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뒷談]한국인의 청바지 사랑 60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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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위로 등산양말 끌어올린 그 아저씨’ 왜 안보일까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청바지 전문매장은 청바지로 미국 지도를 만들어 벽에 걸어 놓았다.(왼쪽 사진) ‘미국의 유니폼’으로 
불리는 청바지는 1950년대 한국에 들어와 불량함의 상징으로, 교복 대용으로, 등산복으로 계속 이미지를 바꿔가며 자리를 잡았다. 
2000년대 들어선 스키니진의 유행으로 날씬한 여성의 대표적인 옷으로 여겨진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동아일보DB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청바지 전문매장은 청바지로 미국 지도를 만들어 벽에 걸어 놓았다.(왼쪽 사진) ‘미국의 유니폼’으로 불리는 청바지는 1950년대 한국에 들어와 불량함의 상징으로, 교복 대용으로, 등산복으로 계속 이미지를 바꿔가며 자리를 잡았다. 2000년대 들어선 스키니진의 유행으로 날씬한 여성의 대표적인 옷으로 여겨진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동아일보DB
1955년 배우 제임스 딘은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청바지에 흰 티셔츠, 가죽점퍼를 입고 출연했다. 그가 입은 청바지는 반항적인 젊은이를 상징하는 문화가 됐다.

당시 한국에선 청바지 하면 미군을 떠올렸다. 미군이 입던 구제(중고) 청바지가 남대문시장에서 팔렸다. 이태원에 살던 이광희 씨(78)는 “당시 블루진은 뻣뻣해서 패션이 아닌 작업복이었다. 물이 묻어도 뻣뻣하고 비에 금방 젖지도 않았다”고 했다. 당시엔 상표에 그려진 말 두 마리를 따서 ‘리바이스’ 청바지를 ‘쌍마표’라고 불렀다.

한국에 청바지가 들어온 지 60여 년. 국립민속박물관 강경표 학예연구사와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학생들은 10∼80대 일반인 154명을 만나 한국의 청바지 역사와 문화를 구술 받은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10월 15일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청바지 물질문화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1960년대 “청바지는 깡패다”

그때 그 시절 청바지는 보기 드물었다. 서울 종로 등 번화가에서도 찾기 힘들었고 이태원 등 미군 부대 인근에서나 볼 수 있었다. 미제 청바지 대신 미군 부대 등에서 나온 군복에 물을 들여 청바지 흉내를 내기도 했다.

당시 청바지에 대한 기억은 부정적이었다. 조찬형 씨(80)는 “청바지를 깡패들이나 입는 옷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깡패들이 많이 입고 다녔다. 나쁜 이미지 때문인지 사 입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자녀들에게 사준 적도 없다”고 했다. 이광희 씨도 “미군들이 먼저 입으니까 그냥 입은 거다. 옷 잘 입는 사람들은 청바지 안 입고 신사복을 챙겨 입었다”고 했다.

대중에게 청바지를 알린 것은 배우 트위스트 김이었다. 그는 1964년 영화 ‘맨발의 청춘’에 청바지, 청재킷을 입고 나와 이후 ‘청바지 1호’ 스타로 꼽혔다. 2010년 작고하며 “청바지를 입혀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1970년대 “청바지는 청년이다”

10, 20대가 청바지 유행을 이끌었다. 주영희 씨(60·여)는 “1973년 대학 다닐 때 청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패션에 앞서가는 사람들이 주로 입었는데 대부분 나팔바지였다”고 회상했다. 당시 10대였던 조해영 씨(54)는 “청바지에 쫄티, 빨간색 베레모와 머플러, 배지를 코디했다. 청바지 뒷주머니에 색깔로 멋을 표현했다”고 했다. 청바지를 입을 때 목에 스카프도 꼭 둘렀다. 진한 파란색뿐인 청바지가 지겨워 수세미로 문대거나 락스로 색을 빼기도 했다.

국산 청바지가 하나 둘 생겼지만 사람들은 미제 청바지를 선망했다. 부산 국제시장의 일명 케네디 골목에서 미제 청바지는 고가로 팔렸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 보니 가짜 미제 청바지도 등장했다. 서울 평화시장 피복도매상이 국산 청바지 수만 장에 미국 리바이스, 캔턴 상표를 붙여 팔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신춘식 씨(52)는 “대부분 가짜 미제 청바지를 입다 보니 젊은이들 사이에서 청바지 안감에 침을 발라 밖으로 침이 배어 나오면 가짜라는 허황된 이야기까지 떠돌았다”고 했다.

