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권 빼앗긴 시대, 한국미술 상설 전시하며 각별히 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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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하와이 ‘호놀룰루 미술관’ 한국전시실 가다

1927년 미국에서 최초로 한국 상설 미술전시실을 설치한 호놀룰루 미술관의 한국실. 1100여 점의 한국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이곳은 1년에 3, 4차례 전시품 교체를 진행하며 다양한 한국의 전통 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호놀룰루=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927년 미국에서 최초로 한국 상설 미술전시실을 설치한 호놀룰루 미술관의 한국실. 1100여 점의 한국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이곳은 1년에 3, 4차례 전시품 교체를 진행하며 다양한 한국의 전통 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호놀룰루=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의 중심 와이키키 해변에서 북서쪽으로 약 3km를 이동하면 아시아 전통 문양의 기와를 얹은 독특한 건물이 나온다. 1927년 개관한 후 90여 년간 하와이 문화예술의 허브 역할을 해 온 ‘호놀룰루 미술관’이다.

지난달 27일 찾아간 호놀룰루 미술관에는 서양과 전통 중국식 정원이 나란히 배치돼 있었다. 전시실 역시 서양미술과 하와이 전통 예술작품뿐 아니라 절반가량이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미술로 구성돼 있다. 이 미술관이 특별한 이유는 미국에서 최초로 한국미술 상설 전시실을 설치한 곳이기 때문이다. 1927년 개관과 동시에 중국·일본전시실과 한국실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약 90m² 규모에 한국 전통 도자와 불화, 가구, 직물, 조각 등 수십 점의 미술품을 선보이고 있다.

호놀룰루 미술관이 소장한 16세기 금선묘 불화 ‘석가설법도’. 호놀룰루=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호놀룰루 미술관이 소장한 16세기 금선묘 불화 ‘석가설법도’. 호놀룰루=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전시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석가설법도’가 눈에 띈다. 16세기 중반(조선 전기) 불화로,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로 자리 잡은 보살과 10대 제자들을 표현한 그림이다. 조선 전기의 석가설법도는 불과 4점만 알려져 있어 보물급 문화재로 평가받는다. 동행한 정우택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10대 제자의 형상이 뚜렷한 작품으로 16세기 중반의 대표적인 금선묘(金線描·금가루로 선을 그린 것) 불화로, 하와이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나라 전통 문화 유산의 걸작”이라고 설명했다. 이 불화는 지난해 12월 동국대 박물관 특별전에 초대되기도 했다.

수준 높은 고려청자 10여 점도 만날 수 있었다. 고려시대 깨끗한 물을 담는 물병으로 사용된 ‘청자상감 갈대문 정병(淨甁)’은 3줄기의 갈대가 섬세하게 그려져 있고, 병뚜껑 등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6폭 크기의 화조화(花鳥畵)와 조선 왕실에서 사용됐던 태(胎)항아리, 목조동자상 등 다양한 한국 전통 예술품도 함께 전시돼 있다.

하와이는 1903년 대한제국 정부의 첫 번째 공식 이민 정책이 시행된 곳으로, 사탕수수 농장에 취업하기 위해 떠난 이민자들이 고달픈 현실 속에서도 한국의 전통 문화를 간직해 온 장소다.

1927년 4월 8일 호놀룰루 미술관의 설립자 애나 라이스 쿡 여사(1854∼1934)는 개관식 축사에서 “미국인을 비롯해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북유럽인 등 하와이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인류 공통의 매체인 예술을 통해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일제강점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1100여 점의 한국 미술품을 소장 중인 호놀룰루 미술관은 2001년부터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후원으로 전시실을 재단장하고, 한국미술사 전문 큐레이터를 파견받아 한국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숀 아이크먼 호놀룰루 미술관 아시아부 수석 큐레이터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전통 예술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동아시아 미술사를 객관적으로 비교 분석해 볼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놀룰루=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호놀룰루 미술관#석가설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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