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 “보약 먹고 운동하고… 조류인플루엔자 덮쳐도 끄떡없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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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전문기자의 人]김태현 유나네자연숲농장 대표

주인이 들어서면 반갑게 반기는 놈, 닭 소 보듯 데면데면한 놈, 누가 오든 말든 홰에 올라가 신나게 노는 놈 제각각 자유분방하다. 흰색이 수탉, 갈색이 암탉인데 볏이 빳빳하고 깃털이 풍성한 게 한눈에도 다들 건강해 보인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주인이 들어서면 반갑게 반기는 놈, 닭 소 보듯 데면데면한 놈, 누가 오든 말든 홰에 올라가 신나게 노는 놈 제각각 자유분방하다. 흰색이 수탉, 갈색이 암탉인데 볏이 빳빳하고 깃털이 풍성한 게 한눈에도 다들 건강해 보인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이형삼 전문기자
이형삼 전문기자
경기 고양시에서 닭을 키우는 김태현 유나네자연숲농장 대표(55)를 만나기 며칠 전, 이곳에서 멀지 않은 한강변의 조류 폐사체에서 한동안 잠잠하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외부인의 양계장 출입이 어렵겠다 싶었는데 김 대표는 담담했다.

“이런 정성으로 키웠는데 우리 닭들이 그깟 AI에 쓰러진다면 양계장 접어야지.”

AI 등 가축의 떼죽음을 초래하는 각종 질병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게 밀집사육이다. 계란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 산란계 농장 대부분은 ‘배터리 케이지’라는 좁은 철제 우리에서 닭을 키운다. 1마리당 면적이 0.05m². A4용지보다 작다. 머리만 겨우 내밀어 사료를 먹고 알만 낳다 생을 마친다. 열악한 환경 탓에 병에 잘 걸리며 빠른 속도로 전염돼 폐사율이 높다. 감염을 막기 위해 항생제를 남용하고, 폐사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계란을 얻으려고 성장촉진제를 쓰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받은 닭들이 서로 쪼지 못하게 부리를 잘라버리는 곳도 있다.

해마다 전국의 양계농장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AI가 ‘그깟 AI’라는 김 대표의 자신감은 ‘6무(無) 양계’에서 비롯한다. 유전자변형 사료, 항생제, 성장촉진제, 스트레스, 인공육추(育雛· 병아리 기르기), 인공수정 없이 닭을 키운다는 의미다. ‘동물복지’를 넘어 ‘윤리축산’을 표방한다.

그는 전남 장성의 농가에서 태어나 농업고와 농협대학을 나왔다. 농협에서 퇴직하고 건강식품 사업을 하다 쓴잔을 마시고 흙으로 돌아왔다. 양계와 블루베리 농사를 계획하고 땅을 구한 뒤 수도권 일대의 양계농장을 둘러봤다.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 그러다 전남 영광에 제대로 닭 키우는 곳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빗속에 4시간을 달려갔는데 문전박대 당했다. 그 이유가 기가 막혔다. ‘오늘은 비가 와서 닭들이 우울하니 못 보여준다’고 했다. 아니, ‘닭 새끼’들이 무슨 감정이 있다고….”

윤리축산에 눈 뜨는 순간이었다. 그후 도시농업운동본부 등에서 자연순환 유기농업을 공부했다. ‘상품 아닌 음식 생산’ ‘크게, 빨리 키우지 말라’ ‘치료하는 농사꾼’ 같은 덕목들이 저릿저릿했다. 2013년 2월 양계를 시작하면서 ‘닭의 본성을 존중하라’는 대원칙이 먹이 공간 습성 하나하나에 스며들도록 치밀하게 ‘6무’를 실천했다.

