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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취직시키려 기를 쓰면서도 욕하는 게 우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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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취직시키려 기를 쓰면서도 욕하는 게 우리사회”

정민지기자 입력 2017-03-20 03:00수정 2017-03-2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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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17일 서울 중구 대우재단빌딩에서 만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청년 실업 문제에 대해 “도전정신이 없다고 청년들을 나무라기 전에 기성세대들이 기회를 만들어 줬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창업 1세대’인 그는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를 다니며 청년 창업가 양성 교육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 자산총액 76조7000억 원, 41개 계열사와 396개 해외법인, 내·외국인 임직원 28만 명을 거느린 재계 서열 2위 대우그룹의 몰락은 갑작스러웠다. 1999년 당시 정부와 채권단은 ‘세계경영’의 깃발을 내걸었던 대우그룹이 무분별한 과잉 투자와 ‘문어발식’ 확장 경영을 했다며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지목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81)은 그룹의 공중분해 앞에 무력했다. 단돈 500만 원으로 시작해 매출 71조 원의 대기업 그룹을 일궈낸 ‘샐러리맨의 신화’ 김 회장은 17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추징금을 떠안고 부도덕한 경영인으로 추락했다. 수년간 해외로 도피하기도 했다. 기업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대우’는 살아있다. 세계경영의 현장이던 해외에서 더 그렇다. 국내 10여 개 기업이 여전히 ‘대우(DAEWOO)’ 브랜드를 내걸고 수출하고 있다. ㈜대우 후신인 포스코대우가 받는 브랜드 사용료만 연간 25억 원. 사우디아라비아가 포스코대우와 자동차 사업을 추진하면서 대우(DAEWOO) 브랜드를 완성차에 다는 것을 사업 조건으로 내걸고 있을 정도로 일부 국가에서 ‘대우’ 사랑은 각별하다. 서로를 ‘대우 가족’으로 부르며 유달리 끈끈했던 ‘대우맨’들은 23일 ‘대우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열고 한자리에 모인다. 이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베트남에서 귀국한 김 전 회장을 17일 오후 서울 중구 대우재단빌딩 18층에서 만났다.》
 
하얗게 센 머리에 왜소한 체격의 노인이 천천히 응접실로 들어섰다. 악수를 하기 몇 발짝 전부터는 주변 부축을 마다하고 혼자 걸었다. 전 세계를 누비며 ‘킴기즈칸’(김우중과 칭기즈칸의 합성어)으로 불렸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맞나 싶었다. “안녕하세요.” 가는 목소리로 입을 뗀 김 전 회장은 악수를 청하며 두 손을 모아 내밀었다. 그가 건넨 명함에는 대우 마크와 ‘Kim Woo Choong’이라는 영문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주로 해외에서 활동해 한글 명함은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세계 경영의 기백 대신 너그럽고, 천진해 보이기까지 하는 미소가 우선 눈에 들어왔다. 하얘진 긴 눈썹이 여전히 인상적이었다. 인터뷰 전 측근들은 김 전 회장이 귀가 어두워 보청기를 끼고 있다며 조금 크게 질문해 달라고 당부했다. 건강을 묻자 “괜찮습니다, 허허….” 깍지 낀 두 손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대우그룹 50주년을 맞는 소회부터 물었다. 대우그룹 해체에 대한 생각과도 맞닿을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베트남서 청년사업가 육성

김 전 회장은 “젊은 날,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봐서 후회는 없다. 순간순간 정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직원들에게는 미안하기 짝이 없다. 다 잘될 줄 알았는데 외국에 많이 나가 있는 바람에 오해를 많이 받고 잘못됐다”고 나지막하게 답했다. “그렇다고 지금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그룹 해체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달관한 노인 같았다. 오랜 세월 가슴으로 삭인 세월의 무게가 전해져 왔다.

김 전 회장은 주로 베트남 하노이에 머물며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글로벌 청년사업가) 육성 사업으로 인생의 마지막 장을 채워 나가고 있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운영하는 GYBM은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취업이나 창업을 하려는 청년들을 모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대우그룹 신입사원을 뽑듯 창업의지와 도전정신이 있는 젊은이들을 선발해 교육하는, 한마디로 ‘김우중 사관학교’다. 지난해에도 20, 30대 청년 200여 명이 새로 선발돼 동남아 현지에서 교육받고 있다.

