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의 수호자로서 정전유지 임무를 수행하다 북한의 악랄한 만행에 희생된 장병들을 잊지 말아 주세요.”
정전협정 체결 61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최근 방한한 빅터 S 비에라 예비역 대령(83)은 28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1976년 북한의 도끼만행사건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38년 전 그날이 어제처럼 생생하다”고 말한 비에라 대령 옆자리에서 박세환 재향군인회장(74)이 그의 손을 꼭 잡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비에라 대령은 1976년 8월 18일 북한의 도끼만행사건 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으로 근무했다. 이 사건으로 아서 보니파스 대위와 마크 배릿 중위 등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들에게 무참히 살해됐다. 비에라 대령은 사건 사흘 뒤인 8월 21일 한미 양국군의 대북 응징 무력시위인 폴 버니언 작전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데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당시 한국군 1사단 11연대 1대대장(중령)이었던 박 회장과 서로 부대를 수시로 찾아 각별한 우애를 나눴다. 폴 버니언 작전에도 최전방 지휘관으로 참가한 두 사람은 서로를 전우라고 부르며 38년간 남다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비에라 대령은 “한미 양국군이 힙을 합쳐 JSA 내 미루나무를 절단한 폴 버니언 작전은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중대 전환점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폴 버니언 작전은 6·25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한미연합작전으로 북의 도발 의지를 꺾는 동시에 2년 뒤 한미연합사령부 창설의 단초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북한의 도끼만행 직후 리처드 스틸웰 주한미군사령관과 박정희 대통령의 특보, 주한 미국대사 등이 대북 응징 수위와 방법을 놓고 협의했지만 강온파 간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는 것. 결국 스틸웰 사령관은 JSA 대대장이었던 비에라 대령에게 의견을 구했고, 그는 “원래 계획대로 미루나무를 반드시 잘라야 한다”고 강력히 건의해 작전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전쟁을 불사할 만큼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두 사람은 임무 완수만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박 회장은 “미군 가족들이 철수하고, 전방지역의 모든 포문을 북에 조준한 상태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작전에 임했다”면서 “한미 장병들이 전우로서 생사를 함께한다는 믿음과 신뢰 덕분에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박 회장은 비에라 대령이 작전 수행 도중 사망했다는 소문을 듣고, 통제선을 뚫고 직접 부대로 달려가 그가 무사한 것을 보고 덥석 껴안았다는 기억도 꺼냈다. 작전이 끝난 뒤 비에라 대령은 잘라낸 미루나무 가지에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문구를 새겨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
비에라 대령은 “북한의 유일한 목표는 적화통일이라는 점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변한 게 없다”며 “김정은은 유치하고 예측 불가한 데다 김일성과 김정일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인물인 만큼 절대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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