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세트’로 점심식사… 계산할 땐 ‘더치페이 앱’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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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시행]김영란법이 바꿔놓은 일상
금지조항 담은 해설 앱도 등장… 식당들 ‘3만원 이하 메뉴’ 홍보
의원들 구내식당 점심… ‘혼밥’ 먹기도

 “손님들이 김영란법 때문에 밥상 앞에서 고민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서비스가 나왔는데, 어떠세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을 하루 앞둔 2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의 한 삼계탕 집에 30대 남성 2명이 나타나 애플리케이션(앱) 제휴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들이 꺼내 든 ‘이구구(299)’라는 이름의 앱은 1인당 3만 원(직무수행 등 목적으로 음식물에 쓸 수 있는 상한액) 이하로 식사할 수 있는 쿠폰을 발행해주는 서비스였다. 이들은 제휴를 맺으면 ‘김영란법 맞춤 식사 티켓’을 대신 팔아주겠다고 제안했다. 고민하던 식당 사장은 결국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김영란법 때문에 벌어질 번거로운 일도 적어지고 홍보 수단도 하나 더 생기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김영란법이 28일 시행되면서 공직자와 식당 관계자 등 법 영향권에 들어 있는 사람들은 위법을 피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안하고 나섰다. 부지불식간에 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앱이 등장했고, 고급 식당들은 3만 원 이하 메뉴를 부랴부랴 개발했다.

 직장인 함성식 씨(29)는 지난달 말 서울대 인터넷 커뮤니티에 ‘링 마이 빌(Ring My Bill)’이라는 앱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사람 수, 총액에 맞춰 각자 계산(더치페이) 액수를 구해주는 기능이 담겨 있다. 해당 커뮤니티에는 “김영란법 덕에 대박 날 수도 있겠다” 같은 댓글이 60여 개 달렸다. 구글 안드로이드 앱 마켓에는 이 밖에도 ‘N(엔)빵 정산’ 같은 더치페이 앱도 등장했다. 부정 청탁과 금품 수수 금지 조항을 스스로 점검하고 사용 명세를 등록할 수 있는 ‘영란이’ 앱도 나왔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들도 구내식당을 이용했다. 더불어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 구내식당에서 기자들과 점심을 먹었다. 구내식당 메뉴는 홀에서 먹을 때는 8500원이지만, 홀 한쪽 방에서 먹을 때는 1만5000원. 이 의원은 방에서 먹은 뒤 기자들과 더치페이를 했다. 일부 의원은 부담스럽다며 약속을 취소하거나 아예 약속을 잡지 않고 ‘혼밥’을 먹었다.  강원 횡성축산산업협동조합도 28일부터 횡성과 인천지역의 한우프라자에서 2만4000원짜리 신메뉴인 ‘영란세트’를 팔기 시작했다. 광주시청 인근 식당가에도 ‘김영란법 세트 팝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법 시행 전날인 27일 밤에는 마지막 회포를 푸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이날 오후 11시 15분경 서울 종로구의 한 한정식집에서는 모임을 마친 50대 남성 12명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법 시행 시간인 밤 12시가 다가오자 일제히 자리를 뜬 것이다. 이들은 약 90만 원의 식사비를 4명이 나눠서 ‘쏘기로’ 했다. 이들 중 한 남성은 “아직 자정이 안 넘었으니 편하게 계산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

  ‘김영란법 전야(前夜)’를 보내는 이들은 비싼 한정식, 쇠고기 대신 치킨과 삼겹살 등 값싼 메뉴를 택했다. 자정 직전 치킨집에서 나온 40대 남성은 “괜히 술에 취해 자정이 넘은 줄 모르고 계산을 했다가 문제가 될까 봐 일부러 싼 곳을 골랐다. 배부르게 먹었는데 한 사람 앞에 2만 원도 나오질 않았으니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권기범 kaki@donga.com·홍정수·곽도영 기자
#김영란법#김영란세트#더치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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