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박재명]20세기 ‘신도시 개발’ 주택 공급 방식의 종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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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명 산업2부 기자
박재명 산업2부 기자
‘구질서는 몰락했는데 신질서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구나.’

정부가 지난달 진통 끝에 주택공급 방안을 발표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이다. 정부는 당시 서울 경기 등과 몇 차례 충돌한 후 “서울 인근에 신도시 4, 5곳을 만들 것”이라면서 위치와 일정 등 구체적인 사항이 빠진 ‘3기 신도시’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거센 반대 여론에 구체안을 내놓지도 못하고 시간을 유예시킨 측면이 큰 것으로 보였다.

예전 사례를 봐도 이번처럼 신도시 계획이 모호한 상태에서 발표된 적은 없었다. 1970년대 ‘신도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던 창원, 울산시의 개발 이후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의 공공택지 지정에 집단으로 반기를 든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신도시 지정을 통한 주택 공급을 환영하는 지자체가 많았다.

이번 갈등의 ‘1라운드’는 서울시였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직접 “주택 공급을 위해 서울 그린벨트 해제가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지루한 공방 끝에 정부의 주택 공급대책에 서울시 그린벨트 내용이 빠졌다. 청와대까지 나섰지만 “그린벨트 해제는 안 된다”고 버틴 서울시가 ‘판정승’했다.

경기도는 정부의 주택공급 대책 발표를 하루 앞두고 도내 공공주택 수를 2022년까지 20만 채 더 늘리겠다고 공개해 버렸다. 정부가 지으려고 했던 물량과 상당수 겹친다. 이 과정에서 도 관계자는 심지어 “정부가 주택 입지를 지자체와 협의하지 않을 것이라면 (주택 공급에서) 손을 떼라”고 압박했다. 일부 지역이 공공택지로 지정된 서울 송파구, 강동구, 경기 광명시 등도 저마다 정부의 지구 지정을 “일방적인 행정”이라며 반발했다.

정부는 앞으로도 서울 등 지자체와 그린벨트 해제 등을 계속 논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 집값이 급등하는 상황에서도 설득하지 못했던 합의를 집값이 안정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다시 도출해 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예고한 대로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방향의 개헌 및 정부 조직개편이 이뤄진다면 앞으로는 정부 차원에서의 공공택지 지정 강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50년 동안 계속된 한국식 신도시 개발 방식은 이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중앙정부가 ‘지도에 자를 대고’ 택지를 지정하던 예전의 중앙집권적 개발 방식도 추진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를 대체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자체가 주택 공급과 집값 관리를 상당 부분 분담하고, 중앙정부가 지역 간의 이해관계 조율과 주거복지 등에 더 집중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때가 됐다. 아울러 “우리 지역은 안 된다”만 외치는 지자체에 주택정책 책임을 묻는 것도 꼭 필요해 보인다.
 
박재명 산업2부 기자 jmpark@donga.com
#주택공급#신도시#그린벨트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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