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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길진균]적폐청산, 순서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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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길진균]적폐청산, 순서가 바뀌었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입력 2017-11-15 03:00수정 2017-11-1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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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균 정치부 차장
적폐청산이 국가적 어젠다로 떠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3년 2월 27일. 김영삼(YS) 전 대통령 취임 후 열린 첫 번째 국무회의에서였다. 문민정부를 연 YS는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며 스스로 자신과 직계가족의 재산 17억7822만6020원의 보유 명세를 공개했다.

YS판 적폐청산의 신호탄이었다. 그는 ‘신한국 창조’를 국정지표로 제시하고 ‘한국병 치유’를 선언했다.

YS는 거침이 없었다.

자신의 재산을 먼저 공개한 YS는 국회를 설득했고, 그해 5월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됐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입법·사법·행정부의 1급 이상 공직자 본인과 배우자 직계가족의 재산 공개가 의무화됐다. 3월 15일엔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를 전격 방문해 정치사찰을 담당하던 제4국 폐지 등 안기부 축소 계획을 발표했고, 이듬해 1월 ‘국가안전기획부법’이 개정됐다. 국회 정보위원회가 안기부의 운영을 감독하는 제도적 통제장치가 처음 만들어졌다. YS는 또 취임 첫해인 1993년 8월 12일 오후 7시 45분 특별담화를 통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명령’을 발동했다. 이날 오후 8시부터 지금까지 금융실명거래는 상식이 됐다.


국민은 열광했다. YS에 대한 국정 지지율은 80%를 웃돌았다. ‘문민독재’라며 반발했던 군부 등 과거의 기득권층을 향해 YS는 일갈했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릴 수밖에 없다.”

당시 정관계 고위 인사들은 ‘재산 포기냐, 직업 포기냐’의 기로에 섰다. 등록재산에 대한 실사(검증)로 인해 부도덕성이 드러난 정관계 인사들은 국민적 지탄 속에 사퇴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이 세간에 회자됐다.


놀라운 것은 이 같은 혁신적 시스템의 도입이 YS 취임 6개월 동안 이뤄진 성과였다는 점이다. 속전속결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청산을 어떻게 보십니까.” 당시 YS의 개혁 드라이브를 조언했던 이원종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에게 물었다. 이 전 수석은 YS 정부 이후 어떠한 관직이나 선출직에도 나서지 않은 몇 안 되는 인사다. 이 전 수석은 “적폐청산은 미래로 가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YS 정부는 시스템을 만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적폐청산의 핵심은 “인적 청산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라는 얘기였다.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통한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YS는 ‘신한국 창조를 위한 한국병 치유’를 주장했다.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 YS는 시스템을 바꾸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는 인사들을 도태시켰다. 물론 억울하게 휩쓸린 이들도 있었다. 국민은 어느 순간부터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외환위기 등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YS 정부에 등을 돌렸다. 그래도 지금까지 유용한 혁신적 시스템을 정착시킨 YS 정부 초기의 성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문 대통령 역시 9월 야 4당 대표 초청회동에서 “적폐청산은 개인에 대한 책임 처벌이 아니다. 불공정 특권 구조 자체를 바꾸자는 것”이라고 했다.

아쉽게도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에서는 아직까지도 시스템 정비를 찾아보기 어렵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과거 방식으로 인적청산을 먼저 하고, 시스템은 나중에 봐서 바꾸겠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시스템 정비 등 구체적인 개혁의 청사진이 동반되지 않은 인적청산은 정치보복이라는 오명을 피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도 미래를 보여줄 때가 됐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적폐청산#김영삼 전 대통령#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개혁의 청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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