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라모가 묘사하고 레스피기가 편곡한 ‘닭’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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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 길고 어지럽던 한 해도 저물어가고 정유년(丁酉年), 붉은 닭의 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왜 ‘붉은’ 닭이라고 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닭은 아침을 알리는 동물이며, 아침 해는 붉게 떠오르기 마련이죠. 닭 울음이 알리는 상서로운 새 아침 새 햇살처럼, 내년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기준과 척도들이 정립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십이지를 알리는 동물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면, 다른 동물을 묘사하는 음악은 그다지 생각나는 것이 없는데도 닭을 묘사한 음악으로는 생각나는 게 몇 곡 있습니다.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에 묘사된 동물들도 사자, 당나귀, 거북, 코끼리, 캥거루, 물고기, 노새, 뻐꾸기, 백조로 ‘유난히도’ 십이지와 겹치지 않지만, 유독 두 번째 악장에 ‘암탉과 수탉’이 들어 있습니다.

레스피기
 이탈리아 작곡가 레스피기는 1928년 ‘새(鳥) 모음곡’을 발표했습니다. 전주곡에 이어 비둘기, 닭, 나이팅게일, 뻐꾸기의 울음과 자태가 묘사됩니다. 그런데 세 번째 악장 ‘닭(La Gallina)’을 들으면서 ‘이거 라모 작품 아냐’라며 놀라는 음악 팬도 있습니다. 이 모음곡은 레스피기가 바로크시대 선배 작곡가들의 건반음악을 관현악으로 편곡한 것이고, ‘닭’의 원곡은 프랑스 작곡가 장필리프 라모의 건반악기곡집에 나오는 닭(La Poule)이기 때문입니다.

 레스피기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바로크 작곡가들의 소품이 연주회에 오르는 경우가 적었던 데 착안해 레스피기는 이 아름다운 선율들을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새’ 모음곡을 썼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옛 건반음악들도 연주가들이 자주 리사이틀에서 소개하고 있고, 여러 연주가가 필요한 레스피기의 모음곡이 오히려 더 듣기 힘들게 됐습니다.

라모
 그런데 라모가 표현하고 레스피기가 관현악으로 표현한 닭이 그다지 ‘상서롭지는’ 않습니다. 꼬끼오∼ 하고 힘차게 하루를 알리는 닭 울음보다는, 마당을 분주하게 다니며 꼭꼭거리는 닭을 묘사한 것 같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독자께서도 추운 연말에 건강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닭 사육 농가를 울리는 조류인플루엔자(AI) 파동도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라모#레스피기#새 모음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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