1970년대 후반 송창식 김세환 윤형주 양희은 등 통기타 가수들의 등장으로 청바지는 대세로 떠올랐다. 서울 명동과 이화여대 앞에는 ‘진 스타일’ 전문점이 생겼고 고급 양장점에서 맞춰 입기도 했다. 1974년 그룹 ‘사랑과 평화’는 노래 ‘청바지 아가씨’에서 ‘청바지의 어여쁜 아가씨가 날보고 윙크 하네’라고 노래했다.

1980년대 “청바지는 교복이다”


1983년 교복 자율화가 시행되면서 백화점 청바지 매장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학교는 학부모들에게 값싸고 실용적인 청바지를 입히도록 유도했다. 모든 옷과 잘 어울리는 청바지는 코디하기도 편했다. ‘죠다쉬’ 등 외국 청바지와 함께 국내 정상급 인기 연예인이 광고하는 국내 브랜드 ‘뱅뱅’도 인기를 끌었다. 이지숙 씨(45·여)는 “다들 청바지를 입고 다녔다. 모두가 청바지를 입으니 그냥 청바지를 입어야 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해마다 유행이 바뀌어 통 넓은 바지와 좁은 바지가 번갈아 유행했다고 한다. 청바지에 청재킷을 입는 ‘청청’ 스타일, 입으면 꽉 끼는 일명 ‘당꼬바지’도 인기를 끌었다.

어른들은 등산갈 때 청바지를 입었다. 당시 산에서는 등산 양말을 청바지 위로 끌어올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유순태 씨(54)는 “청바지는 등산복으로 입기 최고였다”고 했다. 가수 윤시내는 ‘공부합시다’(1983년)에서 ‘빨간 옷에 청바지 입고 산에 갈 생각하니’라고 노래했다.

1990년대 “청바지는 브랜드다”

1990년대 청바지 브랜드는 다른 사람과의 차별성을 의미했다. 국내 청바지 업체 중 일부는 닉스, 스톰 등 한 벌에 15만 원이 넘는 고급 브랜드를 내세워 광고도 품질보단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했다. 당시 10, 20대들은 앞지퍼에 브랜드를 적은 ‘겟유즈드’처럼 상표가 눈에 확 띄는 것을 선호했다. 조영민 씨(32)는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브랜드를 입느냐에 따라 계급이 달라졌다”고 했다.

거리의 먼지를 휩쓸고 다니는 힙합 청바지도 인기였다. 곽연희 씨(32·여)는 “요즘 노스페이스 패딩으로 애들 등급을 구분하듯 논다는 애들은 힙합바지를 입었다. 그들은 힙합바지를 질질 끌고 다니며 삐삐로 연락하던 남자아이들을 만났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청바지가 모두의 일상은 아니었다. 댄스그룹 DJ DOC는 1997년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라고 노래했다.

2000년대 이후 “청바지는 체중계다”


2001년 통신업체 KTF의 CF 속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란 문구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보수적인 생각의 틀을 깨자는 메시지를 패션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것으로 포장했다. 이후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회사가 늘고 격식을 갖춘 행사에서도 청바지를 입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배우 신민아가 캘빈클라인 청바지 광고에 출연해 S라인을 과시하면서 여성들에게 청바지는 몸매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됐다. 최솔바람 씨(22·여)는 “청바지를 입을 때면 언제나 체중계 위에 올라서는 기분이라 좋지 않다”고 불평했다. 한혜진 씨(30·여)는 “청바지하면 다이어트가 떠오른다. 청바지는 날씬하고 몸매가 좋은 여자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옷”이라고 했다.

40대 이상 중년에게 청바지는 아웃도어룩에 밀려나고 있다. 안미경 씨(60)는 “청바지가 젊음의 상징이었지만 이젠 등산복도 기능성이 많아서 굳이 청바지를 입지 않는다”고 했다. 한숙희 씨(54)도 “청바지는 유행이 지난 것 같다. 얼마 전 모임에서 관광을 갔는데 청바지를 입고 온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았다”고 했다.

