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그분, 5·18 軍판사로 한계 있었겠지만… 내 인생은 뭔가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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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당시 사형선고받은 버스운전사 인터뷰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배모 씨(71)는 광주에서 버스 운전사로 일하던 34세의 평범한 가장이었다. 당시 27세의 군 법무관이던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64)가 배 씨에게 내린 사형 선고는 배 씨는 물론이고 가족의 인생까지 뒤바꿔놓았다. 배 씨는 32개월간 복역하고 출소한 뒤 ‘시국사범’ 꼬리표 때문에 오랜 기간 보안당국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배 씨는 3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37년 전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김 후보자에 대해 “나를 재판한 사람도 결국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운명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배 씨 옆을 지킨 딸은 “역사의 비극 속에 한 가정이 파괴됐지만 (김 후보자로부터) 직접적인 사과가 한 번도 없었다”며 원망을 나타냈다.

○ “저분은 좋은 자리로 가는데 내 인생은…”

1980년 5월 20일 오후 9시경 배 씨는 광주 동구 노동청 부근 내리막길에서 버스를 운전 중이었다. 배 씨는 “시위가 한창이던 도심은 극심한 최루탄 연기 때문에 1∼2m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배 씨는 “버스를 몰고 가다 갑자기 벽 같은 것에 부딪혔고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주변에서 총소리가 들렸다”며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도망쳤고, 나 역시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사고 현장을 벗어났다”고 말했다.

배 씨는 당시 자신이 들이받은 벽이 경찰의 저지선이고 그 때문에 경찰관 4명이 숨진 사실을 몰랐다. 그는 “다음 날 버리고 도망쳤던 버스를 찾으러 사고 현장을 찾아가다 경찰에 체포되고 나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았다”고 말했다. 배 씨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앞이 안 보여서 들이받은 것이지 고의로 사람을 친 게 아니다”라고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배 씨에게 사형을 선고한 1980년 10월은 김 후보자가 육군 법무관으로 복무한 지 10개월쯤 된 때였다. 1982년 8월까지 군 복무를 한 김 후보자는 다수의 5·18 관련자 재판에 참여했다.

배 씨는 1995년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5·18특별법)이 제정되자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을 맡은 광주고등법원은 1998년 6월 “최루탄 연기 때문에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고의 책임을 운전자인 배 씨에게만 묻는 것은 부당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으로 살인 누명은 벗었지만 32개월의 복역과 보안당국의 감시로 심한 고초를 겪은 배 씨는 김 후보자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털어놨다. “당시 군 판사로서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저분(김 후보자)은 저렇게 좋은 자리로 계속 가는데 내 인생은 뭔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배 씨에 대한 사형 선고는 김 후보자가 2012년 헌법재판관에 지명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논란이 됐다. 당시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이 판결을 거론하며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김 후보자는 “사건을 확실하게 검토해서 제 마음의 결단을 정하겠다”고 답변했다. 또 당시 새누리당 함진규 의원이 “전혀 사과할 용의가 없느냐”고 묻자 김 후보자는 “사과보다도 저는 오히려 더 큰 짐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5·18특별법 제정 이후 김 후보자의 5·18 관련 선고 20여 건 가운데 7건이 재심으로 무죄가 확정됐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배 씨를 포함해 무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힌 적이 없다.

○ 자유한국당 “김 후보자 부적격” 공세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은 4일 “문재인 정부는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주장하는데, 김 후보자는 5·18 당시 시민군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 공로로 상도 받았다”며 “헌재 소장으로 부적격 인사”라고 비판했다. 한국당의 이 같은 공세에는 계산이 깔려 있다. 문재인 정부가 ‘호남 공략’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는 만큼 5·18 판결 논란이 부각될수록 여권이 김 후보자를 두둔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한국당의 판단이다.

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4일 김 후보자 부인 정모 씨의 농지법 위반 의혹을 제기했다. 정 씨는 2004년 충남 서산시 부석면 991m² 규모 농지를 주말농장 명목으로 1290만 원에 매입해 위탁경영을 맡겼다가 2011년 8월 농어촌공사에 1887만 원을 받고 팔았다. 곽 의원은 “주말농장 목적의 농지는 일반적 농지에 해당되지 않아 위탁경영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배석준 eulius@donga.com·신광영·최고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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