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王부부, 日 고구려 신사 첫 참배… 퇴위 앞두고 한국에 화해 메시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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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마지막 왕의 아들 모신 곳
궁내청 “사적여행” 의미부여 안해… 일각 “과거사 반성 제스처” 분석

아키히토 일왕과 부인 쇼다 미치코 여사(왼쪽에서 두 번째, 세 번째)가 20일 1300여 년 전 일본에 망명한 고구려 왕족 약광을
 신으로 모시는, 사이타마현 히다카시의 고마신사를 방문하고 있다. 오른쪽 인물은 신사 책임자인 궁사로 약광의 60대 손이다. 
아사히신문 제공
아키히토 일왕과 부인 쇼다 미치코 여사(왼쪽에서 두 번째, 세 번째)가 20일 1300여 년 전 일본에 망명한 고구려 왕족 약광을 신으로 모시는, 사이타마현 히다카시의 고마신사를 방문하고 있다. 오른쪽 인물은 신사 책임자인 궁사로 약광의 60대 손이다. 아사히신문 제공
“고구려는 언제 멸망했나요.”

20일 오전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 고마(高麗)신사를 둘러보던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안내하던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50) 궁사(宮司·일본 신사 운영 책임자)에게 물었다. 고마 궁사는 고구려인들이 일본에 정착한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고마 궁사는 1300년 전 이곳에 정착한 고구려 왕족 약광(若光)의 60대 손이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뒤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아들 약광은 유민 1799명을 데리고 이곳에 정착했다. 히다카시의 옛 이름인 고마군도 고구려에서 유래했다. 후손들은 약광을 기리기 위해 고마신사를 짓고 직계가 대대로 궁사를 맡아 왔다.

일왕 부부는 이날 1년에 두 차례 있는 사적(私的) 여행의 일환으로 이곳을 찾았다. 역대 일왕이 이 신사를 찾은 건 처음이다.

부부는 환영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도리이(鳥居·신사의 경계를 표시하는 문)를 지났고, 붉은 옷을 입은 고마 궁사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일왕은 신사 옆의 오래된 가옥을 보고 “여러 가지가 잘 보존돼 있다”며 감탄했다. 교도통신은 “일왕이 열심히 설명을 들은 후 참배를 마쳤다”고 전했다. 부부는 준비된 점심까지 먹으며 경내에 3시간가량 머물렀다.

방문 이유에 대해 교도통신은 “다양한 역사를 접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또 일왕이 2001년 12월 생일 기념 기자회견 때 “개인으로서는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쓰여 있는 데 대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한 것을 언급했다.

신사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일왕의 방문 이유를 모른다”고 밝혔다. 일왕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궁내청도 ‘사적인 여행’이라고만 했다. 하지만 퇴위를 앞둔 시점에서 이곳을 찾은 걸 두고 과거에 대한 반성과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려고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1989년 즉위 후 중국 사이판 필리핀 등을 돌며 과거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피해를 본 이들을 추모하는 ‘위령의 여정’을 이어 왔다. 한국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직간접적으로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으나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이런 아쉬움이 최근 일본 내 혐한(嫌韓) 분위기를 무릅쓰고 고마신사를 찾는 행보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지난해 생전 퇴위 의사를 밝힌 일왕은 2018년 12월이나 2019년 3월 왕위에서 물러날 것으로 예상돼 임기 중 방한은 어려운 상황이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일왕#고구려 신사#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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