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교외로 이사뒤 ‘파김치 출근’ 못견뎌 U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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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출근, 안녕하십니까]웰빙 도심탈출 막는 교통인프라

김대리 씨는 지옥철의 고통을 겪고 있지만 이른바 ‘통근 계층’ 중에서는 상위에 속하는 편이다. 이동 구간이 그나마 서울 시내에 있기 때문이다. 경기 성남이나 부천, 고양, 인천 등 시 경계를 넘어 출근하는 사람들은 통근시간의 영향을 더욱 크게 받는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지난해 수도권∼서울 통근자 4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거주자의 평균 서울 출근시간은 1시간 16분이었다. 하루에 2시간 반가량을 출퇴근에만 소비한다는 의미다.

반면 웰빙과 도보 생활권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직장과 집의 거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사를 선택하고, 때로는 도심 탈출을 포기하기도 한다. 아예 이직이나 자택근무를 택할 때도 있다. 통근거리는 늘어나고 교통 인프라는 부족한 상황에서 국민의 도보 생활권 요구는 높아지는, 이른바 ‘통근 아노미’ 현상을 취재팀이 포착했다.

○ ‘통근시간 때문에 이사 고려 또는 실행’ 10명 중 4명

“아빠는 퇴직해 공기 좋은 데서 살고 싶다. 사람 붐비는 곳은 이제 싫다.”

최모 씨(63)는 2009년 회사에서 퇴직한 뒤 가족들과 함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를 벗어나 경기 과천시 원문동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온 가족의 고통’이 시작됐다. 서울 동대문구 학교 교사였던 아내는 오전 6시에 일어나 황급히 출근 준비를 해도 한 시간이 넘게 꽉 막힌 반포대로를 넘어야 했다. 성북구 안암동으로 등교하는 대학원생 딸도 ‘사당역 지옥철’을 겪으며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평일 온 가족이 모이는 저녁식사는 더이상 없었다. 결국 최 씨는 2년 만에 ‘도심 탈출’의 꿈을 접고 2011년 다시 압구정동으로 이사했다.

박모 씨(28)는 2년 동안 경기 화성시 반월동 집에서 서울 명동으로 출근해 오다 지난해 서울 영등포구로 이사했다. 이전 출근길은 경기버스, 광역버스, 서울 시내버스를 거쳐 1시간 40분까지 걸렸다. 회사 특성상 회식이 잦았지만 사회 초년생이라 거부할 수도 없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회식 이후 찜질방에서 밤을 지냈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던 박 씨는 결국 서울에 원룸을 얻어 나왔다. 박 씨는 “요즘엔 헬스장도 등록하고 평일 밤에 운동도 한다. 회사가 가깝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설문조사 결과 ‘자신의 통근거리 때문에 이사를 고려 혹은 실행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67명으로 42%를 차지했다.

○ 집 가까운 일터…되찾은 생활의 여유

김창국 씨(53)는 7년 전 학원 서무 일을 그만두고 김밥집 사장이 됐다. 원래는 인천 부평구 부계동에서 서울 노량진 학원까지 왕복 3시간을 통근했다. 수년 전부터 몸이 안 좋아지면서 통근길이 힘들어졌고 고민 끝에 아내 사업에 합류했다. 6시에 일어나 주스 한 잔 마시고 뛰어나와야 했던 출근길은 걸어서 2분이 됐다. 아침도 꼬박꼬박 먹는다. 부계동에서 김밥집을 운영하다가 지금은 구로구에 김밥집을 열어 그곳으로 이사했다. 김 씨는 “인천∼서울 출근길 역사를 다 봤다. 출근길 지옥철엔 ‘푸시맨’(만원 전동차에 승객들을 밀어 넣던 공익근무요원)이 있었고, 회식이라도 하면 영등포역에서 위험천만한 총알택시를 타야 했다”고 말했다.

전문 기술을 가진 젊은층 중에서는 자택근무나 프리랜서를 택한 사례도 있었다. 홈페이지 관리 일을 하던 이모 씨(32·여)는 서울 강북구 미아동 아파트에서 강남역 회사까지 출근시간이 1시간 반에 가까웠다. 웹 제작 전문가였던 이 씨는 작업용 컴퓨터만 있으면 업무를 할 수 있는데 왕복 3시간 통근거리가 너무 아까웠다. 결국 2007년 이 씨는 자택근무 프리랜서로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씨는 “업무는 쇼핑몰 회사, 성형외과 등에서 스스로 따 왔다. 출퇴근 시간까지 투입해 작업을 하다 보니 원래 받던 한 달 월급은 너끈히 나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 직장도 ‘출퇴근 효율 프로젝트’

일부 기업과 정부기관 등에서도 이 씨처럼 ‘출퇴근 효율 근무’ 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충북혁신도시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2010년부터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시차근무제를 중심으로 유연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곳 직원 정은선 씨(38)는 월·금형 시간선택제를 신청했다. 금요일 오후 3시에 퇴근해 서울 마포구 집으로 향하고, 월요일 오후 1시에 충북으로 출근한다.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오후 9시까지 근무해 빈 시간을 보충한다. 정 씨는 “월요일엔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회사에 올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금요일은 일찍 퇴근할 수 있어 교통체증을 그나마 덜 겪는다”고 말했다. 한국씨티은행 등 일부 금융기관과 사기업도 근무시간선택제를 올해부터 본격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일부 통신사의 ‘스마트워크센터’ 도입 또한 같은 흐름의 변화다.

▼ 장거리 지하철 통근 김대리 불편 줄이려면…
승객분산 위해 ‘조조할인’ 등 도입할만 ▼


프랑스 파리 도심은 에펠탑을 기준으로 바깥 방향으로 원형을 겹겹이 그려 나가는 형태로 뻗어 있다. 파리의 수도권 급행철도인 RER는 외곽 신도시의 확장에 맞춰 1960년대 말부터 중심에서 방사형으로 뻗어 나갔다. 열차 평균 시속은 65km다. 파리 안에 들어가기 전까진 정차를 최소화한 급행으로 운영되고 시내에 들어오면서 원래의 메트로와 연결된다.

반면 안산선(경기 안산시∼군포시 금정) 등 국내 수도권 전철은 평균 시속 45km, 급행 운행은 9호선에만 한정된다. 이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파리에서는 구조설계부터 급행노선을 포함한 반면 우리나라는 이미 설계된 현재 광역철도에 급행노선을 추가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에서 이런 한계점들을 최대한 극복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서울 내 장거리 통근자인 김대리 씨를 구할 방법은 없는 걸까.

서울연구원과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등 관계 당국은 서울 지하철 2호선 등 주요 ‘지옥철’ 구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출근시간대 전동차 간격 최소화 △ATO(자동운행장치) 차량 집중 배치를 통한 정차 소요시간 감축 △출근시간대 신차 배치 증대 등 가능한 모든 방안을 실험 중이다. 최근 서울메트로는 운행이 끝나고 차고로 들어가는 열차 때문에 발생하는 운행 지연을 줄이기 위해 차량 입고용 선로를 추가 배치하기도 했다. 인프라 조치 외에도 승객 분산을 유도하기 위해 출근시간대 어르신 무료 탑승 일시 제외, 이른 시각 탑승자 할인 등 정책 아이디어도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곽도영 now@donga.com·백연상 기자
#출근#통근시간#교통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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