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정성은]버스 기사의 불친절과 18시간 운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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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버스 운전사에 대한 영상 콘텐츠를 의뢰받았다. 오랜만의 촬영이라 설레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조금 불편했다. ‘실은 최근에 버스 기사님에 대한 민원을 넣으려던 적이 있어요. 불친절을 이유로….’ 휴대전화엔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떠나가는 버스를 보며 찰칵찰칵 번호판을 찍었다. 결국 민원은 넣지 않았지만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하차 의사 늦게 말한 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불친절한 버스 운전사, 나쁜 사람이라 생각했다.

평생 승객으로만 살아봐서, 기사님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다. 버스 운전사가 하루에 몇 시간 일하고, 얼마를 임금으로 받는지. 쉬는 시간은 얼마만큼이고, 식사는 언제 하는지. 운행 중에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하는지 전혀 몰랐다. 상대를 이렇게나 모르는데 어떻게 콘텐츠를 만드나 싶어 동행 취재를 요청했다. 경기도의 한 운수 회사에서 답이 왔다. ‘내일 오전 3시 40분까지 부천 차고지로 오세요.’ 대체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 거지?

부천 75번 버스 류동호 기사님을 예로 들어 보자. 기사님의 하루는 오전 2시 30분에 시작한다. 3시 40분까지는 출근해야 음주 검사를 하고, 버스를 점검한 뒤, 믹스 커피를 한잔 마시고, 돈 통을 채워 4시에 첫차를 운행할 수 있다. 5분만 늦어도 귀가 조치다. 버스는 시민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왕복 4시간이 걸리는 1회 차 운행이 시작된다. 총 4회 차를 뛰어야 하루가 끝나는데, 출퇴근 시간은 막히기 때문에 오후 11시 정도에 끝이 난다. 하루에 18시간이나 운전하는 셈이다. 버스 기사 허혁 씨가 쓴 ‘나는 그냥 버스 기사입니다’라는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하루 18시간씩 버스를 몰다 보면 내 안에 있는 다양한 나를 마주하게 된다. 천당과 지옥을 수시로 넘나든다. 세상에서 제일 착한 기사였다가 한순간에 세상에서 제일 비열한 기사가 된다.”

물론 쉬는 시간도 있다. 각 회차마다 30분 정도가 주어진다. 그 시간 안에 식사, 화장실, 낮잠, 사교 모두를 해결해야 한다. 막히는 시간대엔 그만큼 쉬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10분이 되기도 한다. 쉬는 시간 없이 바로 다음 회차 운행을 나가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오후 3, 4시에 미리 저녁을 먹는 기사들도 많다. 화장실은 주로 회차하는 지점에서 해결하고, 너무 위급한 상황엔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유소나 상가 화장실로 달려간다. 큰일은 되도록 보지 않으려는 이유가, 큰일 보고 왔더니 손님들이 사라져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화장실 자주 갈까 물도 잘 못 마신다 하니, 운수업 노동자들의 건강관리가 시급하다.

그래서 버스는 과속한다. 이 모든 시간들을 맞추기 위해.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해야 밥을 먹고, 배차 간격을 맞추고 사람다울 수 있으니까. 친절은 마인드의 문제가 아닌 몸의 문제였다. 현재 서울, 인천 시내버스와 경기도 시내버스는 다른 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경기도는 18시간을 노동하는 대신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격일제를 택하고 있고, 서울과 인천은 1일 2교대 준공영제를 시행 중이다. 버스 기사님들이 조금만 더 천천히 밥 먹어도 되는 날이 하루빨리 와야 한다.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버스 운전기사#버스 민원#버스 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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