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시신 확인]주민 눈 피해 산길 도주… 육포-검은콩으로 연명한듯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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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 행적 재구성]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매실밭은 전남 순천시 서면 신촌마을 외곽 야산에 있다. 유 전 회장이 은신했던 송치재터널 인근 은신처 ‘숲속의 추억’에서 직선으로 3km 거리다. 신촌마을 지척에 국도 17호선이 있고 마을 중앙을 국도 22호선이 관통한다.

시신 발견 현장인 매실밭은 국도 22호선 주변 경사가 있는 마을길(소로)을 100여 m 올라간 뒤 주택 뒤편 산길을 따라 50m를 더 가야 한다. 산중턱을 깎은 뒤 평평하게 조성된 밭이어서 마을과 도로에서는 안쪽을 살펴볼 수 없는 구조다. 잡초도 우거져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주변에서도 시신을 쉽게 발견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였다.

매실밭은 나무를 심은 지 1년밖에 되지 않아 잡초만 무성했다. 황토로 채워진 밭은 짙은 황색빛이 선명했다. 유 전 회장이 은신처 숲속의 추억에서 도주한 5월 25일부터 같은 달 29일까지 순천 일대 낮 최고기온은 31도까지 올랐지만 아침 최저기온은 13도로 선선했다.

매실밭 나무 높이는 1m 정도로 그늘이 없었다. 검경의 추적망을 피해 이곳까지 온 유 전 회장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매실밭에 머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유 전 회장이 숲속의 추억에서 달아난 5월 25일부터 변사체로 발견된 6월 12일까지 19일 중 7일은 궂은비가 내렸다. 통상 젖은 땅에 눕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유 씨가 5월 25, 26일 비가 내린 이후 건조된 풀밭 위에 누워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유 전 회장은 차량과 주민 이동이 잦아 눈에 잘 띄는 국도 주변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주민 김모 씨(51)는 “유 전 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야산 산길은 송치재터널 정상과 연결돼 있다.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지만 현재까지 산길의 흔적은 있다”고 말했다.

전남 순천경찰서는 유 전 회장이 5월 25일 송치재터널 인근 숲속의 추억을 검찰이 급습하자 도주하면서 주로 산길을 이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숲속의 추억에서 200m 떨어진 곳에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신도 소유의 길이 1km가량의 폐 터널 입구가 있다. 폐 터널 반대편 출구는 8, 9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 가운데에 있다. 필사적으로 달아나던 유 전 회장은 출구가 마을 중앙에 있는 폐 터널을 도주로로 이용하지 않고 산길을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유 전 회장은 송치재터널 옆 산길을 이용해 야망연수원이 있는 송치재 정상에 도착한 뒤 이어진 높은 산길을 타고 도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73세 고령에 다리가 불편했지만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험한 도주로를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도 17호선 주변 전남 구례→순천시내 방향 낮은 산의 길은 편하지만 눈에 잘 띄는 단점이 있다. 경찰이 송치재터널 주변 산을 제대로 수색했다면 유 전 회장을 생전에 검거했을지 모른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그는 평소 구원파 신도들의 호위나 시중을 받으며 생활했지만 숲속의 추억 탈출 이후에는 홀로 산속에서 도피하면서 고통에 시달렸을 것으로 보인다. 주머니에는 현금이 한 푼도 없었고 얼굴이 알려져 최소한의 식량조차 구하기 쉽지 않은 처지였다. 시신 발견 현장에서 발견된 육포와 검은콩 등은 은신했던 별장에서 탈출하면서 챙겨간 것이지 도피 중 구입한 것은 아닌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순천=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유병언 시신 확인#유병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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