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식 전문기자의 스포츠&]진정한 팬 서비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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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에서 밀착 수비와 과격한 몸싸움은 구분돼야 한다.
농구에서 밀착 수비와 과격한 몸싸움은 구분돼야 한다.
안영식 전문기자
안영식 전문기자
2017∼2018시즌 초반 국내 여자프로농구의 과격한 몸싸움은 핸드볼을 연상케 했다. 손으로 잡아채고 팔뚝으로 밀치기는 기본이었다. 스크린플레이(상대 팀 수비수를 몸으로 막아 노마크 슛 찬스를 만드는 것)는 아이스하키의 보디체크를 방불케 했다. 심지어 팔꿈치까지 사용돼 부상자가 속출했다. 농구가 어느 정도의 몸싸움은 허용되는 종목이라지만 예년과 달리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그런데 웬만해선 파울 휘슬이 울리지 않았다. 몸싸움에 관대한 국제농구연맹(FIBA) 룰에 적응해 국제경기 경쟁력을 높이고, 경기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한 팬 서비스 차원에서 이번 시즌부터 어지간한 신체 접촉은 묵인하기로 해서란다.

그 취지에 공감한다손 치더라도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의 준비 부족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FIBA가 용인하는 몸싸움은 ‘몸통 싸움’이다. 손이나 팔을 사용한 파울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게다가 ‘신체 접촉에 대한 관대한 기준’이 불명확하다 보니 심판에 따라 파울 콜은 들쭉날쭉했다.


어찌 보면 이달 10일 경기 중 발생한 나탈리 어천와(우리은행)-이사벨 해리슨(KEB하나은행)의 ‘난투극’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곪은 상처가, 시한폭탄이 터진 것이다.

‘싸움판’에서 이미 10경기 이상 치른 두 외국인 선수는 독기(毒氣)가 한창 오른 ‘여전사(女戰士)’로 둔갑해 있었다. 두 선수는 각각 벌금 300만 원과 200만 원, 1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지만 농구코트를 격투기장으로 전락시킨 WKBL의 유감 표명은 심판에 대한 벌금 10만 원이 전부였다.

그런데 여자프로농구 선수들은 또다시 바뀐 파울 기준에 혼란스럽다. 난투극 사건 직후 파울 기준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국내 남자프로농구처럼 살짝 스치기만 해도 파울 휘슬이 울려 당황해하는 선수가 많다. 난투극 이전과 이후 경기의 TV중계 자료화면을 비교해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심판 판정의 요체는 공정성과 일관성이다. 물론 심판마다 판정의 잣대는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 기준이 공정하게, 일관성 있게만 적용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야구에서 주심마다 서로 다른 스트라이크 존이다.

미국프로농구(NBA)에 전 세계 농구팬들이 흠뻑 빠지는 이유는 뭘까. 세계 최고의 농구선수들이 모인 ‘꿈의 무대’에 대한 구차한 설명은 필요 없을 듯하다. 굳이 언급하자면 선수들이 ‘무의미한 파울’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끊어지지 않는 경기의 박진감과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경기의 품격이 다르다.

여기에 파울 콜의 기준이 명확하고 편차가 작은 심판진이 훌륭한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 제아무리 스테픈 커리(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라도 이번 시즌 초반의 국내 여자프로농구처럼 파울 콜이 제대로 불리지 않는다면 특유의 현란한 드리블과 신들린 듯한 3점슛 퍼레이드는 불가능할 것이다.

‘경기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어지간한 신체 접촉은 묵인한다’는 것은 축구의 어드밴티지 룰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데, 난센스다. 축구는 파울당한 팀에 유리한 상황을 제공할 수 있지만 농구는 제 경기력을 발휘할 수 없다. “퍽” 하는 소리가 나고 “악” 하는 비명이 날 정도의 몸싸움을 방관해서는 농구 경기가 성사될 수 없다.

최근 국내 남자프로배구는 ‘심각한 오심’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해당 경기의 주심과 부심은 무기한 출장 정지, 경기감독관과 심판감독관에게는 무기한 자격 정지의 중징계가 내려질 정도의 인재(人災)였다. 오심 못지않게 게임을 망치는 것은 과격한 몸싸움을 방치하거나 시도 때도 없이 휘슬을 불어대는 ‘오락가락 판정’이다.

국내 여자프로농구는 24일 치러진 올스타전에서 화합의 제스처를 보여줬다. 하지만 시즌 후반 순위 싸움이 치열해지면 또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올스타전 브레이크타임 6일간 각 팀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심판진도 파울 가이드라인을 재점검했을 것이다. 팀당 35게임씩 치르는 이번 시즌의 반환점도 돌지 않았다. 명예 회복의 기회는 있다. 시행착오는 한 번으로 족하다.

프로 스포츠에서 진정한 팬 서비스란 무엇일까. 파인 플레이는 기본이다. 페어플레이를 보여줘야 한다. 그 바탕은 동업자 정신이다. 상생(相生)의 정신이다. ‘너 죽고 나 살자’는 공멸(共滅)을 부를 뿐이다. 거친 파울로 인한 치명적인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는 게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다. 눈앞의 성적에 급급해 더티 플레이가 속출한다면 팬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안영식 전문기자 ysahn@donga.com
#몸통 싸움#난투극#진정한 팬서비스#파인 플레이#상생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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