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전성철]경찰의 길, 검사의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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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철 사회부 차장
전성철 사회부 차장
수사권 조정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5년 12월 검찰과 경찰은 대전에서 크게 충돌했다. 발단은 대전지검 특수부 검사가 경찰이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피의자 김모 씨를 면담하겠다고 요청한 일이었다. 충남지방경찰청은 “법률적 근거가 미약하다”며 검찰의 요구를 거부했다.

검찰은 경찰이 정당한 수사지휘를 거부했다며 담당 경찰관을 형법 제139조 ‘인권옹호직무방해죄’로 입건했다. 형법 제139조는 경찰관이 검사의 인권옹호에 관한 직무집행을 방해하거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후 해당 죄목이 실제 사건에 적용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검사가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한 피의자를 영장청구 결정 이전에 면담하는 것(구속 전 피의자 면담)이 적법한지에 대한 논란은 당시 검찰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검찰이 법무부 인권보호수사준칙과 검찰사건사무규칙 등을 근거로 내민 반면 경찰은 이를 반박하지 못했다.

그 이후 구속 전 피의자 면담은 검경 사이에 껄끄러운 문제로 남았다. 현재 대부분의 검찰청은 구속 전 피의자 면담을 대면(對面) 면담 대신 유선전화 또는 화상통화로 하고 있다. 검사들로서도 구속 전 피의자 면담을 달가워하지 않는 경찰에 ‘면담을 위해 피의자를 호송해 달라’ 요청하는 일이 껄끄럽다 보니 서로 불편하지 않은 방법을 찾은 것이다.

경찰이 최신 기술로 과거 범행현장에 남아 있던 ‘쪽지문(완전하지 않은 부분 지문)’을 감식해 진범을 붙잡은 ‘강릉 노파 살인 사건’은 대전지검과 충남경찰청이 한바탕 싸움을 벌이기 불과 반 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2005년 5월 강원 강릉시 구정면에서 70대 노파가 손발이 전화선으로 묶이고 얼굴이 포장 테이프로 감긴 시체로 발견됐을 때 A 씨는 경찰관이었다.

수사 착수 한 달이 넘도록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범인을 찾아다니는 경찰관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때 범행 현장 부근을 담당하던 ‘잠복팀’이 B 씨(당시 45세·여)를 범인이라며 잡아왔다. B 씨가 청소도구 손잡이로 쓰는 알루미늄 봉으로 피해자를 때려 숨지게 했다는 것이었다.

A 씨는 마음이 불편했다. B 씨가 범인이 아니라는 의심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서 A 씨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B 씨에 대해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A 씨는 몰래 춘천지검 강릉지청 김완규 검사(47)를 찾아갔다. A 씨는 김 검사에게 “영장을 청구하기 전에 꼭 B 씨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부탁했다. 구속 전 피의자 면담을 요청한 것이다.

김 검사는 사건 기록을 검토한 후 A 씨 부탁대로 B 씨를 면담했다. B 씨의 허위자백 사실을 확인한 김 검사는 구속영장 신청을 반려했다. 살인 사건에서 검사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되돌려 보내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었다. B 씨의 석방은 경찰에 속 쓰린 일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덕분에 강릉 노파 사건은 경찰이 박수 받는 사건이 됐다.

범인 검거를 향해 정신없이 뛰다 보면 시야가 좁아져 오판을 할 수 있다. 검사가 할 일은 경찰이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돕는 일이다. 강릉 노파 사건은 경찰은 경찰이 할 일을, 검사는 검사가 해야 할 일을 원칙대로 처리한 덕분에 모두에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이제는 두 기관이 수사권을 누가 갖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국민을 위한 길인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dawn@donga.com
#수사권 조정#검찰#경찰#검경 수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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