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개 벽화 조각, 퍼즐 맞추듯…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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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문화재 복원 현장 <上> 1997년 대지진서 부활한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성당

1997년 지진으로 무너졌던 성 프란치스코 성당의 볼트(아치형 천장)에 벽화가 복원되기 전(위쪽 사진)과 복원된 뒤의 모습. 지진으로 벽화가 30만 개로 산산조각 났지만 25만 개를 재조립해 냈고 5만 개는 여전히 복원 중이다. 성 프란치스코 성당 제공
1997년 지진으로 무너졌던 성 프란치스코 성당의 볼트(아치형 천장)에 벽화가 복원되기 전(위쪽 사진)과 복원된 뒤의 모습. 지진으로 벽화가 30만 개로 산산조각 났지만 25만 개를 재조립해 냈고 5만 개는 여전히 복원 중이다. 성 프란치스코 성당 제공
6일(현지 시간) 로마에서 차로 2시간 반 거리의 이탈리아 중세도시 아시시. 고풍스러운 성벽을 지나 언덕을 오르자 좌우로 긴 회랑을 거느린 ‘성 프란치스코 성당’이 나왔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가 잠든 이곳은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대예배당에 들어서자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주변으로 사방의 벽은 물론이고 5m 높이의 천장에까지 거대한 벽화가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치마부에, 조토, 시모네 마르티니, 피에트로 로렌체티 등 13, 14세기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들이 남긴 벽화다. 군데군데 벽화가 떨어진 흔적도 보였지만 오히려 700년 전 원형을 간직했음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벽화들이 17년 전인 1997년 9월 26일 대지진으로 무너져 30만 개의 조각으로 부서진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당시 보수 책임자로 이곳을 찾았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세르조 푸세티 씨는 “첫 지진이 발생한 지 9시간 뒤 여진이 일어났는데 볼트(궁륭·穹륭,·아치형 천장)에 금이 좍 가더니 벽이 순식간에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며 “순간 출구 쪽으로 뛰었지만 결국 천장에 깔렸는데, 함께 내부를 점검하던 네 명은 숨지고 나만 가까스로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가 있는 곳으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가 있는 곳으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성당의 붕괴는 즉각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복구를 위해 자원봉사자가 몰렸고 거액의 성금도 걷혔다. 이탈리아 정부와 바티칸 측은 문화재 복원 전문가 300명을 불러 모았다. 2년간 2800만 유로(약 388억 원)가 투입된 대역사의 시작이었다.

우선 무너진 구조물과 벽화 조각들이 뒤섞인 참사 현장을 정사각형으로 나눠 번호를 부여한 뒤 잔해를 밖으로 퍼 날랐다. 벽화 조각의 낙하지점을 알아야 짜 맞출 때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 자원봉사자 500명이 벽화 조각과 건물 잔해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분리해냈다. 걸러진 벽화 조각들은 회화 복원 전문가들 손에 맡겨졌다. 이들은 사고 이전 성당 내부를 촬영한 사진과 각종 문헌자료를 참조해 벽화 조각 30만 개 중 25만 개를 맞춰내는 데 성공했다. 꼬박 2년이 걸렸다. 아직 맞추지 못한 5만 개는 치마부에의 작품으로 현재 피사대에서 복원 중이다.

복원 과정에서는 전통 방식만 고집하지 않았다. 맞춰낸 벽화를 벽체에 붙일 때 전통 모르타르나 시멘트 대신 특수 개발한 ‘접착제’를 사용했다. 시멘트 등에는 벽화에 손상을 주는 소금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접착제는 21번의 테스트 끝에 겨우 완성됐다는 뜻에서 ‘21아시시’로 명명됐다.

복원된 벽체에도 첨단과학이 대폭 적용됐다. 지진에 강한 벽체를 만들기 위해 탄소섬유로 골조를 세우고 길이 13m짜리 독일산 철강 띠를 벽 안에 둘렀다. 철강 띠 중간에는 상하좌우로 약간씩 움직일 수 있는 철강 판을 설치해 지진파를 흡수할 수 있도록 했다.

정수희 프랑스 문화유산보전복원센터 연구원은 “1970, 80년대부터 성당 곳곳에 대한 사진이나 조사 자료를 풍부하게 만들어 놓아 벽화 복원이 가능했다”며 “벽화는 원형대로, 구조물은 첨단과학으로 적절히 복원했다”고 설명했다.

아시시=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3∼13일 이탈리아에서 진행한 ‘KPF 디플로마-건축 문화재의 보존과 복원’ 연수과정을 통해 취재가 이뤄졌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성당#복원#이탈리아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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