강경표 학예연구사는 “60년 동안 청바지가 우리 삶 속에 자리 잡았다. 리바이스 청바지 차림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든 채 반미 촛불시위에 참석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10월 15일 열리는 학술대회에는 전 세계 청바지 대가들도 참석한다. 글로벌 데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책 ‘블루진’을 출간한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대니얼 밀러 교수, 독일 리바이스트라우스 청바지 박물관 타냐 로펠트 관장, 일본 저팬블루그룹 마나베 히사오 회장 등이다. 또 청바지 역사를 볼 수 있는 특별전도 함께 열린다.  

▼ 美‘시위-허드슨진-AG진’ 경영자는 모두 한국계 ▼

지구촌 청바지… 문화 그리고 산업


인도 뭄바이 최대 빨래터인 도비가트에 내걸린 청바지.
인도 뭄바이 최대 빨래터인 도비가트에 내걸린 청바지.
국립민속박물관은 인도 일본 미국 등지의 청바지 현지조사도 진행했다.

다른 나라는 미국의 상징인 청바지를 어떻게 소화했을까.

인도에서 청바지는 선망과 금기다. 인도 금융의 중심지인 뭄바이는 청바지에 개방적이다. 인도 디자이너 리투 데오라 씨(56·여)는 “요즘 뭄바이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청바지를 입는다. 더이상 소수의 패션이 아니라 중장년층도 입는 인기 의복이다”고 말했다.

‘발리우드’로 불리는 인도 영화 속 청바지도 인도인의 생각을 바꾸고 있다. 영화 속에서 청바지를 입은 남자는 영웅으로 묘사되고 여자는 진취적이고 도시적인 이미지를 가진 것으로 인식된다. 프라사드 씨(47)는 “영화 속 도시에서 멋지게 일하는 역할은 쉴 때 항상 청바지를 입는다. 스타가 입은 청바지를 사려고 한다”고 말했다.

일본 청바지의 성지로 불리는 오카야마현 구라시키를 찾은 일본 젊은이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일본 청바지의 성지로 불리는 오카야마현 구라시키를 찾은 일본 젊은이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반면 인도 남부 칸누르 지방에서 청바지는 금기다. 2008년 한 조사에서 여성의 청바지 착용률은 0%였다. 남자도 10%밖에 입지 않는다. 이곳에선 고온다습한 인도 기후에 어울리지 않는 청바지는 패션일 뿐 옷은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다. 청바지를 입던 젊은이도 결혼을 하면 전통의상이나 면바지를 선호한다.

일본은 청바지를 받아들여 현지화했다. 일본 오카야마 현 구라시키 시 고지마 지역은 일본 최초로 청바지를 생산해 ‘청바지의 성지’로 불린다. 일본은 돌을 넣어서 세탁하는 스톤 워싱, 모래분사를 활용한 샌드워싱 기법을 창안했다. 미국에서 수입한 청바지 천이 뻣뻣하고 두꺼워 부드러운 옷을 선호하는 일본인들에게 맞추기 위한 노력이었다. 하지만 청바지 브랜드 이름은 미국식으로 ‘캔턴’이나 ‘빅존’으로 지었다. 마나베 히사오 저팬블루그룹 회장은 “1964년 도쿄 올림픽 때부터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이 강했다. 자유를 만끽하는 미국이 어두운 일본과 대비됐다”고 했다.

미국은 1인당 청바지를 평균 7, 8벌씩 갖고 있는 청바지의 나라다. 평균 일주일에 4일씩 청바지를 입는다. 미국 기업과 단체에서는 청바지를 활용한 다양한 공익캠페인을 벌인다. 비영리법인 단체 ‘두섬싱’은 2008년부터 ‘10대들을 위한 청바지’ 캠페인을 벌인다. 학생들이 헌 청바지를 수집해 노숙인에게 기부하는 캠페인이다. 청바지 업체는 특정한 날 사람들이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면 기부금을 내기도 한다. 친한 사람들끼리 청바지를 돌려 입는 모임도 활발하다. 청바지가 좋은 일에 많이 쓰이다 보니 ‘친환경’ 이미지까지 갖게 됐다.

미국 프리미엄진 시장에선 한국계 미국인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미국 여배우 메건 폭스, 린지 로언, 국내 스타 소녀시대, 고소영이 입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청바지 시위(Siwy)의 경영자는 1982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크리스 박이다. 허드슨진, AG진 대표도 한국인이 맡고 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민재 인턴기자 연세대 행정학과 4학년
#청바지#제임스 딘#허드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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