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사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 무혐의 판단땐 ‘불기소 종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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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안 발표]수사방식 어떻게 바뀌나

그동안 경찰은 대부분의 형사사건을 수사하면서도 검사의 수사를 돕는 보조자로 간주되어 왔다. 정부가 21일 발표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은 경찰을 명실상부한 수사의 주체로 인정하고 있다. 경찰이 모든 사건에 대한 1차 수사를 맡고 혐의가 없다고 판단한 경우 수사를 자체 종결할 수 있도록 해 자율과 책임을 부여한 것이다. 경찰의 수사권 남용 등 부작용에 대비해 검찰의 사후 통제 장치도 함께 보강됐다. 이날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부 합의안을 발표하며 “검경이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상호 협력하며 견제하는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 경찰, 수사 시작부터 끝까지 맡는다

지난해 12월 A 씨는 수년간 자신을 성폭행한 혐의로 60대 남성 B 씨를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서울의 한 경찰서에 사건을 내려보냈다. 경찰은 지휘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수사기록을 검토한 검찰은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도록 지휘했다. 그러나 경찰은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검찰 지휘에 불복하고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정부 합의안이 적용되면 이 같은 검경의 엇박자는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검찰의 사건 접수는 가능하다. 하지만 경찰에 넘긴 뒤 지휘는 불가능하다. 1차적 수사권은 전적으로 경찰이 행사한다. 고소인과 피고소인 조사, 증거 확보 등 모든 수사를 경찰이 맡는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최종 결론까지 내린다.

검찰이 수사에 개입할 수 있다. 경찰이 B 씨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구속영장을 신청했을 때, 수사 후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을 때다. 검찰은 기소 여부를 판단하거나 영장 청구에 필요할 경우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해당 경찰의 직무 배제와 징계를 요구할 수 있다. 물론 송치 후 기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검찰은 2차 수사를 할 수 있다.
경찰은 수사 결과 혐의가 없다고 판단되면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종결할 수도 있다. 그때는 검찰에 사건자료 사본 등을 보내면 된다. 경찰의 결정이 위법하거나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검찰은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특수 사건’의 경우 검찰과 경찰 모두 1차 수사가 가능하다. 뇌물과 정치자금 직권남용 같은 부패 범죄, 사기 또는 횡령 같은 경제 범죄, 금융·증권 범죄와 선거 범죄 등이다. 양측이 동시에 수사에 착수한 경우 검찰이 우선권을 갖는다.

○ 검경 간 ‘상호 견제’에 무게
정부 합의안대로면 경찰 권한이 강해지는 건 분명하다. 합의안에 여러 견제장치가 포함된 이유다. 경찰 수사에서 인권 침해나 권한 남용이 의심되면 검찰은 사건기록 송부와 시정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경찰 수사가 종결되면 반드시 사건 당사자에게 결과를 알려야 한다. 결과에 불복하면 경찰서장 등에게 이의 신청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망 사건 발생 시 경찰이 ‘사망자의 실수’를 이유로 수사를 종결했다면 유가족이 이의를 신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사건은 즉각 검찰로 송치된다.

이번 합의안에 검찰의 영장청구권 독점에 대한 조정은 포함되지 않았다. 헌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내용이 추가됐다.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찰이 정당한 이유 없이 청구하지 않으면 고등검찰청 산하 영장심의위원회(가칭)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최근 경찰이 황창규 KT 회장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이 기각했는데 이 경우에도 경찰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스폰서·수사 무마 청탁’ 비리로 논란이 됐던 김형준 전 부장검사 수사 당시 검찰은 계좌 추적 영장 신청을 기각하면서 사건을 검찰로 송치할 것을 지시해 논란이 일었다. 이런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을 막기 위해 정부 합의안에는 검사 또는 검찰 직원의 범죄 혐의로 경찰이 각종 영장을 신청할 경우 지체 없이 이를 법원에 청구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경찰을 일반경찰과 수사경찰로 분리한 것도 경찰 권한이 비대해지는 걸 막기 위한 것이다. 정부 합의안에 따르면 경찰청 산하 국가수사본부(가칭)가 사건 수사를 맡는다. 경찰청은 행정 업무에 대해서는 지휘를 할 수 있으나 수사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지휘를 할 수 없도록 했다.

수사권 조정과 함께 지방경찰이 생활안전과 교통 등을 맡는 자치경찰제도 단계적으로 추진된다. 내년 중 서울과 세종 제주에서 시범실시하고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권기범 kaki@donga.com·김은지 기자
#경찰#수사#불기소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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