풀을 구하기 힘든 겨울엔 수막하우스에서 밀을 키워 밀싹을 먹인다. 미생물로 발효시킨 흙 사료에선 요구르트 냄새가 났다.
풀을 구하기 힘든 겨울엔 수막하우스에서 밀을 키워 밀싹을 먹인다. 미생물로 발효시킨 흙 사료에선 요구르트 냄새가 났다.
이 농장 닭들은 시중의 배합사료를 먹지 않는다. 대신 김 대표가 통밀 쌀겨 버섯 산야초 새우 멸치 천연효소 등 16가지 국내산 재료로 직접 만든 사료를 먹는다. 풀과 흙도 먹는다. 농장 주변에서 캐낸 쑥 질경이 왕고들빼기 같은 야생초를 먹기 좋게 잘라 주고, 풀이 없는 겨울엔 수막하우스에서 밀을 재배해 밀싹을 먹인다. 흙은 사료를 섞고 발효시켜 준다. 보통 정성이 아니다. 일반 사료를 안 먹이는 건 유전자변형 옥수수가 주성분이어서다.

“저렴한 단백질 공급원인 옥수수는 매력적인 사료다. 계란 노른자를 선명하게 만드는 크산토필도 많다. 하지만 유전자변형, 고(高)콜레스테롤, 극도의 지방산 불균형이 심각하다. 유전자변형 옥수수 사료로 키운 닭의 계란에선 풀 먹여 키운 닭의 계란보다 콜레스테롤이 3배 더 나온다. 이 사료의 오메가6와 오메가3 지방산 비율은 60:1이다(풀은 1:1). 1:1∼4:1이 바람직한데 닭에게 이걸 주식으로 먹이면…. 주부들이 닭백숙을 할 때 한번 살짝 끓여서 기름 뜬 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부어 끓인다. 지방이 많은 껍질을 벗겨내고 살만 익혀 먹기도 한다. 그렇게 조리해도 그릇에 세제를 듬뿍 풀고 힘들게 닦아야 기름기가 겨우 가신다. 그게 우리 몸속에 들러붙는다고 생각해보라.”

풀과 흙 사료는 ‘계란 알레르기 환자도 먹을 수 있는 안심 유정란’을 얻기 위한 보양식이다. “풀엔 단백질 천연비타민 천연항산화물질, 흙엔 수많은 미네랄과 미량원소가 있다. 사람은 못 먹는 풀이 많고 흙은 아예 못 먹으니 닭에게 먹여서 계란과 고기로 섭취해야 한다”는 것. 온갖 풀과 흙을 쪼아 먹고 모래집으로 소화시켜 영양분을 취하는 건 닭 고유의 본성이되 케이지 닭은 누리기 힘든 호사다.

가축사료 등에 사용되는 항생제 상당수는 사람에게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 감염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그의 농장에선 토착 미생물이 항생제를 대신한다. 유익균이 많은 볏짚(그래서 메주나 청국장을 띄울 때 볏짚을 쓴다)을 계사(鷄舍) 바닥에 깔아 땅속 미생물과 상호작용케 하고 자주 뒤집어 습기를 없앤다. 산에서 채취해 배양한 원종(原種) 미생물도 바닥에 접종하고 물과 흙 사료에 섞어 먹인다. 쌀뜨물을 발효해 얻은 강력한 유산균도 뿌려준다.

“병아리 때부터 모든 걸 항생제로 해결하니 면역력이 ‘제로’가 돼 AI에도 취약해진다. 양계는 ‘미생물 싸움’이다. 유익균이 유해균보다 우위를 점하면 면역력이 길러져 항생제가 필요 없게 된다. 우리 닭들도 병은 걸리지만 폐사율은 매우 낮다. 어떤 사람은 감기가 악화돼 목숨을 잃지만 한숨 푹 자고 나면 거뜬히 이겨내는 사람도 있듯이.”

7600m²(2300평) 농장에서 2100마리를 키운다. 공장식 케이지 양계라면 10만 마리도 넘게 들일 면적이지만 ‘계사는 정남향일 것’ ‘원활한 환기를 위해 위가 트일 것’ ‘한여름에도 26℃ 이상 올라가지 않을 것’ 등등의 까다로운 입지조건을 고집한 결과다. 닭의 본성을 살리기 위한 공간도 계사 곳곳에 마련했다. 닭은 흙을 파헤치고 흙으로 목욕하는 습성을 지녔다. 진드기나 기생충을 털어내기 위함인데 이걸 못하면 독한 살충제를 뿌려야 하기에 모래목욕용 구덩이를 파줬다. 생태계 하부의 연약한 동물인 닭은 위험 요인을 피하기 위해 땅보다 높은 곳에서 놀거나 잠을 잔다. 닭들이 충분한 간격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홰를 여럿 만들어준 이유다. 큼지막한 산란상자도 있다.

