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한반도]“30~40년 된 北 열차, 손대면 부서질듯…총체적 난국”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8일 15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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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경제협력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건 철도 사업이다.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 철도 연결 및 북한 철도 현대화 사업을 명시했다. 북한 교통망은 주철종도(主鐵從道)여서 철도가 근간이고 도로는 보조수단이다. 그만큼 북한 철도 사업은 한국으로선 기회이다. 하지만 리스크도 있다. 무엇보다 비용 부담이 크다. 북한을 49차례나 방문해 철도 도로 등을 샅샅이 훑어본 전문가에게 현지의 실상을 들어본다.

철로에 서있는 화물열차 차체는 심하게 부식돼 있었다. 손으로 짚으면 금방이라도 ‘푸석’하고 뚫릴 것 같았다. 일부는 차체 양쪽 벽 부분이 아예 떨어져나가 열차 너머가 훤히 보였다. 철로도 낡긴 마찬가지다. 녹이 슨 철로를 받치는 침목은 대부분 나무다. 원기둥 모양 통나무를 잘라 그대로 쓴 경우도 허다했다. 통나무가 수축하거나 쪼개지면 철로가 끊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태였다. 철로와 침목을 고정하는 건 못 하나가 전부였다. 열차 하중을 분산하고 충격을 흡수하는 자갈이 아예 깔려있지 않은 곳도 많다. 때문에 열차가 상하좌우로 흔들렸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59)이 본 북한 철도의 모습이다. 안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철도는 ‘불비·불편·민망’ 상태다.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라고 했다. 그는 2011년까지 총 49차례 방북해 북한의 철도와 도로 인프라를 연구했다. 교통연구원 유라시아북한인프라연구소장을 역임하기도 한 그는 현재 국토교통부, 통일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 북한 분야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철도는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운송 수단. 전체 여객 수송량의 60%, 화물 수송량의 90%를 담당한다. 북한에는 2013년 현재 약 5300km 길이의 철도가 깔려있다. 남한(3560km)의 약 1.5배다. 김일성은 “철도 운영은 인체에 비유하면 혈액이 순환되는 것과 같다”고 말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다. 북한이 주철종도 체계를 택한 건 산악지형이 85%를 차지하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운행 비용이 저렴하다는 점도 한 몫 했다.


하지만 현재 북한은 피가 제대로 돌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난으로 철도 시설이 급격히 노후화됐기 때문. 30~40년 된 열차가 대부분이고, 일제강점기 시절 깔린 철로를 그대로 쓰는 구간도 많다. 교량에는 한국전쟁 때 생긴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안 선임연구위원은 “전체 철도 중 약 80%는 노후화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화차가 철로 옆에 처박힌 채 방치된 사례도 있었다. 동행한 북한 당국자들조차 “민망하다”고 할 정도다.


북한 열차는 느리다. 엔진 성능이 떨어질뿐더러 철도나 교량이 고속 주행을 버티지 못한다. 화물열차와 여객열차 속도는 시속 10~15km 수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2시간 13분 23초에 마라톤을 완주한 황영조의 평균 시속은 약 19km 정도다. 가장 빠른 구간은 김정일이 방중 때 탄 평양~신의주 국제열차인데 이 역시 시속 45km에 불과하다.

부족한 전력도 걸림돌이다. 북한은 철도의 약 80%가 전철화 구간으로 한국(73%)보다 높지만 전력이 충분치 못해 열차가 멈춰서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국에서 5시간이면 갈 거리를 이틀에도 못 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열차 시각표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안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기차역에는 연착된 열차를 기다리느라 지친 표정의 북한 주민들이 많다”고 했다. 열차 운행 횟수가 부족해 화장실까지 승객으로 가득 찬다. 장거리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생리현상을 해결할 작은 용기를 들고 타야할 정도다.


사고도 잦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알려진 큼직한 열차 사고만 5건. 시설 노후화, 과적 등이 원인이다. “철로 옆 강가에 열차가 처박힌 채 방치된 모습도 더러 볼 수 있었다”고 안 선임연구위원은 전했다.

부산에서 베를린행 유라시아 급행열차를 타기까지는 적잖은 시간과 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가 2014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 철도 현대화에 필요한 비용은 약 83조 원(773억 달러). 일각에서는 굳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북한 철도를 정상화해야 하느냐는 의견도 있다. 남북 간 철도 사업을 ‘퍼주기’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크다.

안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철도 현대화는 한국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 일본 등 동북아 국가 모두에게 경제적 시너지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했다. 이들 국가의 생산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국제 정세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수익성이 높은 구간을 선별해 다자간 협력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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