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서영아]외교 의전은 ‘국내용’이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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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아 도쿄 특파원
서영아 도쿄 특파원
평창 겨울올림픽이 목전에 다가오니 5월 도쿄에서 열린 ‘한국관광의 밤’ 행사에서 ‘기사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던 일이 새삼 떠오른다. 한국관광공사가 최고급 호텔에서 일본 언론인, 여행업 관계자 등 250여 명을 초청해 평창을 홍보하는 자리였다.

초청객 중 최고위급은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 집권 자민당의 2인자이자 일본전국여행업협회(ANTA) 회장이다. 한국과 중국에 곧잘 친근감을 표하는 인물로 통하는 그가 인사말 도중에 돌연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

“여러분은 자꾸 일본인들이 평창 올림픽에 와야 한다고 하는데, 그 ‘사죄하라’는 말 그만한다면 가겠습니다. 일본인은 요즘 한국 가기 무서워합니다. 기껏 돈 들이고 시간 내서 가면 ‘사죄하라’는 소리나 듣는걸요. 그거 안 한다는 약속만 해준다면 저라도 평창 방문 캠페인에 발 벗고 나서겠습니다.”

한국 독자를 자극하는 발언일 수 있으나 보도는 국익 차원에서 백해무익이라 생각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큰 비용을 들여 평창을 홍보하는 자리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었다.


이 발언은 일본인의 속내를 잘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509만 명, 한국을 찾은 일본인은 230만 명이다. 올해는 방일 한국인이 700만 명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통계를 보면, 방일 한국인보다 많던 방한 일본인 수가 역전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그해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연이은 일왕 모독성 발언이 일본 내에 반한 감정을 몰아왔다. 그해 12월 아베 신조 정권이 재탄생한 배경에 이 일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최근 한국 정부는 아베 총리에게 평창 올림픽에 와 달라고 다각도로 요청하고 있다. 아베 총리도 일본이 의장국인 한중일 정상회의의 성사를 위해서라도 한국과 등을 돌리지는 않으려는 자세가 읽힌다.

하지만 보통 일본 사람들의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관광공사가 아무리 일본 전역을 돌며 평창 홍보에 애를 써도, “한국인들은 일본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거나 자칫 한국에 갔다가 봉변을 당할 것을 우려하는 일본인들이 부쩍 늘어나 있다. 여기저기에 위안부 소녀상이 서 있고 소녀상을 태운 버스가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는 한국에서 일본인이 환영받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기에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까지 겹쳤으니 안전에 민감한 일본인으로서는 안 갈 이유가 많을 것이다.

그동안 일부 일본 언론이 문재인 정권에 대해 ‘반일(反日)’로 단정하는 것에 대해 정부는 “일부 국민감정이 있긴 하지만 정부의 의사는 아니다”라며 항의성 설명을 해 왔다. 그러나 최근 한국 정부가 하는 것을 보면 더 이상 이런 설명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빈만찬에 독도새우를 내놓고, 위안부 할머니와 포옹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한미 관계를 논의하는 자리에 굳이 제3국인 일본을 자극할 소재를 끼워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일본 비하’ 인기 전략에 미국 대통령을 들러리 세웠다는 ‘오해’를 부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청와대에도 외교부에도 의전 전문부서가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이런 상황을 연출했을 리는 없으니 더 윗선의 개입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의도했건 아니건 정부가 한일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들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이들은 과연 4개월 뒤 일본 총리를 평창 올림픽 개막식 귀빈석에 초대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던 걸까. 나아가 외국인들도 한 국가의 1호 의전을 국내 정치에 활용하는 것을 너그럽게 이해해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일까.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한중일 정상회의#정부의 한일 갈등 조장#일본 총리의 평창 올림픽 참석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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