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정치

[2013한국 ‘탈북자 간첩’ 딜레마]간첩 정체는 ‘탈북자 행세한 화교’였다

동아일보

입력 2013-01-22 03:00:00 수정 2013-01-22 18:11:33

구속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위장탈북 행적 드러나
北서 태어난 화교… 中 친척집 왕래하다 한국행
南 정착후 中여권으로 방북… 北보위부에 포섭
정보당국 신분 눈치챘지만 버젓이 공무원 임용


탈북자들의 인적 정보를 북한으로 빼돌리다 체포된 서울시청 공무원 유모 씨(33)는 탈북자로 가장해 위장 입국한 북한 화교 출신인 한족(漢族)으로 21일 알려졌다. 이번 사건이 ‘탈북자 간첩사건’이 아닌 ‘화교의 탈북자 위장 입국 및 간첩활동’ 사건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본보 21일자 A1면 참조… [단독]서울시 '탈북 공무원'이 간첩? 첫 구속 ‘충격’
▶본보 21일자 A2면 참조… 신상 노출 탈북자 협박대상 될수도


한 소식통은 “국가정보원이 약 5년 전부터 유 씨가 탈북자가 아니며 북한도 몰래 다녀온다는 신고를 받고 감시하다 이번에 증거를 잡고 체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2011년경에도 경찰과 기무사가 신고를 받고 유 씨의 내사에 착수했다가 손을 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정보당국이 주시하는 기간에도 유 씨는 탈북자 담당 공무원에 버젓이 임명돼 수천 명의 목숨과 직결될 수도 있는 민감한 탈북자 정보들을 빼돌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보당국이 탈북자 정보 유출의 파장보다는 ‘실적 만들기용’ 덫을 놓는 데 집착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한 탈북단체장은 “유 씨처럼 탈북자로 위장해 한국에 정착한 북한 출신 화교들이 여러 명 있는 것으로 안다. 이를 관계당국에 제보했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유 씨는 최근 여동생까지 탈북자로 위장해 북한에서 빼내 한국에 데려왔으며 이 여동생은 현재 관계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의 북한 및 한국 내 행적을 관련 소식통들의 설명을 빌려 종합해 재구성한다.

유 씨가 한국에 도착한 것은 2004년 4월. 탈북자 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 57기로 졸업한 그는 대전에 정착했다. 싹싹한 성격에 반한 담당 형사는 그를 양아들로 삼았다. 이후 서울 소재 모 명문사립대 중국어과에 입학하면서 서울 서대문구와 송파구에서 살았다.

유 씨는 서울시 공무원이 되기 전 중국에서 장뇌삼이나 그림을 가져와 북한산이라고 주장하며 팔았다. 2008년엔 환치기 수법으로 26억 원을 중국에 보내려다 적발돼 서울동부지검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환치기 업자들은 벌금형을 받았지만 유 씨는 단순 가담자라는 이유로 큰 처벌은 면했다.

유 씨는 한국에 정착한 뒤에도 북한에 3, 4번 밀입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첫 밀입국은 2006년경으로 어머니 사망 소식을 듣고 방북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교인 유 씨는 중국 여권을 보유하고 있고, 북한엔 화교로 등록돼 있어 중국을 거쳐 남북을 오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유 씨는 이때 북한 보위부에 포섭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과 중국을 넘나들며 장사하는 화교 중엔 북한 보위부 첩자로 암약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보위부는 이들의 통관 편의를 봐주는 대신 중국과 한국의 탈북자 정보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 역시 부친의 장사 편의를 봐주고 아무 때나 북한에 와서 가족을 만나도 된다는 회유에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 유씨, 청진의대 나왔다는 말도 거짓말 ▼

이후 유 씨는 한국에서 한 남북청년모임 회장을 맡는가 하면 한국의 각종 북한 인권단체에 가입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유 씨가 화교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한 탈북자는 “그는 북한인권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태국까지 갈 정도로 열성이었다”며 “화교가 탈북자 인권활동을 벌인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유 씨의 북한 생활

유 씨는 모범적인 정착 사례로 한국의 여러 언론매체에 자주 등장했다. 유 씨는 함경북도 청진시를 고향이라고 소개했고 청진의대를 나온 뒤 외과의사를 1년간 하다 탈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유 씨의 고향은 두만강 옆 함경북도 회령시 오봉리이며 1990년대 초반 회령시내 성천동으로 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족인 유 씨의 할아버지 이름은 류린당이며 부모 역시 한족으로 알려졌다. 유 씨의 본명은 류광일이다. 북한에서는 유 씨의 성을 류 씨로 표기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화교들은 일반 북한 주민과 별반 다를 바 없이 가난했다. 하지만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한 뒤 화교들도 1990년대부터 급속히 부를 축적했다. 지금은 북한에서 가장 선망받는 집단으로 떠올랐다. 자유롭게 중국을 왕래할 수 있는 화교들은 중국 공산품과 북한 농수산물을 거래하는 무역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성천동에는 화교가 세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유 씨 집안은 크게 사업을 벌인 다른 두 가족보다는 사정이 좋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높은 담장을 세우고 사나운 개를 키울 정도로 동네 주민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유 씨는 청진시 포항구역 수북동의 화교 학교에서 6년간의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 북한에선 중국 국적자인 화교는 일반 중학교에서 공부할 수 없다. 또 원칙적으로 대학도 다닐 수 없다. 유 씨가 졸업했다고 거짓 증언한 청진의대는 화교 학교 바로 옆에 있다.

유 씨는 중국의 친척집을 방문했다가 한국의 발전 소식을 접한 뒤 다른 탈북자들 틈에 섞여 한국으로 왔다. 북한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실정을 잘 알고 있어 관계기관을 속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채널A 영상] 탈북자 정보 北에 빼돌린 공무원, 정체 알고보니…‘북한 화교?’

[채널A 영상] 45년 전 무장간첩 31명 청와대 습격…기억하자 ‘1·21 사태’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기자 블로그

관련기사

간첩 | 공무원 | 화교

재테크 정보




많이 본 뉴스

종합

정치

국제

사회

스포츠

연예

댓글이 핫한 뉴스

오늘의 dongA.com

트위터 페이스북 마이뉴스 설정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