“사람이 환하고 시끄럽고 개방된 분만실에서 편히 출산할 수 없듯 닭에게도 적당히 높고 어둡고 독립된 산란실이 필요하다. 일부 양계장에선 닭이 알을 낳자마자 컨베이어 벨트로 실어낸다. 말 못하는 닭이라고 ‘아이를 낳으면 또 없어질 것’이라는 스트레스가 없을까. 산란상자 속 암탉은 다른 닭이 낳은 알을 품은 채 알을 낳는다. 심리적으로 안정되니까. 그래서 상자에서 계란을 꺼낼 때는 꼭 한두 개 남겨둔다. 밤새 묵힐 수 없어 마지막 한 개를 꺼낼 때는 탁구공이라도 갖다 놓는다.”

‘우울한 닭’의 속내를 헤아리고도 남는 경지다. 그의 계사를 견학하려면 ‘드레스코드’를 따라야 한다. 펄럭거리는 외투나 스커트(닭은 눈앞으로 거대한 흉기가 날아다닌다고 여길 수 있다), 붉은색 옷(흥분할 수 있다), 챙이 넓은 모자(사람이 크게 보여 위협적), 하이힐(굉음)은 금기다. 계사 수리를 위해 전동드릴을 쓸 때는 멀리서부터 작동시켜 소음에 적응케 한다. “닭이 한번 펄쩍 뛰어오를 정도로 놀라면 진정시키는 데 일주일은 걸린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산란과 면역에 영향을 미쳐 알과 고기에 독성물질이 쌓인다”고 한다.

이곳 닭들이 마냥 편안한 삶을 사는 건 아니다. 햇병아리 때부터 ‘자연육추’ 프로그램에 따른 고강도 본성 강화훈련을 받는다. 중병아리를 가져와 키우는 여느 산란계 농장과 달리 김 대표는 갓 태어난 병아리를 부화장에서 사와 키운다. 밤이면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3월 초와 11월 초, 육추상자에 150마리를 넣고 부화 후 첫날밤을 보내게 한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면서 병아리들은 서로 밀착해 체온을 나눠야 얼어 죽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추울 때 육추하면 추운 환경을 이겨내려고 솜털도 많이 낸다. 육추상자 내부엔 경사가 있고 양쪽 끝에 물통과 먹이통이 있다. 병아리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양쪽을 오가며 근력을 키운다. 특별식도 제공된다.

“첫 먹이로 갈지 않은 통현미를 사흘간 준다. 처음엔 못 먹고 물었다 뱉었다 하다가 어느 순간 삼키게 된다. 평생 거친 먹이를 먹어야 된다는 것, 그런 먹이에 적응해야 된다는 걸 알려준다. 나흘째부터 풀을 먹이는데 딱딱한 대나무 잎을 준다. 왕겨와 볏짚도 먹는 강한 닭으로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다. 이렇게 키우면 소화기관이 2배 길고 두꺼워져 소화력도 좋고 영양분 흡수율도 높아진다. 사람도 장이 편해야 건강하듯 닭도 장이 튼튼해야 병치레를 안 한다.”

일부 공장식 케이지 양계장의 산란율은 100%를 상회한다. 한 마리가 하루 1개 이상 알을 낳는다는 얘기. 산란율을 높이려고 밤새 조명을 밝혀 잠을 안 재우거나 인위적으로 유정란을 얻기 위해 주사기로 암탉에게 수탉 정액을 주입하기도 한다. 강제 털갈이도 활용된다. 산란율이 떨어진 닭에게 일주일 남짓 먹이를 안 주면 털이 거의 다 빠진다. 그때 먹이를 주면 다시 털이 나면서 산란율이 일정 정도 올라간다. 어느 경우나 닭과 계란에 무리가 간다.

“우리 닭들의 산란율은 60%대다. 이틀 낳고 하루 휴가. 빨리 어두워지는 겨울엔 오후 6시면 홰에 올라가 12시간 넘게 잔다. 그런다고 조바심 내지 않는다. 낮이 길어지면 덜 자고 더 낳을 테니까. 먹이를 조절해서 생후 120일도 안 돼 알을 받는 곳도 있지만 우리는 150일 키워 받는다. 성조숙증에 걸린 닭이 건강한 알을 낳겠나.”

