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일자리 창출 제1목표”… 모두가 떠날때 ‘시놀라’는 들어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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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제조업의 부활 상징’ 디트로이트 시계기업 ‘시놀라’

미국 제조업 부활의 상징이 된 시놀라 직원들이 13일 오후 미국 디트로이트 도심 ‘창의연구대학(CCS)’ 내에 차려진 공장에서 시계를 만들고 있다(맨 위 사진). 한 직원이 방진복을 입고 예민한 공정인 시계 본체 조립을 하고 있다(가운데 사진).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이 회사의 본사 사무실에는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을 소개하는 홍보물이 붙어 있다(맨 아래 사진). 디트로이트=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미국 제조업 부활의 상징이 된 시놀라 직원들이 13일 오후 미국 디트로이트 도심 ‘창의연구대학(CCS)’ 내에 차려진 공장에서 시계를 만들고 있다(맨 위 사진). 한 직원이 방진복을 입고 예민한 공정인 시계 본체 조립을 하고 있다(가운데 사진).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이 회사의 본사 사무실에는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을 소개하는 홍보물이 붙어 있다(맨 아래 사진). 디트로이트=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4월 영국을 방문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회담할 때 ‘시놀라(Shinola)’ 시계를 선물했다. 이 시계 뒷면엔 ‘디트로이트산(Built in Detroit)’이라고 원산지 표시가 돼 있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시놀라 시계만 13개 있다. 그는 늘 “시놀라야말로 가장 미국적인 성공 스토리다. 우리(미국)는 더 많은 시놀라가 필요하다”고 선전한다.

2011년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시에서 창업한 시계 제조회사 시놀라는 요즘 ‘부활하는 미국 제조업의 상징 기업’이다. 4명으로 시작한 기업이 5년 만에 직원 540명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 같은 자동차 회사들의 대규모 구조조정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던 디트로이트 사람들을 고용해 시계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이제는 한 해 시계 생산량이 50만 개가 넘고, 연간 매출액 1억 달러(약 1180억 원)에 이르는 미국 최대 시계 제조 회사로 커졌다. 뉴욕타임스 등 미 주요 언론들도 “미국 제조업이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1960년대 이후로 제대로 된 미국 시계 회사 하나 없었다. 시놀라 시계는 놀라울 따름”이라고 흥분하고 있다. 시놀라는 그 여세를 몰아 수제 자전거 가죽가방 메모장(저널) 등으로 제품 영역을 확대했고, 조만간 턴테이블 스피커 헤드폰 등 오디오 기기 시장에도 진출한다.

13일 오후 디트로이트 도심 밀워키 애비뉴 ‘창의연구대학(CCS·College of Creative Studies)’ 건물 안에 있는 시놀라 본사를 방문해 자크 패니스 최고경영자(CEO·38)를 만났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환영합니다. 시놀라는 항상 열려 있고, 투명한 회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사무실을 둘러보니 CEO인 그조차도 별도의 방이 없었다. 사무실 한 귀퉁이에 책상과 소파만 있었다.

―무엇보다 왜 디트로이트를 선택했는지 궁금합니다. 2011년 디트로이트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GM 등 자동차 회사들의 구조조정 때문에 여전히 폐허 같은 ‘죽음의 도시’였는데요.

자크 패니스 시놀라 최고경영자.
자크 패니스 시놀라 최고경영자.
“간단합니다. 사람들(the people) 때문입니다. 디트로이트엔 일자리가 필요한, 우수한 인재가 아주 많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메이드 인 USA’를 추구하는 시놀라는 미국 안에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회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 모든 측면에서 디트로이트는 시놀라엔 최고의 도시입니다.”

패니스 CEO는 “디트로이트는 미국 제조업의 역사가 담겨 있는 곳이다. 시놀라는 디트로이트에는 그런 찬란한 과거뿐만 아니라, 더욱 화려한 미래가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이곳에 왔다”고 덧붙였다.

―시놀라가 성공하면서 ‘메이드 인 USA’의 상징이 됐습니다. 전현직 대통령들이 시놀라 시계를 국내외에 선전하고 있고요.

