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장 병원, 건보서 6250억 빼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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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63곳 진료비 부당청구 적발

자산가 A 씨(65)는 2007년 경기의 한 지역에 요양병원을 세웠다. A 씨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요양병원을 설립하거나 운영할 수 없다. 소아과 전문의를 ‘바지(가짜) 원장’으로 앉히고 A 씨는 뒤에 숨어 사무장 행세를 해왔다. 8년간 총 135억1887만 원의 건강보험금을 타냈다. 내부 고발로 꼬리가 밟힌 A 씨는 현재 의료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돼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A 씨처럼 병원 실소유주가 의사나 한의사, 치과의사 등 의료인을 고용하거나 명의를 빌려 운영하는 것을 ‘사무장 병원’이라 부른다. 존재 자체가 의료법 위반일 뿐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는 주범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병·의원과 약국이 부당하게 청구해 타낸 건보 진료비 7830억 원 중 사무장 병원 등 ‘개설기준 위반’ 적발이 6250억 원(79.8%)이었다고 22일 밝혔다.

건보공단에 적발된 사무장 병원은 2015년 189곳에서 지난해 263곳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는 전체 사무장 병원의 극히 일부로 추정된다. 은밀하게 운영되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거나 내부자가 신고하지 않으면 드러나기 어렵다.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도 1월 화재로 46명이 목숨을 잃기 전까지 9년간 사무장 병원으로 운영됐지만 당국의 감시를 피해갔다. 당국의 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해도 과태료 200만 원만 물면 된다.

어렵게 적발해도 실제 사무장 병원으로부터 돌려받는 부당 진료비는 턱없이 적다. 지난해 부당 청구된 사무장 병원 진료비 중 실제로 건보 재정으로 돌아온 비율은 4.9%에 불과했다. 대다수의 사무장은 건보공단이나 경찰이 조사에 착수하는 즉시 재산을 빼돌린 뒤 “낼 돈이 없다”고 발뺌하기 때문이다.

사무장 병원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과잉 진료도 일삼는다. 강희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험연구실장이 2013∼2017년 적발된 사무장 병원의 진료 실적을 분석해보니 환자 1명당 연평균 입원일수가 57.3일로 일반 병원(31.7일)보다 1.8배로 길었다. 진료비도 일반 병원보다 1.5배로 비쌌다. 치료 중 숨진 환자 수는 사무장 병원이 일반 병원보다 6.4% 많았다. 이는 인건비 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료 인력을 줄였기 때문이다. 사무장 병원 중환자실의 간호인력 수준(1∼9등급·1등급은 1명당 환자 1.5명 미만으로 9등급은 1명당 6명 이상)은 평균 8.2등급으로 일반 병원 중환자실 평균(5등급)보다 훨씬 낮았다.

사무장 병원 근절을 위해 명의를 빌린 사무장과 빌려준 의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사무장과 의사가 함께 병원을 개설한 경우엔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벌금형 규정을 없애 무조건 실형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 실장은 “사무장 병원이 환자에게서 받은 진료비 중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비급여 진료비도 전액 ‘범죄 수익’으로 보고 몰수 및 추징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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