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북핵이 두렵나, 원전이 두렵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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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했던 3일, 일요일의 영화관과 백화점에는 평소처럼 주차할 공간이 없었고 놀이공원과 골프장도 성황이었다. 이날의 차분한 반응에 오버랩 되는 장면이 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지 한 달 즈음인 4월 7일 한반도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나왔다. 도쿄전력이 방사능 물질을 바다로 쏟아내고 있어 해수오염에 대한 불안감은 있었지만 방사능비가 내린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김황식 총리가 국회에서 “비를 맞아도 된다”고 장담했지만 경기도교육청은 휴교령을 내렸다. 이때 교육감이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방사능 물질은 검출되지 않았고 휴교령은 해프닝으로 끝났으며 세계는 우리를 비웃었다.

핵전쟁 가능성보다 리스크 커

최악의 경우 원전은 녹아내릴지언정(멜트다운) 폭발하지 않는다. 발전용 연료의 우라늄 농도가 0.7∼5%로 낮기 때문이다. 반면 핵무기에 사용되는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은 95% 이상 농축된 것이다. 10kt급 핵무기가 서울 상공에서 폭발하면 최대 23만5000명이 사망한다는 게 미국 랜드연구소의 분석이다. 이번에 북한이 실험한 핵무기가 정부가 최소한으로 추정한 것만으로도 50kt급이라니 그 파괴력은 상상조차 안 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북핵보다 원전에 공포심을 갖는 것 같다.

물론 북핵과 원전 리스크를 단순하게 비교하긴 어렵다. 리스크와 확률 게임으로 보자면 북핵은 리스크는 높은 반면 확률은 낮고 원전은 그 반대라고 정부는 보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만 해도 북핵에 대해서는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로 뻥을 치고 있다”고 하면서도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결정을 내릴 때는 “새 정부는 원전 안전성을 나라 존망이 걸린 국가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는 않지만 없지도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아니 현 시점에서 한반도는 핵전쟁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이다. 국제정세와 원전관리 상태로 볼 때 북한이 핵을 쏠 가능성이 원전에서 중대사고가 날 가능성보다 훨씬 크다고 나는 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즉 북이 핵을 사용할 확률이 원전사고 가능성보다 더 낮다 해도 우리는 북핵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리스크가 더 크기 때문이다.

원전 재가동 日, 미래 택했다

북핵 위협이 가시화한 상황에서도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는 흔들림이 없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과 관련해 공론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할 정부는 대놓고 탈원전 홍보사이트(www.etrans.go.kr)를 열었다. 한국갤럽과 리얼미터 조사에서 북핵 실험 이후 독자 핵개발이든 전술핵 배치 등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국민여론이 절반을 넘어섰는데 정부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도 못 하겠다고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에 따라 우리가 핵무장을 하게 될 경우 원전도 못 하겠다는 나라에 전술핵이 들어온다면 앞뒤가 맞는가. 우리가 독자 핵개발을 하려고 할 때 원천기술이 남아 있기라도 할까.

후쿠시마 사고로 54기의 원전 가동을 중단했던 일본이 최근 원전 2기의 재가동을 승인했다. 우리랑 비교할 수 없는 내상을 입었으면서도 일본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미래를 선택했다. 우리도 이제 북핵이 두려운지, 원전이 두려운지를 냉정하게 바라볼 때가 되었다. 원전과 핵무기의 작동 메커니즘은 같다고 한다. 우리도 원자력에 대해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북한 6차 핵실험#북핵 위협#핵전쟁#정부 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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