암탉과 수탉의 비율은 12:1∼15:1로 맞춰준다. 암탉이 이보다 많으면 무정란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수탉이 더 많으면 암탉이 빨리 늙는다. 수탉은 종족번식 본능이 강해 암탉의 감정과 상관없이 무시로 달려들기 때문이다.

산란상자에서 막 꺼내온 신선란.
산란상자에서 막 꺼내온 신선란.
계란은 회원제로 판매한다. 1개 1000원. 시중 계란보다 2∼3배 비싸지만 하루 1000개쯤 생산돼 1300여 명의 회원에게 빠듯하게 돌아가니 초기처럼 못 팔아 남아도는 일은 없다. 닭을 돌보는 데 워낙 손이 많이 가고 생산 관리 영업을 혼자 도맡느라 규모를 더 키우긴 어렵다고 한다.

“오전 6시에 일을 시작해 오후 10시가 넘어 마무리한다. 닭에 매달린 지난 4년 동안 큰딸 결혼식날 딱 하루 쉬었다. 3km 거리의 아파트에서 출퇴근하는 시간이 아까워 아예 농장으로 살림을 옮겼다. 많은 걸 포기해야 했지만 누구 앞에서도 ‘나, 이런 닭 키우는 사람이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니 됐다.”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마크 거부하는 까닭은▼
 
“정부 기
준도 여전히 열악… 그런 계란과 똑같은 대우 싫어”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절감한 유럽 국가들은 2000년대 초부터 배고픔·불편·불안·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으로 활동할 자유 등을 바탕으로 동물복지 기준을 마련해 사육은 물론이고 운송, 도축 과정에도 적용했다. 인증제를 실시해 소비자가 해당 축산물을 구별할 수 있게 하고 생산자에겐 직불금 같은 인센티브를 줬다. 질병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케이지 닭 사육은 1990년대 이후 자취를 감췄다.

국내에서도 2012년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가 도입됐다. 동물이 본래의 습성을 유지하도록 인도적으로 관리하는 농장을 정부가 인증하고 이들 농장에서 생산된 축산물에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제도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그해 산란계를 시작으로 돼지(2013), 육계(2014), 소(2015), 오리(2016)로 인증 대상을 확대했다. 올 1월 현재 인증농장은 114개. 그중 89개가 산란계 농장인데 인증 기준은 △케이지 밀집사육 금지 △강제 털갈이, 부리 다듬기 금지 △홰 설치 △하루 6시간 이상 어두운 상태 지속 등이다. 일반 공장식 양계장에 비하면 크게 개선된 사육환경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동물복지 인증을 거부한다. 정부의 인증 기준이 미흡하다고 여겨서다. 예컨대 “3.3m²(1평)에 27마리를 키우면 기준을 충족하는데, 닭들을 케이지에서 꺼내놓긴 했어도 이런 밀도라면 제대로 못 움직이기는 매한가지”라는 것. 그의 농장에선 같은 면적에 8, 9마리를 키운다.

축산물 무항생제 인증도 거부한다. 무항생제 인증은 항생제 무첨가 사료를 먹이면 받을 수 있다. 동물에게 의약품 용도로 항생제를 쓰는 데는 제약이 없다. 항생제를 물에 섞어 먹이고 열흘쯤 지나면 검출되지도 않는다고 한다. 무항생제 인증마크가 항생제 오·남용 우려를 불식하진 못한다는 것이다.

“마트에 가보면 인증마크 없는 계란이 드물다. 날개 한번 못 펴는 계사에서 ‘복지’라니. 폐사율이 높은 일반 농장에서 항생제를 안 쓰면 닭들이 다 죽을 텐데. 그저 세일즈 포인트로 활용되는 쉬운 인증, 소비자에게 최선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기 위한 장치가 된 인증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런 계란과 똑같은 부류로 취급받긴 싫다.”

이형삼 전문기자 hans@donga.com
#조류인플루엔자#유나네자연숲농장#윤리축산#축산농장 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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