“전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야말로 메이드 인 USA의 거대한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 회사들이 파산 위기를 맞으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죠. 2011년 제가 여기 왔을 땐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면 도심 거리에 사람이 없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디트로이트는 부활했습니다. 지금은 출근시간에 심각한 교통체증이 있습니다. 시놀라는 그런 디트로이트 부활의 한 부분을 담당했을 뿐입니다.”

시놀라가 입주해 있는 건물은 예전엔 GM 연구소로 쓰이다가 CCS 측에 기증된 것이다. 디트로이트 지역 언론들은 “GM이 떠난 자리에 시놀라가 둥지를 튼 것 자체가 미국 제조업의 세대교체를 상징한다”고 평가한다.

―몇몇 비평가는 “시놀라가 디트로이트에 대한 미국인들의 향수, 일종의 애국심을 상술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하던데요.

“디트로이트와 디트로이트 사람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들입니다. 지난 몇 년간 디트로이트 사람들은 단 하나의 공동 목표만 있었습니다. ‘베터(Better·더 나아지는 것)’입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만 생각하며 함께 일하고, 주변을 청소하고, 서로 대화를 나눴죠. 그 노력의 여정에 시놀라가 함께한 것뿐이고요.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디트로이트가 부활할 것이란 확신은 그런 과정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시놀라의 최우선 목표는 일자리 창출이라고 하는데 일자리가 이윤 추구보다 우선이란 뜻인가요.

“물론 시놀라의 발전이 지속 가능하려면 이익을 내는 회사가 돼야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겁니다. 시놀라의 마케팅 전략은 ‘사람 이야기’입니다. 시놀라 제품을 많이 사면 살수록 미국 안에 좋은 일자리가 더 많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은 압니다.”

시놀라의 홈페이지와 각종 광고엔 시놀라 임직원이 많이 등장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나는 이 일을 너무 사랑합니다”라며 환하게 웃는다. 그러면서 “이 사람들이 시놀라를 스위스 시계 회사들을 능가하는 세계 최고의 회사로 만들 것이다. 시계의 본고장 스위스 제네바가 ‘유럽의 디트로이트’로 불리는 날이 올 것”이란 꿈과 희망을 선전한다.

―시계, 자전거, 가죽가방, 오디오 같은 제품군에서 연관성을 찾기 힘듭니다. 손으로 직접 만들어 고급화한다는 점 말고는요.

“솔직히 특별한 과학이나 법칙 같은 건 없습니다. 미국인들이 ‘미국에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제품을 찾은 결과입니다. 미국인들이 좀 더 많은 값을 치르더라도 구입할 가치가 있다고 느낄 제품을 발굴하려고 노력합니다.”

미국의 한 마케팅조사기관에 따르면 ‘5달러짜리 중국산 볼펜’보다 ‘15달러짜리 디트로이트산 볼펜’을 사겠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고 한다. ‘메이드 인 USA’에 대한 추가비용을 기꺼이 내겠다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패니스 CEO와 40분 정도 대화를 나눈 뒤 사무실 옆에 있는 시계 제조 공장을 둘러봤다. 민감한 시계 본체 조립 공정 공간만 반도체 공장에 들어갈 때처럼 방진복 착용이 의무화돼 있었다. 그 외 대부분의 공정은 마치 가내수공업처럼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시곗줄을 만드는 공정에선 30∼40명의 직원이 신나는 힙합 음악을 틀어놓고 원단을 자르고 모형을 뜨고 시곗줄에 글자를 새기는 일을 몸을 흔들며 하고 있었다. 절반 이상이 흑인이었다. 표정은 한결같이 밝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계는 475∼1125달러에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견학을 마치고 패니스 CEO 책상 앞으로 가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시놀라 CEO로서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요.

“수천, 수만 개의 일자리입니다.”

단 1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었다.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는 회사’를 미국 땅에서 만났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했다.

디트로이트=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오바마#시놀라 시계#shinola#디트로이트#자크 패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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