김 전 회장은 “건강이 좀 나아지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살았다는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2년간 고민했다. 그러다가 청년 교육을 시작했고…. 내가 몇 살까지 살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이들이 잘되는 모습을 보고 죽으면 세상에 흔적을 잘 남긴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영광이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대우재단빌딩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실에 ‘창조 도전 희생’이라고 적힌 대우그룹 사훈이 액자로 걸려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그는 청년들에게 도전정신을 주문하기에 앞서 기회를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 나가 보면 대한민국 사람처럼 똑똑한 사람이 없다. 청년들을 나무라기 전에 기성세대들이 기회를 만들어 줬는지 생각해야 한다. 교육을 하다 보면 처음에 꿈이 없던 학생들이 3개월만 지나면 스스로 변하는 걸 느낀다. 우리가 봐도 눈빛이 달라진다.”

인터뷰 내내 곁을 지키던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대우의 마지막 사장)은 “회장님이 학생들 최종면접도 직접 하고, 사감 선생님처럼 기숙사를 돌면서 신발장 정리까지 일일이 챙긴다”고 덧붙였다.

김 전 회장은 치솟는 청년 실업률 문제를 유달리 안타까워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 기업들에 공장을 미국에 세우라고 하는 건 기업인으로서 감각이 있어서 그런 거다. 제조업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는 고용과 양극화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제조업에 대한 혜택을 제대로 주고 제조업을 살려야 한다.” 제조업이 서야 나라가 선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기업인이 국가에 기여를 한 부분을 인정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아들은 삼성전자에 취직시키려고 기를 쓰면서 동시에 삼성전자를 욕한다. 총수가 한 번 뭣만 해도 난리가 난다. 정책 잘못한 것도 기업이 뒤집어쓴다. 기업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면 나라의 전망이 어둡게 된다.”

유일하게 살아있는 ‘창업 1세대’ 기업인으로서 젊은 기업인에 대한 조언 요청에는 조심스러워하며 답했다. “우리 창업 세대는 외국 나가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어디 있는 나라냐’며 무시당하기 일쑤여서 자연스럽게 국가관이 생겼다. 하지만 지금 2, 3세 경영인들은 유학 가서 경영학 배우고, 귀국하면 몇 년 만에 CEO(최고경영자)가 된다.” 창업주들이 가졌던 소명의식과 기업가 정신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안타까움이다.

“경영권 세습 안했을 것”

대우그룹이 지금까지 존속했다면 어떤 모습일까. 김 전 회장은 미소를 띤 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장병주 회장이 “대우그룹이 이어졌다면 2, 3세한테 경영권을 넘겨주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재벌이 됐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대우 경영 시절 김 전 회장은 자신을 그룹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으로 자처했었다.

김 전 회장과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각별한 관계였다. 그에게 최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등 정치적 상황에 대해 물어보자 “신문이나 TV를 잘 안 본다”며 말을 아꼈다. 잠시 생각하더니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영애 시절에 보고 호의적인 인상이었다는 생각만 있을 뿐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관계라고 할 게 없다. 앞으로 교훈을 삼아서 좋은 지도자가 나오길 바란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이라고 답했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창립 50주년 행사에 참석하고 곧장 다음 날 베트남 하노이로 돌아간다. 31일에는 태국 GYBM 졸업식에 참석하고 그날 저녁 미얀마로 건너간다. 젊은 시절 전 세계를 누비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81세의 고령에도 동남아 곳곳을 바쁘게 움직이며 남은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다만 측근은 김 전 회장이 요즘 들어서는 점점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 전 회장은 “젊었을 때 가족에게 소홀했다. 휴가를 간다거나, 스키를 타러 간다거나 한 적이 없다. 이제 와 미안해져서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는 새벽에 혼자 골프 9홀 라운딩을 한다고 한다. 골프라기보다는 걷기 운동인 셈이다. 그는 “68세에 처음 골프를 배웠다”며 멋쩍게 웃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젊은이들에게 꿈을 강조했다. “최선을 다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감이 있으면 꿈도 생긴다. 내가 키운 젊은 기업가들이 성공하는 걸 보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말했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




#김우중#대우그룹 회장#청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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