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중소기업 다녀 다행” 거점형 공공직장어린이집 반응 뜨거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8일 17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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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서울 강서구 ‘거점형 공공직장어린이집’ 교실에서 보육교사가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곳은 고용노동부와 강서구가 함께 예산을 들여 지난해 12월 문을 연 전국 1호 공공어린이집이다.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자녀에게 입소 우선순위를 주는 유일한 곳이다. 양회성기자 yohan@donga.com
지난달 8일 서울 강서구 ‘거점형 공공직장어린이집’ 교실에서 보육교사가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곳은 고용노동부와 강서구가 함께 예산을 들여 지난해 12월 문을 연 전국 1호 공공어린이집이다.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자녀에게 입소 우선순위를 주는 유일한 곳이다. 양회성기자 yohan@donga.com
서울 강서구 지하철 5호선 화곡역에서 걸어서 5분. 가정집이 즐비한 골목길로 들어서면 2층짜리 하얀 단독 건물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첫 선을 보인 ‘강서구 거점형 공공직장어린이집’이다. 지난달 8일 찾은 이곳은 여느 어린이집의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아침부터 아이를 맡기러 온 직장인들은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출근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어린이집은 일반 어린이집과 별 차이가 없지만 ‘국내 1호’ 타이틀을 갖고 있다. 바로 중소기업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자녀에게 입소 우선권을 주는 유일한 곳이다. 거점형 공공직장어린이집은 고용노동부가 기초지방자치단체와 함께 교통 요지에 있는 건물을 매입하거나 신축해 어린이집을 짓는 사업이다. 영세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등 저소득 맞벌이 가구의 보육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 직장어린이집이 ‘넘사벽’인 이들을 위해…

강서구 거점형 공공직장어린이집은 고용부와 강서구청이 총 사업비 57억 원을 각각 8 대 2로 분담해 문을 열었다. 정부는 지난해 시범사업으로 건립지역 3곳을 선정했고, 그 중 강서구 어린이집이 가장 먼저 문을 열었다.

원래 직장어린이집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위주로 설치돼 있다. 많은 비용이 들어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선 직장어린이집 운영이 어렵다. 게다가 비정규직 노동자는 직장어린이집이 있더라도 입소를 꿈꿀 수 없다. 고용부 관계자는 “기간제나 파견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는 사업주가 따로 있기 때문에 정작 자신이 일하는 사업장에 직장어린이집이 있어도 아이를 보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거점형 공공직장어린이집은 이렇게 ‘보육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해 만든 것이다. 강서구 어린이집은 원래 일반 어린이집이던 건물을 지난해 9월 매입해 새롭게 단장한 뒤 4개월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기자가 직접 둘러본 어린이집 내부는 깔끔했다. 각 층별로 3, 4개의 교실과 놀이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교실에 문턱이 없어 넘어질 염려가 없었다.

● “남편이 중소기업 다녀 다행”

이 어린이집의 입소 1순위는 부부가 모두 △비정규직·기간제 근로자 △중소기업 근로자 △영세 자영업자에 해당하는 경우다. 부부 중 한 명이 이 조건에 해당하면 2순위가 된다. 강서구 예산이 들어간 만큼 정원의 80%는 강서구민에게 우선권이 있다. 현재는 96명이 다니고 있어 정원(114명)보다 다소 적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정원을 다 채울 전망이다.

만약 자리가 남더라도 대기업 직원이나 공무원 자녀는 입소할 수 없다. 이 어린이집의 최종문 원장은 “상담하러 온 한 어머니가 ‘남편이 중소기업을 다녀 너무 다행이다’고 말할 정도로 학부모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전했다.

이 어린이집의 특징은 보통 오후 7시 30분이면 끝나는 보육시간을 오후 9시 30분까지 2시간 연장해 운영한다는 점이다. 이곳에 아이를 맡기는 정모 씨(44)는 “다른 어린이집에 맡길 때는 오후 7시만 넘으면 ‘혹시 우리 아이만 남아 있는 건 아닌지’ 눈치가 보였다”며 “여긴 오래 머무는 아이들이 많아 마음이 한결 놓인다”고 말했다. 다음 달부터는 최대 4시간까지 자유롭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간제 보육도 실시할 예정이다.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들이 마음 편히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은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어린이집 3만9171곳 중 직장어린이집은 1111곳(2.9%)에 불과하다. 이 중 대기업 직장어린이집이 556곳으로 절반이 넘는다. 5세 딸을 키우는 이한수 씨(43)는 “국·공립어린이집 입소를 4년이나 기다렸는데 결국 추첨에서 떨어졌다”며 “마침 공공직장어린이집이 생겨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 당장 아이 맡길 곳 없는데…

내년 3월엔 경기 시흥과 충남 계룡에 각각 2, 3호 거점형 공공직장어린이집이 들어설 예정이다. 정부는 올 4월 건립지역 10곳을 추가로 선정할 예정이다. 지자체가 응모하면 고용부는 △중소기업 노동자가 밀집한 곳인지 △보육 수요가 많은 지역인지 △교통 접근성이 좋은지 등을 판단해 건립지역으로 최종 선정한다. 정부는 2022년까지 총 50곳에 공공직장어린이집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제는 얼마나 빨리 시설을 늘릴 수 있느냐다. 강서구의 경우 기존 어린이집을 매입해 공공어린이집으로 전환했기 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2, 3호 공공어린이집은 부지를 새로 매입해 신축해야 해 개원까지 1년 8개월이 걸릴 예정이다. 추가 건립지역을 올해 선정하더라도 인근 주민들이 실질적 혜택을 누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기존 어린이집을 매입한 뒤 시설을 전환하면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지만 일부 지자체에서는 신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부가 거점형 공공직장어린이집의 보육정원을 최소 150명으로 잡고 있어서다. 고용부 관계자는 “기존 어린이집 매입을 권장하고 있지만 어린이집 규모가 너무 작으면 안 돼 신축을 염두에 두고 공모에 참여하는 지자체가 많다”고 전했다.

박은서기자 cl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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