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성장둔화로 전력수요 감소 판단… 예측 틀리면 전력난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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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脫원전’ 가속]‘월성 1호기 등 원전 11기 2030년까지 폐쇄’ 로드맵 마련

정부가 월성 1호기 등 노후 원자력발전소 11기를 2030년까지 폐쇄하는 내용을 담은 탈(脫)원전로드맵을 마련 중인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또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을 결정할 공론화위원회는 24일 공식 출범한다. 전체 원전(25기)의 절반에 가까운 11기의 원전 가동 중단 계획을 세우고 공론화위원회가 가동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도 사용 연한이 지난 원전이라도 수명을 연장해 사용하는 사례가 많아 이 같은 정부 방침은 적잖은 논란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공론화위원회 등 협의 절차를 거친 탈원전 정책 추진 방침을 내세우고도 대통령의 지시에 맞춰 일방적인 탈원전 로드맵이 마련되는 셈이어서 반발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 2030년 설계수명 끝나는 원전 11기 폐쇄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원전 제로 시대를 열기 위한 탈원전로드맵에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함께 2030년까지 설계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 10기 폐쇄 및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로드맵은 대통령사회수석비서관실과 경제수석실을 중심으로 원전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마련 중이다. 다음 달 발표될 8차 전력수급계획의 전력공급 전망 초안에도 노후 원전 폐쇄 계획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폐쇄 대상 노후 원전은 월성 1∼4호기와 고리 2∼4호기, 한빛 1, 2호기, 한울 1, 2호기 등이다. 이 가운데 정부는 설계수명이 10년간 연장돼 2022년까지 가동하도록 돼 있는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할 방침이다. 월성 1호기는 2012년 설계수명이 연장됐다. 문 대통령은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전력수급계획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월성 1호기도 중단될 수 있고, 2030년까지 (원전) 몇 개를 더 폐쇄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의 속도를 올리는 것은 노후 원전을 폐쇄해도 전력 수급에 큰 차질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조만간 발표될 8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전력 수요가 줄면서 노후 원전을 폐쇄해도 전기요금 부담이 크게 늘지 않고 전력수급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최근 발표된 8차 전력수급계획 초안에 따르면 2030년 최대 전력수요는 101.9GW(기가와트)로 2015년 발표된 7차 계획 당시 전망치인 113.2GW보다 11.3GW 줄었다. 정부가 2030년까지 가동 중단을 계획한 원전 11기 발전량을 모두 합쳐도 9.2GW다. 결국 국내 전력수요량 감소 폭이 폐쇄되는 원전 발전량보다 많다는 의미다.

청와대 관계자는 “7차 계획은 평균 경제성장률을 연평균 3.5%로 설정하면서 전력수요 증가를 과도하게 잡았다”며 “원전을 추가로 짓기 위한 이른바 ‘원전 마피아’들의 시각이 반영돼 있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8차 계획은 성장률 전망치를 연평균 2.5%로 설정했다.

○ “8차 계획 검증 후 계획 세워야” 목소리도 커져

원전 폐쇄가 원전 해체산업 기술 확보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정부가 노후 원전 폐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이유 중 하나다. 노후 원전 폐쇄를 국내 기업에 맡겨 원천 기술을 개발하도록 한 뒤, 향후 확대될 해외 원전 해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원전 해체에 필요한 96개 기술 가운데 아직 국내 기업들이 확보하지 못한 28개 기술을 2021년까지 개발하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민간에서는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특히 8차 전력수급계획에 맞춰 원전 가동 중단을 하는 것이 성급한 결정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월성 1호기를 제외한 나머지 10기는 문 대통령 임기 이후에 설계수명 만료 시점이 도래하는데도 정책 결정을 지나치게 서둘러 차기 정부의 선택권을 박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너지학과 교수는 “8차 계획에 정치적 판단이 들어간 것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이전 계획보다 전력수요가 지나치게 줄어든 만큼 검증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8차 수급계획을 올해 말까지 확정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지나치게 조급하게 향후 50년의 탈핵 로드맵 수립에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설계수명 이상으로 원전을 연장 운영하는 것이 용인되는 점에서 정부 방침이 지나친 조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원전 447기 중 30∼39년 된 원전은 181기, 40년 이상 된 원전도 101기에 달했다. 미국의 오이스터 크릭 원전, 스위스의 베츠나우 원전 등은 가동한 지 50년이 되는 2019년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미국 오이스터 원전은 설계수명이 40년이었으나 미국 규제 당국이 20년 수명 연장 결정을 내렸다.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탈핵 논의는 1, 2년 걸리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2030년까지의 계획을 지금 급하게 세워봐야 다음 정부에서 뒤집힐 수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정책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문병기 weappon@donga.com / 세종=박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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