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 판사들, 헬멧 없이 오토바이 타본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교통경찰 치어 숨지게한 대학생… “헬멧 안써 맞바람에 눈 못떴다”
재판부 “주장 사실일까” 직접 체험… “일리있지만 중과실” 1년2개월刑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강영수)는 두 달 전 시속 60km로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서 ‘현장 검증’을 했다. 지난해 20대 대학생이 교통위반 단속 경찰관을 치어 숨지게 한 바로 그 도로였다. 헬멧을 쓰지 않고 경찰이 모는 ‘오토바이 사이드카(옆자리 1인승 좌석)’에 오른 강 부장판사는 세찬 맞바람에도 두 눈을 부릅떴다. “강한 바람 때문에 (먼 곳을 보기 어려워) 경찰을 보지 못했다”는 피고인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지난해 11월 15일 대학생 박모 씨(25)는 헬멧 없이 오토바이를 몰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던 중 불법주행 단속에 나선 교통경찰관 A 씨(51)를 치어 숨지게 했다. 사고 당시 폐쇄회로(CC)TV엔 박 씨의 오토바이가 형광 조끼를 입고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A 씨를 치받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1심 재판부는 “추운 날씨와 맞바람에 눈을 똑바로 뜰 수 없어 경찰을 못 봤다”는 박 씨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가 아닌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항소심을 맡은 강 부장판사와 배석판사들은 사고 당일과 비슷한 날씨를 보인 날을 골라 직접 오토바이에 타봤다. 피고인이 겪은 것과 똑같은 상황을 접하기 위해 판사 3명 모두 쓰고 있던 안경도 벗었다.

재판부는 “현장검증 결과 차가운 바람에 눈물이 날 정도여서 박 씨의 주장을 허위로 단정하기 어렵고, 박 씨가 충돌 순간 자신을 보호하려는 동작이나 속도를 줄이는 등 반사작용을 전혀 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고의로 사고를 일으켰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경찰관 사망이라는 결과와 중대한 과실에 비해 형이 가볍다”며 1심 형량보다 4개월을 더 높인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했다고 21일 밝혔다. 강 부장판사는 “직접 현장에 가보니 위험을 무릅쓰고 임무를 수행하는 경찰관의 애환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오토바이#현장검증#헬멧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