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에서 이상한 소리들려 가보니…치매 할머니 3m 물구덩이에 빠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9일 19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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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를 앓는 70대 할머니가 강추위에 논에 있는 3m 깊이의 좁은 물구덩이에 빠졌다가 가까스로 구조됐다.

19일 전남 화순경찰서에 따르면 17일 오후 6시 35분 화순의 한 마을에서 A 씨(77·여)가 실종됐다는 112신고가 접수됐다. 점심식사 후 80대인 남편이 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A 씨가 없어졌다는 것. 노부부는 시골집에서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아내를 찾는데 실패한 남편은 딸에게 전화했고 112신고가 접수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마을 주민들로부터 치매를 앓고 있던 A 씨가 간혹 예전 농사를 짓던 밭으로 가곤 했다는 말을 들었다. 경찰은 동네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결과 A 씨가 과거 밭농사를 짓던 곳으로 걸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강추위에 경찰과 소방당국은 물론 마을 주민까지 나서 18일 오전 4시까지 동네 곳곳을 애타게 수색했지만 A 씨 행방은 묘연했다.

18일 오전 8시경 A 씨가 살던 마을 인근에서 고추 시설하우스를 설치하던 베트남 남녀 근로자 2명은 논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이들 베트남 근로자 2명이 소리가 난 곳으로 가보니 논에 있는 지름 60㎝, 깊이 3m 정도 물구덩이가 있었다. 이 물구덩이가 있는 것을 아무도 몰랐고 눈에도 잘 띄지 않았다. 그런데 안에 A 씨가 빠져있었다.

근로자들은 A 씨가 물구덩이에 빠져 있는 것을 경찰에 신고해 구조작업이 시작됐다. 구조에 나선 소방관들은 물구덩이 입구가 지름 60㎝에 불과해 직접 꺼내는 것이 힘들다고 판단, 굴삭기를 동원해 옆부분 흙을 파냈다. 이후 삽으로 흙을 조심스럽게 파내 1시간 만에 A 씨를 구조했다.

구조된 A 씨는 옷이 물에 젖어있었지만 건강한 상태였다. 17일 밤에서 18일 새벽 광주전남지역 최저기온이 영하 1도까지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좁은 물구덩이가 체온을 유지, 저체온증을 막아준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한 관계자는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애타게 찾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베트남 근로자 2명이 인기척을 들어 천운으로 구조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화순=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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