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석 前한미협상대표, 외교2차관에 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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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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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매국노’ 매도됐던 쇠고기협상 주역의 컴백

“지구상에서 저만큼 많은 악플(악의적 댓글)을 받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2008년 한미 쇠고기협상 타결 이후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 폭풍의 한가운데에 섰던 민동석 전 한미 쇠고기협상 대표(58·외교안보연구원 외교역량평가단장·사진). ‘이완용과 더불어 2대 매국노’라는 비난까지 들었던 그가 26일 다자외교 등을 책임지는 외교통상부 제2차관에 내정됐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에서 만난 민 내정자는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 이후 마스크를 착용하고 모자를 눌러쓴 채 길거리를 다녀야 했던 과거를 회고하며 “개인적인 고통과 절망은 둘째치더라도 나라가 망가질 정도로 혼란에 빠져드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바닥까지 떨어져 만신창이가 됐던 나를 다시 불러준 것은 공직자들이 국가적인 어려움을 맞이할 때 보신주의에 빠지지 말라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 매국노에서 차관으로 오기까지

1979년 외무고시 13기로 합격한 그는 외교관 생활의 대부분을 통상 분야에서 일했다. 런던과 리야드, 제네바, 워싱턴 등에서 근무하며 통상라인을 섭렵한 뒤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상 대표로 다자간 협상에 참여했다.

미국 휴스턴 총영사 재직 시절인 2005년엔 허리케인 ‘카트리나’ 대참사를 맞아 교민들의 안전을 돌보며 대대적인 구호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2006년 5월 농림수산식품부 농업정책관으로 자리를 옮기라는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의 권유를 받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시작됐지만 농업 협상을 담당할 전문가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지탄만 받던 농업통상 분야는 희생양만 만들어내는 이른바 ‘수건 돌리기’ 자리였다.

▼ 靑 “불이익에도 소신 지킨 공직자 배려” ▼
‘쇠고기 협상’ 민동석, 외교차관 발탁

PD수첩 상대 법정싸움 26일 외교통상부 2차관으로 내정된 민동석 전 한미쇠고기협상 대표가 올 1월 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광우병 보도 관련 MBC ‘PD수첩’ 선고공판이 끝난 뒤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민 내정자는 당시 PD수첩 팀에 무죄가 선고된 데 불만을 표출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PD수첩 상대 법정싸움 26일 외교통상부 2차관으로 내정된 민동석 전 한미쇠고기협상 대표가 올 1월 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광우병 보도 관련 MBC ‘PD수첩’ 선고공판이 끝난 뒤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민 내정자는 당시 PD수첩 팀에 무죄가 선고된 데 불만을 표출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는 농산물 관세 철폐와 쌀 시장 추가 개방을 요구하는 미국에 맞서 한국의 농산물 시장을 보호하는 내용의 협상을 관철시켰다. 2007년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뒤 외교부 복귀를 준비하던 그는 이번엔 쇠고기협상 대표로 나서게 됐다. 전라남도 땅끝 해남에서 6·25전쟁 중에 태어나 어린 시절 농사일을 돕던 그로서는 일종의 사명감도 있었다.

그는 “공직자가 바로 서야 대한민국이 바로 선다는 생각에 협상 대표를 맡았다”며 “그러나 그 결과 쇠고기 파동이 번지면서 나는 물론이고 내 가족까지 엄청난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지내야 했다”고 말했다.

대규모 시위로 이른바 ‘광우병 파동’이 일자 그는 2008년 7월 8일 사의를 밝혔다. 그러나 당시 정운천 농림부 장관이 사표를 반려해 그는 잠시 통상정책관직을 수행하다 같은 해 11월 친정인 외교부로 복귀했다.

외교안보연구원에서 2년간 와신상담(臥薪嘗膽)했던 그는 쇠고기협상 당시 한미 간에 전개된 양보 없는 수 싸움과 치열한 논리다툼 등 협상 타결까지의 전 과정을 생생하게 소개한 책 ‘대한민국에서 공직자로 산다는 것-협상대표는 동네북인가’를 집필했다.

그는 현재 광우병 보도를 했던 MBC ‘PD수첩’의 PD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11월 중순 최종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다. 그는 “60억 세계인 가운데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만큼 진실은 이미 밝혀진 상태”라고 말했다.

○ MB의 발탁 배경

청와대의 한 핵심 참모는 민 내정자 인선에 대해 “이번에 쓸 줄은 몰랐는데…”라고 말했다. 민 내정자가 청와대 인재 풀에 포함돼 있었고 언제든 적절한 자리에 기용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이렇게 전격적으로 2차관으로 발탁될 것으로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는 뜻이다. 민 내정자는 당초 청와대 인사라인의 외교부 차관 인선과정에서 후보군에는 포함됐지만 상대적으로 후순위에 놓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 대통령의 이번 인선에는 다목적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많다.

우선 공직자가 소신을 갖고 묵묵히 일을 하다 부당하게 피해를 볼 경우 정부가 잊지 않고 챙긴다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이 민 내정자에 대해 평소 ‘마음의 빚’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 피해자에 대한 ‘보은인사’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1차원적 해석’이라고 일축한다. 청와대의 또 다른 참모는 “공직자로서 소신을 갖고 열심히 일을 했는데 허위 사실에 의해 촛불집회라는 게 일어났고 그로 인해 피해를 봤다”며 “그러나 그것은 인선 배경의 극히 일부분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외교부 개혁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민 내정자가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실제 청와대는 외교부 개혁을 위해 가급적 외교부 내 비주류 중에서 2차관 후보를 골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외국어대 출신의 민 내정자는 외교부에서 ‘성골 코스’를 밟지 않은 비주류로서 좀 더 객관적으로 외교부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역대 차관이 49명 있는데 외대 출신으로는 최초로 차관에 발탁됐다”며 “민 내정자는 외교부 출신이지만 농림부 경험을 한 만큼 바깥에서 외교부를 보는 객관적 시선을 갖고 있어 외교부 변화에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이춘석 대변인은 “민 내정자는 ‘쇠고기협상은 미국이 우리에게 준 선물’ 등의 발언으로 국민을 경악하게 했던 사람”이라며 “이번 인사는 ‘회전문 인사’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이번에는 ‘각설이 인사’다”라고 비판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한미FTA 재논의’ 美 자동차 업계가 원하는건…
▲2010년 8월11일 동아뉴스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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