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북핵, ‘쿠바 미사일 위기’처럼 해결된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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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미사일 해결책을 놓고… “그래도 대화” “군사행동”
미국도 좌파-우파 다른 시각
미국이 추구하는 막후 외교책… 한국정부 어디까지 알고 있나
쿠바 위기 때 美, 터키 배신하듯… 북핵 동결-주한미군 철수
맞교환 해결도 환영할 텐가

김순덕 논설주간
김순덕 논설주간
‘서울 불바다’ 같은 북의 위협을 우리는 공갈로 친다. 불바다에 비하면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는 별것도 아닌 듯한데 북한은 덜컥 괌 포위공격을 예고해 버렸다.

우리에겐 익숙해진 지금의 북핵 위기가 미국에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래 가장 심각한 위기라는 지적이다. 엉클 샘의 턱밑에 소련 탄도미사일을 배치해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쿠바 사태처럼 엄중한 상황이라는 거다.

진단은 같지만 미국도 좌파냐 우파냐에 따라 해법이 다르다는 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민주당 소속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 국방장관을 지낸 리언 패네타는 11일 “그 레토릭이 상황에 기름을 붓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했다. 미국은 현재 외교적 막후채널을 통해 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게 CNN 보도다. 그런데 트럼프 때문에 북한이나 남한이 오판해 미국을 한반도 전쟁으로 끌어들일까 우려스럽다고 패네타는 걱정했다.



공화당 소속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유엔 대사를 지낸 존 볼턴은 북한 김정은을 비난한다. “뭘 결정하려는지 미국이 확신할 수 없다는 게 군사행동을 취해야 할 이유”라며 대북(對北) 공격은 빠를수록 좋다고 했다. 지난 25년간 대화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자는 민주당 때문에 이 지경까지 왔다는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쿠바 위기를 언급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주로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하는 진보적 인사들이다. 그만큼 위중해서라기보다 막후채널에 주목한다. 1962년 10월 쿠바에 소련이 핵미사일기지를 건설한다는 보고를 받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공습을 외치는 군부 강경파를 물리치고 비밀협상으로 해결책을 찾았다는 것이다. 당시엔 미국이 소련을 굴복시킨 것으로 보였지만 그건 거죽일 뿐이다. 소련이 쿠바 미사일을 철수하는 보상으로 터키와 이탈리아에 배치된 미군의 주피터 핵미사일을 철수해 주는 비밀협약의 존재가 확인된 건 1989년 케네디 스피치라이터의 증언을 통해서였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는 “쿠바 위기를 종식시킨 역사의 교훈을 우리나라 대북정책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1년 전 칼럼에 썼다. 최근 정의당 김종대 의원도 “쿠바 위기는 막후대화채널을 통한 빅딜로 풀렸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또는 한국이 중국이나 북한과의 막후채널을 통해 북핵 폐기도 아닌 동결과 평화협정, 이에 따른 주한미군 철수를 주고받는 빅딜이 필요하다는 소리로 들린다. 한미동맹도 시대에 따라 조정돼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핵을 지닌 북한과 평화체제를 이루는 것이 더 정의롭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때 케네디는 동맹을 배신하는 일임을 알면서도 대(對)소련 방어를 위해 설치했던 핵미사일 철수를 터키 정부와 논의하지 않았다. 1963년 4월 군사적 가치가 없어졌다며 미사일을 철수한 이듬해 앙카라의 소련대사관에서 미-소 비밀협상이 존재했다는 정보가 유출됐지만 두 나라는 한사코 부인했다. 터키의 뿌리 깊은 반미 감정은 쿠바 사태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럼프도 11일 언급을 거부했던 ‘막후채널’의 존재가 목에 걸린 가시 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미 백악관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과 통화하고 단계별 조치들을 긴밀하고 투명하게 공조한다는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단계를 말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지금 막후채널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중국과의 비밀협상으로 북핵 동결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철수 정도가 아니라 한미동맹 해제를 맞바꾸는 것은 아닌지, 주한미군을 철수하면서 다른 이유를 대면 어떻게 할 것인지 모골이 송연하다.

비밀협상만 쿠바의 교훈이 아니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2012년 포린어페어스에 쓴 ‘쿠바 미사일 위기 50년’에서 “전쟁, 심지어 핵전쟁을 각오하지 않으면 적에게 또 당한다”고 강조했다. 북에서 핵도발을 할 때마다 “그래도 대화…”를 외치며 퍼주지 못해 안달하는 이른바 민주정부를 그들이 어떻게 볼지 뻔하다. 볼턴이 주장하듯 김정은은 이러다 미국에 공격받고 죽겠다는 위기감이 턱에 받쳐야 북핵 해결을 논의하는 테이블로 나올까 말까다.

전쟁을 원하는 한국인은 없다. 그러나 전쟁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터키처럼 배신당하고, 북한의 인질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어떤 쿠바식 해결을 원하는가.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미국 대통령#화염과 분노#문정인#대북정책#막후채널#북핵 동결#사드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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