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숙식 가능 재활센터 단 1곳… “유혹 힘들어 내발로 들어왔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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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은 세계 마약퇴치의 날… 재활 몸부림치는 중독자들

17일 인천국제공항 우편세관에서 인천본부세관 마약탐지견 ‘시원’과 마약탐지 조사요원들이 컨베이어벨트로 옮겨지는 우편물을 확인하고 있다. 모든 국제 우편물은 마약탐지견의 코와 X선 검사를 무사히 통과해야 국내에 들어올 수 있다. 인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7일 인천국제공항 우편세관에서 인천본부세관 마약탐지견 ‘시원’과 마약탐지 조사요원들이 컨베이어벨트로 옮겨지는 우편물을 확인하고 있다. 모든 국제 우편물은 마약탐지견의 코와 X선 검사를 무사히 통과해야 국내에 들어올 수 있다. 인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난해 국내에서 검거된 마약류 사범은 1만 명(1만1916명)을 넘었다. 유엔이 정한 ‘마약청정국’ 기준은 인구 10만 명당 마약사범 20명 미만. 국내 인구를 약 5000만 명으로 볼 때 한국은 10만 명당 23명으로 더이상 마약청정국이 아니다.

과거 마약 투약자는 조직폭력배나 연예인, 유흥업소 종사자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회 고위층부터 미성년자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또 인터넷을 통하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마약을 구할 수 있다. 26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마약 퇴치의 날’. 은밀한 마약 거래의 실태와 재활을 위해 몸부림치는 중독자들을 취재했다.

마약 거래의 온상이 된 인터넷

“반바지 챙겨.”

22일 서울 동대문구 무학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 3팀 사무실. 강경구 반장의 지시에 맞춰 팀원인 이승훈 김형재 김현일 수사관 3명은 익숙한 듯 사물함에서 반바지와 슬리퍼를 챙겼다. 잠복근무를 할 때 입을 위장복이었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서울 도심의 한 주택가 골목. 필로폰 판매업자로 의심되는 인물의 집 앞이었다. 현장에 도착하자 팀원들의 눈과 손이 바빠졌다. 용의자 신상과 관련된 서류와 첩보를 다시 확인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했다. 기온이 30도를 넘어가면서 에어컨을 꺼둔 차량은 찜통이 됐다. 용의자가 눈치챌까 봐 잠복할 때는 시동을 끈다.

“마약사범들은 워낙 조심성이 많고 눈치가 빠르거든요.” 강 반장은 2004년 전국 17개 지방경찰청에 마약수사대가 창설될 때부터 근무한 ‘베테랑’이다. 마약사범들은 조금만 낌새가 이상해도 증거를 없애고 잠적하기 일쑤다. 그래서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 며칠 동안 잠복하거나 갑자기 지방으로 내려가야 할 일도 잦다. 강 반장은 “10여 년 전 당시 쫓고 있던 마약 판매업자가 대구에 나타났다는 첩보를 듣고 급하게 내려다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최근 인터넷을 통한 마약 거래가 늘면서 검거가 더욱 까다로워졌다고 입을 모았다. 24일 경찰청에 따르면 인터넷에서 마약을 구입하거나 판매하다 검거된 인원은 2011년 133명에서 2014년 800명으로 6배로 늘었다. 가장 큰 원인은 철저한 익명성 때문이다.

요즘 흔하게 이용되는 마약 거래 방식은 일명 ‘던지기’. 판매업자는 먼저 인터넷에서 구매자를 모집한다. 이어 운반책으로 하여금 구매자와 약속한 장소에 마약을 갖다 놓게 한다. 나중에 찾아온 구매자가 이를 갖고 가는 방식이다. 모든 의사소통은 ‘위챗’ ‘텔레그램’ 등 추적이 불가능한 해외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이뤄진다. 마약 판매업자, 운반책, 구매자는 서로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피한다.

인터넷 거래가 흔해지면서 10대 마약류 사범도 증가하고 있다. 검색만으로 구입 방법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 41명이던 10대 마약류 사범은 지난해 128명으로 늘었다.

현재 경찰이 추적하는 캄보디아 한국인 마약 공급책들도 최근 이런 방식으로 국내에서 필로폰을 판매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각각 ‘토마토’ ‘청풍명월’로 불리는 2명은 국내 마약 판매업자들 사이에서 ‘큰손’으로 통한다. 이들은 필로폰을 공급받기 위해 접근한 판매업자들에게 “삽으로 퍼서 팔기 때문에 공급량은 충분하다”고 호언장담할 정도로 확실한 공급처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이들은 마약 판매업자들에게만 필로폰을 공급해왔다. 일종의 도매상인 셈이다. 하지만 세관 단속이 강화되고 밀반입하려다 적발된 사례가 늘면서 약속된 필로폰을 받지 못한 판매업자들과 마찰을 빚자 인터넷을 통한 직접 판매에 나선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단속과 공급책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캄보디아로 근거지를 옮긴 필로폰 공급책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근 캄보디아가 국내 필로폰 주요 밀수처로 부상한 이유도 이러한 변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중국에서 들여오다 적발되는 필로폰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캄보디아의 경우 2014년 1건(6g)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6건(1057g)으로 늘었다.

늘어나는 마약 밀수

국내에 유통되는 마약류 대부분은 해외에서 들어온다. 국내에서 제조하는 것은 단속에 걸릴 위험이 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해외에서 제조해 밀반입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17일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1층 입국장. 방문객이 수하물을 찾고 세관 신고대를 지나기까지 거리는 불과 100m. 이 공간은 국내로 마약을 들여오는 밀반입자를 걸러낼 수 있는 마지막 관문이다.

