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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1972년 10월 유신때 南 비난 안한 이유는?

동아일보

입력 2012-10-16 03:00:00 수정 2012-10-16 15:40:06

“평화공세 지속해 적화통일 달성 전략”
■ 당시 北외교문서 분석


1971년 미중 관계 개선을 계기로 시작된 남북의 대화 모드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으로 정점을 맞는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1972년 10월 17일 오후 7시를 기해 계엄 선포와 헌법 폐지, 국회 해산, 대통령 간선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유신(維新) 체제를 선포한다. 꼭 40년 전 일이다.

당시 남한의 적대국인 북한, 그리고 동맹국인 미국은 모두 의외의 ‘침묵 모드’를 지켰다. 특히 북한은 유신 당일 오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형식적인 비판을 가했지만 북한의 최고지도기관인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노동신문 논설을 통해 유신 선포를 공식적으로 비난할지를 놓고 내부 격론을 벌였다.

15일 우드로윌슨센터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북한대학원대가 발굴한 옛 동독의 북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이만석 북한 외교부 부부장은 그해 11월 8일 평양 주재 동유럽 외교관들에게 “(노동당 중앙위원회가) 남한의 비상계엄 조치를 비난하는 논설을 발표하는 당초의 계획을 바꾸게 됐다”고 밝히고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북한이 남한의 비상조치를 비판하면 야당이 더 탄압받게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평화통일과 ‘남조선 혁명’을 전개할 수 있는 입지와 공간을 잃게 될 것이다. 그나마 열려 있는 대화의 문이 다시 꽉 닫혀 버리고…여타 반정부단체들은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남한은 어쩔 수 없이 북측에 문을 열어놓고 있으며 7·4공동성명의 합의 원칙을 철회하고 문을 닫아걸 수 있는 명분을 찾고 있다. 그들에게 어떤 빌미도 줘서는 안 된다.”

북한은 결국 1971년 6월부터 시작한 대남 평화공세(peace offensive)를 유신 선포 이후에도 지속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대남 평화공세의 목적은 남한과의 대화를 통해 내부 혁명 역량을 키워 적화통일을 이루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독 외교문서에 따르면 1972년 11월 28일 이진목 북한 외교부 부부장도 평양 주재 동유럽 대사들에게 “남측 사회를 민주화시켜서 박정희 정권의 이중적 책략을 무색하게 하기 위해서 남측이 문을 닫아걸지 못하도록 할 것이며 지속적인 압력을 통해 문을 열어 두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한도 북한과의 대화를 원해 남북 조절위원회를 통한 대화는 1973년 6월까지 6차례 계속된다. 문서 발굴과 분석에 참여한 신종대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남한은 박정희 정권의 연장과 북한과의 체제 경쟁을 위한 시간 벌기, 북한은 남한 혁명과 박정희 정권 타도라는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대화를 원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미국이 남한 유신 체제에 대해 ‘침묵’하며 불간섭 원칙을 견지한 것은 ‘한반도 안보’에 대한 고려 때문이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국무부, 국방부 등이 10월 26일 작성한 보고서는 미국이 공식적으로 반대할 경우 발생할 박 정권에 대한 국내외의 반발을 북한이 악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신 체제의 부작용을 예언한 보고서의 혜안은 돋보이는 대목이다. 보고서는 “상대적으로 선진화되고 역동적인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시곗바늘을 돌리려는 시도가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며 “(국제무대에서의 외교적 문제와 함께) 군부와 관료들의 불만이 가중되면 국내 정치 상황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승작용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미 국무부는 1973년 3월 5일 작성한 기밀문서를 통해 1972년 12월 각각 발표된 남한의 유신헌법과 북한 사회주의 헌법이 일인 독재정치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만들어진 점에서 기본적으로 유사하다고 봤다. 1972년 11월 14일 주한 미국대사관은 박 대통령이 만든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의 ‘주체(主體)’는 사실상 김일성 주석의 ‘주체’와 같은 민족주의적 개념이라는 전문을 본국에 보내기도 했다.

40년 전 10월 유신을 둘러싼 남-북-미의 3각 관계를 증언해 준 문서들은 미국 우드로윌슨센터와 한국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북한대학원대가 2005년부터 진행해 온 북한 외교문서 발굴사업(NKIDP)을 통해 입수한 것이다. 신 교수는 핵심 내용을 ‘유신 체제의 수립을 보는 북한과 미국의 시각과 대응’이라는 논문에 담아 곧 출간되는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의 ‘아세아연구’ 최근호에 게재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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