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정치 ‘옐로카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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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혁신 ‘골든타임’ 2부]<4>답답한 정치, 제대로 바꾸자
(中)고질병 고치려면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요즘 야당 의원들과 마주칠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19대 국회가 개원한 지 2년 7개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국회 의원회관이나 본관에서 만난 야당 의원들이 모르는 척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래도 나는 목례라도 하려고 하는데 야당 의원들은 아예 눈인사조차 안 한다”며 “이것이 지금 국회의 현실 아니겠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지금 국회에서는 서로를 인정하고 협의하려는 노력보다는 상대방을 짓밟고 이기려는 문화가 팽배해 있다. ‘덧셈의 정치’가 아닌 ‘뺄셈의 정치’다. 의원들에게 개선 방안을 물어봤다.

○ 진영 논리만 있고 시대정신은 없다

“여야를 떠나 대부분의 의원에게 정치를 하는 가치와 방향성이 없다.”

새누리당의 한 초선 의원은 25일 이같이 잘라 말했다. 그는 “지역구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지역과 국가의 발전을 어떻게 함께 이룰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오로지 지역만 생각한다”며 “국가의 발전, 한국 사회가 가야 할 방향성 등에 대한 고민과 가치관이 없다”고 말했다.

국가와 국익보다는 자신의 지역구와 진영(陣營)의 논리에 빠져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 여야 의원들이 꼽은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3선 의원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진영에 대해 적개심, 증오심을 갖고 적으로 규정하는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며 “상대방을 설득시키려는 문화보다는 자기 진영의 극단적인 지지층을 의식한 선명성 경쟁이 진영 논리를 더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야의 견해차는 관점이 다른 것이지 정의와 불의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합리적인 토론과 정치적인 조율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당의 존재 이유는 정권 창출이다. 하지만 각 정당들이 보여주는 무한정쟁의 이면에는 ‘전부 아니면 없다’는 극단적 사고방식이 도사리고 있다. 여당의 한 전직 의원은 “지금의 정치는 대권 승리, 총선 승리라는 권력 쟁취에만 몰입돼 있다”며 “오로지 권력 쟁취에만 몰두하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불복 논란과 진영 논리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대정신, 사회공동체의 개선 등에는 관심이 없는 ‘무지(無知)의 정치’가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 끊이지 않는 구태, ‘계파’

진영의 정치 뒷면에는 우리 정치의 고질병인 ‘계파 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

“의원총회 등을 보면 저 의원이 우리 당 의원이 맞나 싶다. 당을 위해 뭉치고 의견을 모은다는 생각은 아예 처음부터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계파를 위해 말하고 움직이는 것 같다.”

새정치연합의 한 재선 의원은 계파 정치에 대해 이같이 토로했다. 친이(친이명박)계, 친박(친박근혜)계, 친노(친노무현)계, 486계…. 국회에서는 끊임없이 계파가 생겨나고 계파 간의 반목과 분열 강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새누리당에서는 2008년과 2012년 총선에서 친이계와 친박계가 번갈아가며 상대방을 겨냥한 이른바 ‘공천 대학살’을 벌였다. 현 여권은 연이어 정권 창출에 성공했지만 각 정권 주도세력의 감정은 더 나빠졌다. 그래서 “친이계와 친박계는 불구대천의 원수와 가깝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하게 나온다.

새정치연합에서도 주요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계파 간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다. 7·30 재·보궐선거 당시 서울 동작을 공천권을 놓고 빚어진 파열음은 계파 갈등의 일단에 불과했다.

야당의 한 초선 의원은 “특정 계파에 찍히거나, 당론을 배제했다는 이유로 다음번 공천을 못 받게 되는 명분을 주기 싫으니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것이고, 나 역시 부끄럽지만 마찬가지”라며 “오픈 프라이머리 등 철저히 상향식 공천이 되면 현재 계파 중심의 국회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계파 정치도 인물 중심에서 노선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친박, 비박의 구도를 깨고 노선 중심의 정파로 바뀌어야 정당이 유기적인 조직체가 될 수 있다”며 “그러나 중진은 물론이고 초선 의원들도 이 같은 계파 정치 청산에 무관심한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자리 하나가 나면 그 자리에 가려고 (계파에) 줄을 서는 의원이 너무 많다”고 덧붙였다.

○ “왜 강경 발언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나”

계파 정치의 심화로 유발되는 또 다른 문제점은 강경파의 득세다.

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전문성이나 정책으로 존재감을 보이려 하지 않고 무조건 목소리를 크게 해서 존재감을 보이려는 의원들이 있다”며 “그들의 목적은 그런 존재감을 계파에 보여줘 다시 공천을 받으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의원의 본질적인 역할에 대한 인식과 준비 부족 역시 강경파 득세의 또 다른 원인이라는 진단도 있었다. 야당의 한 비례대표 의원은 “국회 밖에서는 갈등을 부추기거나 목소리를 크게 내도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국회의원은 그래서는 안 된다. 갈등을 조정하고 의견을 수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야당의 한 재선 의원도 “국회의원에게 중요한 것은 의원들, 국민들, 지역 유권자들과 소통하는 능력”이라며 “일부 의원은 소통 능력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소통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강경파에 대해 ‘정치를 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라는 극단적인 비판도 제기됐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될 사람들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는 사람들이다”라며 “여야를 떠나 목소리를 높이고, 극단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선거 때만 되면 잊지 않고 나오는 ‘폭로 정치’는 진영 논리와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합쳐진 결과물이다. 2012년 대선 당시에도 여야는 상대 후보자들에 대한 주식매매 부당이익 의혹, 고가 전세 논란 등 온갖 의혹 폭로를 주고받았다.

이에 대해 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상대방을 무조건 흔들어야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상대방 비난에 몰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책임한 폭로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각인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이와 더불어 ‘선거 승리=권력 독점’이라는 지금의 정치구조를 바꾸는 것도 강경파 득세와 폭로 정치를 막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법 위에 국회의원’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버젓이 담배를 물고 있다. 금연구역인데 그러고 있는 거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부터 이렇게 법을 무시하고 있으니 법이 제대로 지켜지겠나….”

국회 본회의를 마치고 나온 한 야당 초선 의원은 이같이 탄식했다. 법을 만드는 역할을 하면서 정작 그 법을 무시하는 의원들의 모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장 출신의 한 야당 초선 의원은 “국회에 와서 가장 황당했던 점이 의원들이 법을 안 지킨다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에서 법이 무서운 줄 모르는 집단을 꼽으라면 바로 국회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입법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그는 “지자체에서는 법과 규정을 어기면 곧바로 감사와 징계가 따르기 때문에 일을 할 때 관련법과 규정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찾아가며 한다”며 “그런데 막상 법을 만든다는 의원들이 정기국회 일정, 예산안 처리 일정을 너무나 쉽게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의 한 초선 의원 역시 “‘법을 만들면 법을 지켜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국회에서는 우습게 생각한다”며 “여야 모두 혁신을 외치고 있는데 ‘합의를 파기해도 괜찮다’ ‘국회 일정을 무시해도 괜찮다’ 등 국회에 만연한 집단적 면피 정신을 바로잡는 것이 바로 혁신이다”라고 지적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고성호 기자
#계파정치#국회 파행#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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