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중단’ 주장 中, 北 통해 한미훈련 중단 요구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7일 15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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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권 매체 “북한의 대미 경고 배경에 중국, 베이징이 평양 통해 목소리”
중국 왕이 부장, 북한 지지하며 미국에 대북 강경 태도 철회 요구
“한쪽(북한)이 유연성 보일 때 다른 한쪽(미국)이 강경하면 안 돼”
쌍중단의 중국 북한 통해 한미훈련 중단 요구했나
북한 참관단, 시진핑에 90도 인사하는 저자세도 감수

중국 정부는 미국에 경고한 북한을 공식적으로 지지하면서, 미국엔 강경 태도 철회를 요구하는 등 북한과 공동 행보에 나섰다.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17일 “북한이 자발적으로 취한 (비핵화 관련) 조치는 충분히 긍정할 만하다”며 “다른 관련국들, 특히 미국은 현재 나타난 평화의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를 방문 중인 왕 위원은 이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국가 이름을 거명하지 않으면서도 “한쪽(북한)이 유연성을 보일 때 다른 한쪽(미국)이 오히려 강경하면 안 된다”며 “역사적으로 이미 이 분야에서 교훈이 있다. 같은 현상이 재연되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화의 촉진자가 돼야지, 퇴보를 재촉하는 자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왕 위원이 거론한 ‘교훈’은 2005년 북핵 6자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경제 보상을 맞바꾸는 9·19 공동성명이 합의됐지만 같은 해 미국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돈세탁 우선우려 대상’으로 지정해 북한 비자금을 동결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해인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도발로 ‘9·19 공동성명’은 유명무실해졌다.

이처럼 중국 정부가 아예 공식적으로 북한과 공동 행보를 취하면서 미국의 강경함을 비판하자 북한의 대미 경고 배경에 중국이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중화권 매체인 둬웨이(多維)는 이날 “북한이 이달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고 했는데도 미국과 한국이 오히려 연합군사훈련을 하는 것은 중국이 제기한 쌍중단(북한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연합군사훈련 동시 중단)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는 의심할 바 없이 중국을 기분 나쁘게 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평양과 베이징의 (미국에 대한) 요구는 점점 더 합쳐지고 있다”며 “북한이 중국을 대신해 목소리를 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둬웨이는 “북한의 이번 태도(대미 경고)는 분명히 중국의 쌍중단 입장을 실질적으로 지지한 것”이라며 “중국은 북한을 통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라는) 요구를 내보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공산당 런민(人民)일보 영문 자매지 글로벌타임스도 자국 전문가들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북한 입장에서 핵실험장 폐기는 극단의 양보”라며 “그럼에도 미국과 한국이 극한의 대북 압박을 유지하자 북한이 ‘부당하게 이용당했다’는 느낌을 가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글로벌타임스는 “북-중 관계 회복은 미국과 외교 게임을 하는 북한을 더욱 강하게 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14일 중국을 방문한 북한의 노동당 친선 참관단에 농업, 과학기술, 인문 분야의 대규모 협력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대북 인프라 투자 등 북-중 대규모 경제협력이 본격화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시진핑에 90도 인사하는 북한 참관단, 중국중앙TV
시진핑에 90도 인사하는 북한 참관단, 중국중앙TV
북한 전역의 시·도 당위원(책임자)로 구성된 노동당 참관단은 1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을 때 일부 시·도 책임자가 허리를 90도로 굽혀 시 주석과 악수하는 등 노골적으로 저자세를 보였다. 참관단은 시 주석을 접견할 때도 시 주석이 먼저 앉은 뒤에 대표단장인 박태성 노동당 부위원장은 꼿꼿이 선 채로 이 주석에 몇 마디 건넨 뒤에야 앉았다. 최근 북-중 관계 개선 전까지 북한이 중국에 보여온 노골적 적대감을 고려하면 현재 북한이 중국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는 적나라한 장면이었다.

노동당 참관단은 17일 베이징을 떠나 상하이나 선전, 광저우 등 중국의 개혁개방 모습을 볼 수 있는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베이징=윤완준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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