 일부 기업이 인력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상대적으로 손쉬운 화이트칼라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인사노무 담당자들은 사무직의 위기가 임금체계와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현재 국내 대기업의 생산직 근로자들은 기본급이 적고 여기에 각종 초과 수당을 더해 임금을 받는다. 생산량에 따라 탄력적으로 임금을 조절할 수 있는 셈이다. 반면 사무직들은 기본급이 많고 수당은 적어 고정비용이 크다. 우선적으로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이유다.

제조업체 관계자는 “관리직에 대해서는 개별 인사고과가 이뤄지는 반면에 팀으로 근무하는 생산직은 개별 평가가 어려운 점도 상대적으로 퇴직 압력을 덜 받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노사정위를 통해 추진하는 임금체계 개편에서 대기업 생산직들이 한발 양보해야 사무직 근로자들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진 mint4a@donga.com·최예나 기자
#대기업#화이트칼라#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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