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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칼럼]‘앉은키 검사’를 기억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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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칼럼]‘앉은키 검사’를 기억하나요

고미석 논설위원 입력 2017-11-15 03:00수정 2017-11-1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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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세대의 씁쓸한 추억… 쓸모없이 반복된 ‘앉은키’ 측정
수단이 목적이 된 사례
정권마다 과거에 시비걸기… 현직검사 죽음으로 이어져
前정권 前前정권 겨냥한 칼끝… 적폐청산, 과정인가 목적인가
한걸음 물러나 살펴보길
고미석 논설위원
‘강다니엘의 다리 길이 107cm.’

얼마 전 인터넷을 달군 연예기사의 헤드라인이다. 요즘 가장 ‘핫’한 아이돌그룹 워너원 멤버의 신체 비율을 어느 방송 프로에서 측정해 보니 ‘우월한 롱다리’가 확인되었다는 내용이다. 줄자로 그의 다리를 재던 방송 진행자는 “너, 한국 사람 맞아?” 하며 놀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거리를 걷다 보면 강다니엘만큼은 아니라도 젊은 세대의 체형이 확실히 서구형으로 바뀐 걸 실감한다. 특히 여자는 20대 이상 전 연령대에서 다리가 길어진 사실이 지난해 국가기술표준원의 제7차 한국인 인체치수조사에서도 확인됐다.

롱다리가 ‘자랑’이 되는 현실에선 전체 신장에 비해 앉은키가 큰 것은 역으로 ‘굴욕’이 되고 만다. 중장년 세대라면 학창 시절 씁쓸한 추억을 가진 이들이 꽤 될 것이다. 특히나 사춘기 소녀들은 어떻게든 조금이나마 앉은키를 줄여보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결국 앉은키 검사는 2006년 폐지됐다. 다리 길이 재는 검사라는 해묵은 오해 또한 풀렸다. 1951년부터 대한민국에서 학교신체검사를 시행한 것은 일본의 건강검진을 답습한 것이며, 원래 일본이 앉은키 측정을 도입한 것도 잘못된 근거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과거사의 미신이 청산된 것이다.


일본은 1937년부터 신체검사에서 앉은키를 측정했다. 앉은키가 크면 내장기관의 발육이 좋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전장에 내보낼 튼튼한 병사를 가리기 위함이었다. 전문가들이 의문을 제기했으나 한일 양국 학교에서는 의미도 없는 앉은키 측정을 계속했다. 한번 구르기 시작한 바퀴는 멈추기 쉽지 않은 법. 수단이 어느새 불변의 목적으로 굳은 것이다. 일본에서 마침내 검사가 폐지된 것은 2015년. 이웃 나라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격전지로 내보낼 징병검사를 위해 도입한 신체 측량이 이 나라 새싹들에게 멍에가 됐다니 요즘 말로 ‘웃픈’(웃기면서 슬픈) 현실이다. 지나고 보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슬프도록 웃기는 일이 되고 마는가.

이 정신없는 세상에 새삼 앉은키 검사를 돌아보는 것은 온 천지가 과거에 시비 걸기로 뒤숭숭해서다. 미래는 어디 가고 자고 나면 과거사 뉴스가 숨 가쁘게 쏟아진다. 부처마다 적폐청산위원회가 일사불란하게 생겨나고, 그 대상이 된 이들은 전(前) 정권을 넘어 전전(前前) 정권까지 겨냥한 정치 보복이라 반발한다. 이 와중에 현직 검사는 자살했다. 섬뜩하다. 법과 자기 조직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죽음을 선택했다는 사실. 외부에 어떤 말로 포장하든 내부자의 관점에서 이 사태의 시작과 끝이 어찌 진행될 것인지를 뻔히 예측 가능했기 때문일까.

이런 상황에서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전방위로 동시다발로 펼쳐지는 적폐청산은 과정인가 최종 목적지인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데 누가 토를 달겠나. 다만, 대한민국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통과의례라고 생각했던 일이 어느덧 만사 적폐로 통하는 프레임에 갇힌 건 아닌지, 본말전도의 발상을 경계할 뿐이다.

적폐청산의 완성은 국민적 공감에 달려 있다. 뉴스에 노출되지 않는 일반 시민이 보기에 그 의도와 접근방법에 대해 불편한 감정과 의구심이 늘어난다면 사회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국가 경쟁력은 무너진다. 보통 사람들은 편 가르기를 할 여유가 없다. 나의 열광적 지지층이 아니란 이유로 적으로 몰아가면 정치로 세상을 바꿀 기회는 물거품이 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도 되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 칼자루 쥐었다고 생각하는 쪽이 기억해야 마땅하다.


적폐는 청산과 더불어 통제와 관리의 대상이지 싶다. 허황된 목표에 매달려 자원과 노력을 낭비하기엔 대통령 임기는 너무 짧다. 이렇듯 과거에 온 정신이 팔린 사이 정작 현재의 잘못은 훗날의 청산 대상으로 떠밀려 내려간다. 적폐청산이 정의사회의 주춧돌이 되려면 생각의 오류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흘러간 물과 같은 과거에 싸움만 걸 게 아니라 학습이 먼저다. 살아있는 권력이 어떻게 적폐를 만들어냈는지를. 적폐청산을 위한 적폐청산, 그 함정을 벗어나려면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고 성찰해야 한다.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만, 그리고 해야 할 일 가운데 적폐청산이 국가 미래 전략의 최우선순위에 얼마나 일치하는지 점검할 때다. 반년 전 대통령 취임사에서 천명한 약속, 그 굳은 다짐이 여전히 변함없다면….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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