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어선 감추는 데 급급해 엿새나 방치한 돼지열병 검역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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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5일 삼척항에 정박한 북한 어선을 상대로 즉각 실시했어야 할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검역 작업이 입항 6일 만에야 이뤄졌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발병 사실을 발표한 돼지열병 바이러스는 감염성이 높은 데다 치사율이 100%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다. 정부가 장담한 최고 수준의 방역조치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검역법 9조에 따르면 귀순, 조난 등으로 피난 선박이 들어올 경우 조사 관련 기관의 장(長)이 검역기관에 통보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어선 입항 사실을 처음 인지한 해경, 군, 국가정보원은 검역기관에 이를 알리지 않았다. 각 기관들이 북한 관련 동향에 민감해하는 청와대와 정부 윗선 눈치만 살피다 보니 횡적인 정보 공유는 아예 관심 대상이 아니었을 거라는 지적이다.

검역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의 늑장 대응도 어이없다. 농식품부는 어선이 입항한 지 닷새가 지나서야 국방부, 국정원 등에 공문을 보내 ‘북한 어선 입항 소식을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했다’며 검역기관에 통보해 달라고 요청했다. 방역 작업은 일분일초를 다툴 정도로 긴박해야 하는데 언론 보도로 북한 어선이 들어온 걸 인지하고도 엿새나 움직이지 않은 것은 사실상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게다가 삼척항에 입항한 어선에는 수십 kg의 음식물도 있었다.

이번 북한 어선 ‘노크귀순’ 사건은 경계실패, 발표과정의 은폐·축소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거기에 더해 발병 지역에서 내려온 어선을 거의 일주일간 검역 무풍지대에 방치한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 사전에 철저한 방역을 통해 국민들의 불안과 우려를 해소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청와대 눈치를 살피느라 검역기관과 정보 공유조차 꺼렸으니 정부 차원의 효율적인 초기 방역이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삼척항#북한 어선#아프리카돼지열병#노크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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