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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어설픈 지식인들, 진짜 전문가를 밀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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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어설픈 지식인들, 진짜 전문가를 밀어내다

유원모 기자 입력 2017-09-09 03:00수정 2017-11-08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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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강적들/톰 니콜스 지음·정혜윤 옮김/420쪽·1만8000원·오르마
올봄 한국에선 엽기적인 유행이 번졌다. 이른바 자연주의 육아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안아키(약을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카페’ 논란이다. 약 6만 명의 부모가 가입한 이곳에는 “아이들을 수두 감염자와 접촉시켜 자연 면역력을 늘려라” “장염에 걸리면 숯가루를 먹여라” 등의 제멋대로 처방이 퍼져나갔다. 이들이 공인된 예방접종을 거부하고, 미신에 가까운 이 같은 지침을 따른 이유는 간단했다. “전문가인 의사들의 처방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논란 끝에 카페는 폐쇄됐고, 운영자는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의사뿐 아니다. 변호사, 교수, 외교관, 엔지니어 등 우리 사회의 전문가들이 무시당하고 있다. 일반인들로부터 “나도 너만큼은 알아”라고 공격받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미국 대선 유세에서 “전문가는 끔찍해(The experts are terrible)”라는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교육 수준이 낮은 유권자로부터 대거 득표에 성공해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전문가의 몰락 현상을 각종 사례를 중심으로 풀어낸 책이다.

저자는 구소련 문제를 연구해 온 톰 니콜스 미국 해군대학 교수다. 1990년대 중반 미국 최고의 TV 퀴즈쇼 ‘제퍼디!’에서 5회 연속 우승한 경력도 자랑한다. 그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비전문가들이 자신을 향해 러시아 문제를 가르치려 드는 글을 보고, 화가 나 책을 쓰게 됐다고 집필 계기를 밝혔다.

책은 주로 미국 사례에 집중돼 있지만 낯설지 않다. 전문의의 처방보다 연예인이 TV에서 주장하는 민간요법을 더 믿는 대중들.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내린 국방 정책을 여론조사라는 이름으로 뒤집으려는 모습까지. 전문가들의 자리를 대신하는 유명인 그리고 집단지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여론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책에선 최근 전문지식의 위협을 부른 원인으로 크게 3가지를 꼽는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저질 정보, 지식의 전달이 아닌 취업 기관으로 전락한 대학, 그리고 사실과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작용됐던 언론이 수많은 매체의 난립으로 질 좋은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 등이다.

그러나 저자는 전문가의 역할이 없다면 한 사회의 안정성과 발전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2009년 US에어웨이스의 비행기가 새떼와 충돌했던 당시 조종사가 허드슨강으로 비상 착륙해 승객 전원을 구한 것은 조종사의 전문지식과 경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100년 전보다 늘어난 수명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것은 의학·생명공학 전문가들의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의 전문가 공격은 끝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저자 역시 명확한 해답 대신 전문가들이 일반인들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를 벗어야 한다는 다소 교과서적인 해법을 내놓는다. 그럼에도 “나도 너만큼은 알아”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 우리 사회에 시사점을 제공해주는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전문가와 강적들#톰 니콜스#안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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