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130여 년 전 女기자의 목숨 건 정신병원 취재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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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넬리 블라이 지음·오수원 옮김/208쪽·1만3000원·모던아카이브

23세의 기자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취재를 위해 정신병자 행세를 했다. 형편없는 음식을 먹었고 말 한마디 못하고 꼼짝없이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지금이야 이 같은 잠입 취재기를 쓴 기자의 성별에 큰 호기심이 없겠지만, 이 기사가 나온 1887년엔 아니었다. ‘여자 아이가 무슨 쓸모가 있나’라는 제목의 신문 칼럼이 실리던 때였다.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은 당시 활약했던 여성 기자 넬리 블라이가 블랙웰스섬(현재의 미국 뉴욕 루스벨트섬) 정신병원의 환자 처우 실태를 폭로한 기사를 바탕으로 삼아 출간한 책이다.

책은 넬리 블라이가 취재 지시를 받은 때부터 시작된다. 그는 사회복지시설인 ‘여성노동자의 집’에 들어가 정신병자인 척 말하고 행동하다 병원으로 ‘끌려가는 데 성공한다’. 이어 그는 의사들의 형식적인 진료, 간호사들의 구타, 사람이 먹지 못할 수준의 음식(의사와 간호사의 음식은 호화판이다), 기준 없는 약물 투입 등을 하나하나 지적한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취재가 상세하다. 분명 정상인데 정신이상자로 몰린 여성들의 억울함, 그 정상인도 점점 미쳐갈 수밖에 없는 비인격적이고 가혹한 병원 내 상황이 가감 없이 묘사된다.

130여 년 전 기록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생생하다. 당시 견고했을 성(性)의 경계를 가뿐하게 뛰어넘는 저자의 돌파력도 돋보인다. 그는 서문에서 “당국이 정신질환자의 복지예산을 연간 100만 달러 증액하기로 했다”면서 “기자로서의 보람을 찾은 셈”이라고 적었다. 이 또한 시간을 뛰어넘어 유효한 언론의 보람이자 의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넬리 블라이#오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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