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철희]헬싱키 외교참사, 트럼프는 안 바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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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Jerry, Don‘t Go(제리, 가지 마).’

1975년 7월 23일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 제목이다. 제리는 제럴드 포드 당시 대통령의 애칭. 유럽과 북미 정상 30여 명이 모이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참석차 핀란드 수도 헬싱키 방문을 준비하던 그에게 대놓고 가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다. 언론만이 아니었다. 공화·민주 양당에서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CSCE 정상회의가 채택한 헬싱키협약은 미국과 소련을 포함한 동서 양 진영이 긴장 완화를 위해 안보, 경제, 인권에 걸쳐 협력하기로 포괄적 합의를 이룬 것으로, 외교사적으로 냉전을 녹인 데탕트의 분수령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미국에선 소련의 발트3국 병합과 동구권 지배를 인정해준 굴욕적 합의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포드는 헬싱키협약 내 인권 조항의 잠재적 파괴력을 믿었고, 국내적 반대를 무릅쓰고 헬싱키로 향했다. 그런 그가 출국연설에서 결정적 실수를 범한다. 소련의 반발을 의식한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의 조언을 받아들여 연설문 초안에 있던 한 문장을 빼버린 것이다. ‘미국은 결코 소련의 발트3국 병합을 인정하지 않았고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언론은 그 실종된 한 줄을 찾아냈고 여론은 더 악화됐다. 포드는 헬싱키에서 “역사는 우리가 하는 약속이 아닌, 우리가 지킬 약속으로 평가할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이미 돌이키기엔 늦은 상황이었다. 이렇게 헬싱키는 포드의 무능을 상징하는 도시가 돼 버렸다.

하지만 이후 동구권 저항운동과 소련의 붕괴로 이어진 ‘헬싱키 프로세스’의 결과는 포드의 판단이 옳았음을 보여줬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의 잔여 임기 2년 5개월밖에 재임하지 못한 포드에게 헬싱키 외교는 사실상 그의 유일한 업적으로 남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런 역사를 알고 헬싱키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 장소로 정했을 것이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같은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만큼 리스크도 만만치 않지만 핵 군축 같은 더 큰 주제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고, 싱가포르 북-미 회담에 이은 헬싱키 미-러 회담은 ‘스트롱맨이 만드는 세계평화’라는 자못 인상적인 큰 그림에 잘 어울린다고 여겼으리라.

하지만 트럼프의 충동적 처신이 참사를 불러왔다. 푸틴과 나란히 서서 자신에게 걸려 있는 러시아 스캔들 연루 의혹을 씻어내는 계기로 삼으려다가 미국 정보기관의 판단을 부정하는 발언으로 “푸틴의 호주머니 속에서 놀아났다” “수치스러운 반역적 행위다”라는 비난까지 들었다. 급기야 트럼프는 “이중부정 어법을 썼어야 하는데…”라며 ‘not’을 빠뜨린 말실수라고 해명해야 했다.

매사에 공사(公私)가 불분명하고 외교도 한낱 개인기(個人技)쯤으로 여기는 트럼프식 ‘나 우선주의(Me First)’가 빚은 대형 사고였다. 그렇다고 트럼프의 ‘본능 외교’가 여기서 멈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천성적 속물근성을 오히려 ‘위선 떨지 않는 정치상품’으로 만든 트럼프 아닌가.

그러니 우리에겐 이런 트럼프의 노골적 현실주의가 한반도의 미래에 미칠 영향부터 다시 한 번 따져보는 게 급선무일 것이다. 동북아판 헬싱키 프로세스 같은 멋진 그림보다는 차라리 미국의 부담이 없는 비핵화라는 조악한 차트 그림이 나을지 모른다.

나아가 그런 트럼프를 두고 “초강대국 미국이 쇠퇴하는 징조 아니냐”고 개탄하거나 “그가 한국 좌파를 도울 줄은 몰랐다”고 배신감을 토로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그러는 사이 정작 트럼프의 눈귀는 김정은이 사로잡은 게 아닌지도 의심해볼 문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트럼프#헬싱키#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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