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도끼만행 맞선 ‘폴 버니언 작전’이 韓美동맹 강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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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판문점 JSA 대대장 비에라-박세환씨 38년만에 재회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때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으로 근무한 빅터 S 비에라 예비역 대령(왼쪽)이 28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박세환 재향군인회장과 다시 만났다. 재향군인회 제공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때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으로 근무한 빅터 S 비에라 예비역 대령(왼쪽)이 28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박세환 재향군인회장과 다시 만났다. 재향군인회 제공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의 수호자로서 정전유지 임무를 수행하다 북한의 악랄한 만행에 희생된 장병들을 잊지 말아 주세요.”

정전협정 체결 61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최근 방한한 빅터 S 비에라 예비역 대령(83)은 28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1976년 북한의 도끼만행사건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38년 전 그날이 어제처럼 생생하다”고 말한 비에라 대령 옆자리에서 박세환 재향군인회장(74)이 그의 손을 꼭 잡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비에라 대령은 1976년 8월 18일 북한의 도끼만행사건 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으로 근무했다. 이 사건으로 아서 보니파스 대위와 마크 배릿 중위 등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들에게 무참히 살해됐다. 비에라 대령은 사건 사흘 뒤인 8월 21일 한미 양국군의 대북 응징 무력시위인 폴 버니언 작전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데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당시 한국군 1사단 11연대 1대대장(중령)이었던 박 회장과 서로 부대를 수시로 찾아 각별한 우애를 나눴다. 폴 버니언 작전에도 최전방 지휘관으로 참가한 두 사람은 서로를 전우라고 부르며 38년간 남다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비에라 대령은 “한미 양국군이 힙을 합쳐 JSA 내 미루나무를 절단한 폴 버니언 작전은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중대 전환점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폴 버니언 작전은 6·25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한미연합작전으로 북의 도발 의지를 꺾는 동시에 2년 뒤 한미연합사령부 창설의 단초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북한의 도끼만행 직후 리처드 스틸웰 주한미군사령관과 박정희 대통령의 특보, 주한 미국대사 등이 대북 응징 수위와 방법을 놓고 협의했지만 강온파 간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는 것. 결국 스틸웰 사령관은 JSA 대대장이었던 비에라 대령에게 의견을 구했고, 그는 “원래 계획대로 미루나무를 반드시 잘라야 한다”고 강력히 건의해 작전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전쟁을 불사할 만큼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두 사람은 임무 완수만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박 회장은 “미군 가족들이 철수하고, 전방지역의 모든 포문을 북에 조준한 상태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작전에 임했다”면서 “한미 장병들이 전우로서 생사를 함께한다는 믿음과 신뢰 덕분에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박 회장은 비에라 대령이 작전 수행 도중 사망했다는 소문을 듣고, 통제선을 뚫고 직접 부대로 달려가 그가 무사한 것을 보고 덥석 껴안았다는 기억도 꺼냈다. 작전이 끝난 뒤 비에라 대령은 잘라낸 미루나무 가지에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문구를 새겨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

비에라 대령은 “북한의 유일한 목표는 적화통일이라는 점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변한 게 없다”며 “김정은은 유치하고 예측 불가한 데다 김일성과 김정일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인물인 만큼 절대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정전협정#도끼만행사건#판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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