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최대 500억 세금 감면’ 가업상속공제 수혜자 줄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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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도입 이후 첫 축소 방침


정부가 매년 적용 대상을 늘리던 가업상속공제 수혜자를 올해 처음으로 줄이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부(富)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상속·증여세 부담을 늘리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기조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매출액 3000억 원 미만인 중견기업까지 회사를 물려받을 때 세금을 깎아 주는 것이 과하다고 보고 공제 대상 기준을 낮추고 한도 역시 축소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해당 공제가 축소될 경우 기업 성장과 투자, 고용이 위축될 수 있다는 의견이 야당은 물론 정부 내에서도 제기되고 있어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 “상속공제 축소 방침은 확정…폭은 미정”

28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등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국정기획위는 가업을 물려받을 때 최대 500억 원의 세금을 깎아주는 가업상속공제를 줄이겠다는 방침을 정하고 구체적인 축소 기준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기획위 관계자는 “며칠 내에 축소 대책을 확정해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무 부처도 해당 공제의 개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의뢰를 받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29일 ‘상속·증여세제 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를 열고 가업상속공제 제도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의견을 수렴한다. 발표에는 현재 국내에서 시행 중인 가업상속공제를 프랑스, 독일, 일본과 비교·분석한 결과 등이 담긴다.

가업상속공제는 1997년 처음 도입됐다. 높은 상속세율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가업을 물려줄 때 세금 부담이 크다는 산업계 주장을 받아들인 결과다. 2007년 적용 대상과 공제한도를 크게 늘려준 이후 꾸준히 확대되면서 현재는 중소기업 이외에 매출액 3000억 원 미만 중견기업까지 공제 대상에 포함됐다. 공제한도도 늘었다. 현재 20년 이상 이어온 기업의 경우 500억 원까지 세금을 깎아준다.

기재부는 이명박 정부 이후 늘어난 공제 대상을 환원시키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보다는 주로 중견기업의 혜택이 줄어든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은 이미 가업상속공제제도 대상을 2000억 원 미만 중견기업으로 축소하고, 공제한도를 최대 300억 원으로 낮춘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 역시 이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세금을 깎아주는 게 아니라 기업을 물려주는 데 발생한 세금 납부를 당분간 미뤄주는 ‘과세이연’ 방식으로 혜택을 축소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공제액 급증에 대선 공약 이행이 축소 검토 원인

정부 입장에서는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줄이면 세수(稅收) 증대의 효과가 작지 않다. 특히 최근 관련 세금의 공제액이 급증하는 추세를 보면 더욱 그렇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1∼2015년 5년 동안 가업상속공제로 깎아준 세금은 4064억 원으로 연평균 813억 원 정도다. 특히 2015년 공제금액은 1645억 원으로 2013년(867억 원)보다 2년 만에 2배 가까이로 늘었다. 공제기업 기준이 매출 2000억 원 미만에서 3000억 원 미만으로 확대된 데 따른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가업상속공제 대상이 상장기업을 포함한 중견기업까지 확대되면서 제도의 도입 취지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늘어나는 재정지출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세법 개정으로 5년 동안 31조5000억 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마련하기 위해 상속·증여에 대한 공제 혜택을 줄이는 방향의 세법 개정을 공약했다. 그 구체적인 대상의 하나로 가업상속공제가 꼽힌 것으로 분석된다.

○ 정부 내부선 신중론 대두

이런 국정기획위의 방침에 정부 내부에서는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다. 해당 세제혜택이 주로 중소기업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정부가 경유세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다 바로 ‘백지화’ 선언을 한 직후라 실무 부처에서는 제도 도입을 망설이는 분위기도 강하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상속·증여세 혜택에 대해서는 저마다 다양한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가업상속공제의 장점을 주장하는 목소리 역시 만만찮기 때문에 공청회 등을 통해 최대한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현재 가업상속공제 혜택이 과하다는 지적이 적잖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업상속공제는 재산 상속을 통한 부의 대물림을 완화한다는 상속·증여세의 본래 기능에 맞지 않다”며 “전문 경영인이 기업을 이끌어 가는 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효율적이라면 가업상속에 많은 혜택을 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교수는 “경영권이 문제라면 세금을 깎아주는 게 아니라 돈이 마련된 이후 낼 수 있도록 세금 납부를 연기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세종=박희창 ramblas@donga.com·박재명 기자
#세금#가업상속공제#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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