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위선양 기준 모호 ‘고무줄 병역특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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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기 金’ 형평성 논란 확산

기찬수 병무청장(왼쪽)이 2월 충남 아산의 한 병역지정업체를 방문해 산업기능요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병무청 제공
기찬수 병무청장(왼쪽)이 2월 충남 아산의 한 병역지정업체를 방문해 산업기능요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병무청 제공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의 금메달 수상자에 대한 병역특례 논란이 갈수록 뜨겁다. 군 복무를 미룬 일부 선수의 ‘병역특혜’ 시비로 촉발된 이번 논란은 제도 전반의 형평성·공정성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인터넷에선 ‘병역특례 대상을 더 확대하라’ ‘시대착오적 병역특혜는 폐지해야 한다’ 등 갑론을박이 넘쳐나고 있다

○ 학업·경력단절 손실 한 방에 해결하는 ‘병역특혜’

병역특례를 받으면 군 복무 시 학업·경력 단절에 따른 유무형의 손실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 4주간의 군사훈련으로 병역을 이행하고 해당 특기 및 분야에서 활동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대표팀으로 출전해 금메달을 딴 손흥민이 대표적 사례다. 영국 토트넘과 2023년까지 재계약한 그의 주급은 8만5000파운드(약 1억2100만 원)로 군 복무기간(21개월)으로 환산하면 110억 원대다. 다른 금메달 수상자들도 기량 저하나 경제적 손실 등 군 복무로 인한 불이익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병역특례는 1973년 ‘병역특례 규제에 관한 법(병역특례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됐다. 국가산업 육성과 경쟁력 제고, 국위선양 및 문화 창달을 위해 주요 기간 산업체 및 연구기관·이공계 대학(원)·예술문화체육 특기자를 전문연구·산업기능·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해 ‘병역혜택’을 준 것. 1980년 이후 저출산 추세로 병역자원이 감소하자 적용 대상이 점차 축소됐고 1984년엔 병역특례법이 폐지(병역법에 흡수)되면서 ‘병역특례’ 용어는 공식적으론 사라졌다. 현재 전문연구·산업기능·예술체육요원은 승선근무예비역(선원) 공중보건의(의사) 공익법무관(변호사) 등과 함께 대체복무자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병역특례’ 용어가 여전히 통용되는 것은 이를 특혜로 보는 인식이 많기 때문이다. 전문연구·산업기능요원의 경우 병무청장이 지정한 연구기관과 업체에서 일반 직장인처럼 출퇴근을 한다. 근무시간 외엔 자기계발 등 활동에 크게 제약을 받지 않는다. 병무청 관계자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학업 경력을 살려가며 병역을 이행하는 것은 군 복무와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라고 말했다.

○ 잦은 형평성·공정성 시비… 손질 불가피

이 때문에 그동안 병역특례를 둘러싼 형평성과 공정성 시비가 반복됐다. 2007년에 터진 병역특례 비리사건이 대표적이다. 산업기능요원 선발 과정에서 업체가 친인척이나 지인의 자제를 뽑거나 금품을 주고 선발된 사람들이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전직 고위 관료의 아들과 인기가수 등도 포함돼 큰 파장이 일었다. 또 국민 여론을 내세워 체육특기자의 예외적 병역특례(2002년 한일 월드컵,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를 허용해 병역제도의 신뢰가 실추됐다는 비판도 있었다.

일각에선 병역특례 대상을 더 확대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스포츠나 고전음악뿐만 아니라 대중예술과 e스포츠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오른 사람들에게도 병역혜택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빌보드 차트 정상에 두 차례나 오른 방탄소년단도 적용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 ‘인구절벽’의 현실화와 군 복무자의 상대적 박탈감을 감안해 특례제도 자체를 폐지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동안 군은 저출산에 따른 병역자원 감소에 대비해 대체복무제의 축소·폐지를 추진했지만 과학산업계 예술체육계의 반발로 유야무야됐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병역특례 개선에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4일 국무회의에서 “아시아경기에서 최고 성적을 낸 선수들에겐 병역이 면제되는데 이에 많은 논란이 따르고 있다”며 “병무청이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했는데 국민의 지혜를 모아 합리적 개선 방안을 내 달라”고 말했다. 다만 “개선 방안이 나온다고 해도 소급 적용할 순 없다”며 선을 그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이날 라디오에 나와 “특례 제도 폐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조금 성급하고 위험한 발상”이라며 “은퇴 후 재능기부를 해서 문제를 해소하자는 안이 있다. (병역 면제 대상) 폭을 넓히되 시대에 맞게끔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사회적 공론을 통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올림픽 메달 수상자 등에게 예술 및 체육 지도자 자격으로 50세까지 군 복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장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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