이곳에서 수하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인파 사이로 인천본부세관의 마약탐지견 ‘청아’와 마약탐지요원 황성구 씨가 바쁘게 움직였다. 래브라도 레트리버 종인 청아는 3년째 인천공항에서 마약탐지견으로 활약하고 있다. 같은 시각 국제 우편물의 관문인 인천공항 우편세관에서는 마약탐지견 ‘시원’이 우편물이 나란히 놓인 컨베이어벨트 위를 누비며 단속 활동을 하고 있었다.

마약탐지견의 후각은 사람보다 1만 배 이상 뛰어나다. 하지만 인천공항 하루 평균 방문객 12만 명, 국제 우편물 13만 건 중 마약을 찾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밀반입자의 운이 지독히 나쁘고 세관 직원들의 운이 아주 좋은 날에만 가능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세관에서는 사전에 입수한 정보 분석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출입국관리사무소나 항공사, 수사기관에서 제공받은 우범자의 출입국기록, 전과, 첩보를 분석해 마약을 들여오는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나 항공편을 집중 단속한다. 하지만 이를 피하기 위한 밀수 수법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우범자 리스트에 오르지 않은 마약 전과가 없는 사람을 포섭해 마약을 운반하도록 하거나 양주에 필로폰을 희석해 들여오기도 한다.

박종필 인천본부세관 마약조사과 계장은 “세관에 마약을 만지기만 해도 그 흔적을 검출할 수 있는 장비가 있다 보니 아예 처음부터 마약에 손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신체의 은밀한 곳에 숨겨오기도 한다”며 “국내 적발 마약의 70∼80%가 인천공항에서 적발되는 만큼 ‘여기가 마지막 보루’라는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10명 중 4명은 다시 찾는다

마약범죄는 어떤 유형의 범죄보다 재범률이 높다. 법무부에 따르면 마약류 사범 10명 중 4명은 마약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출소 후 3년 안에 다시 교도소에 수감된다.

2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에서 만난 김성훈(가명·50) 씨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대마초를 피웠다. 어릴 적부터 동네에서 대마초를 피우는 모습을 흔하게 봤던 터라 그게 범죄인지도 몰랐다. 이후 다른 마약에도 손을 댔다. 그렇게 35년을 살았다.

김 씨가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경찰에 붙잡힌 건 지난해 4월이다. 검찰은 단순 투약자인 김 씨에게 4일 동안 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교육을 받는 조건으로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 김 씨는 이때를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첫 번째 ‘복(福)’이라고 표현했다. “재활교육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약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김 씨의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흔들렸다. 대마를 몰래 키우던 산을 볼 때마다 대마초 생각이 났다. 다시 옛날로 돌아갈까 불안했다. “35년 만에 찾아온 복을 이대로 놓쳐버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 발로 이곳을 찾아왔죠.”

지난해 6월 22일 김 씨는 중독재활교육센터에 입소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는 전국 12곳에 지부를 두고 있지만 숙식을 하면서 재활교육을 받을 수 있는 중독재활센터는 1곳뿐이다. 김 씨를 만난 날은 그가 이곳에 입소한 지 만 1년이 되는 날이었다. “평생 부모님 걱정만 시켜드렸는데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어요. 아직 장가를 못 갔는데 지금 사귀는 여자랑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게 꿈입니다.”

윤현준 중독재활센터 상담실장은 “이곳을 찾는 중독자 대다수가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고 그러다 보니 마약에 쉽게 빠지고 의존해왔던 것”이라며 “이들이 마약을 끊고 제대로 사회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가족과 사회가 나서서 더 이상 약물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사기관이 관할 시도지사에 넘기면 지자체서 폐기▼

압수 마약 어떻게 처리할까
마약 종류 따라 소각-희석-매립… 서울시 “검경-공무원 입회 태워”

 

수사기관이 압수하거나 세관에서 적발한 마약은 어떻게 처리될까. 현행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법원 판결이 확정된 사건에 대해 몰수한 마약류를 관할 시도지사에게 넘겨야 한다.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원칙적으로 이를 폐기한다.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이라도 예외적으로 보관이 곤란한 경우에는 미리 폐기하기도 한다.

단, 연구나 공무상 목적으로 마약류가 필요한 경우 폐기하지 않고 해당 기관에 제공하거나 활용하기도 한다.

마약 폐기는 종류에 따라 소각과 희석, 매립 등 3가지 방식을 이용한다. 대부분은 소각장에서 태워 없앤다. 이때 마약 자체는 물론이고 마약을 투약할 때 쓴 주사기, 마약을 포장하고 있는 비닐 등도 함께 폐기한다. 환경이나 보건상의 문제가 없는 장소에서 폐기해야 하며 도난이나 유출 사고 우려 때문에 폐기 장소는 공개하지 않는다.

몰수 마약류의 보관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은 까다로운 규정을 적용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몰수 마약류 관리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몰수 마약류 보관함은 철재로 이중 잠금장치가 있어야 한다. 몰수 마약류를 옮길 때에는 도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무장 경찰의 파견을 요청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폐기 때는 해당 지자체 직원 등 2명 이상의 공무원이 입회해야 하고 그 과정을 촬영해 5년 동안 보존해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에 있는 5개 지검에서 몰수 마약류를 보관하고 있다가 일정량이 모이면 해당 지검과 경찰, 시 담당 직원이 모두 입회한 상태에서 소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각 지자체는 몰수 마약류를 처분한 뒤 그 결과를 이듬해 1월 말까지 식약처에 보고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보안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공개할 수 없지만 해마다 마약 적발량이 늘고 있는 만큼 폐기 마약의 양도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마약 사범#마약 거래#마약 밀수#인천본부세관#마약 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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